지하철에서 있었던 일

오늘의 토픽은 이건가요. 킁


사실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부리는 건 애나 어른이나 노인이나 청년이나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고 봐요.

이걸 싸잡아서 '버릇없는 노인들이 문제' 라고 단순화하는 것도 좀 안일한 생각인 것 같고.

정작 오늘의 문제꺼리가 된 동영상도 자리 양보 문제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던데요. 두 사람 다 사이좋게(?) 앉을 자리가 막판에 있던 걸로 봐서는.

게다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소리지르고 막말을 하는 사태를 두고 누구를 탓하는 건 너무 극단적인 사태를 염두에 둔 책임전가란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간접적으로 저지르는 민폐들, 예컨대 자기집 안방처럼 쩌렁쩌렁 전화를 받는다던가 자기 학교 동아리실처럼 깔깔댄다던가,

그런 게 좀 더 의견을 개진하고 의식을 고쳐서 바로잡아야 할 사건들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의식이 그런 영상의 할머니를 정상적인 노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된다고, 보거든요.

하긴 이렇게 극단적인 게 재밌으니까 잘 퍼지는 거겠죠. 누굴 탓하기도 쉽고.



여하튼 그건 그렇고, 영상을 보고 나니 예전에 겪었던 사건 몇가지가 떠올라서.

첫번째는 칼부림(?) 사건. 한 5년 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 열시쯤 됐나, 약수역 무렵에서 겪었던 일인데,

사람도 몇 없고 (딱 앉을 자리만 꽉 찬 지하철)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어요. 저는 지하철 제일 끝 차량에 타고 있었고.

갑자기 옆 차량에서 젊은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라구요. 근데 차림이... 입고 있는 티셔츠는 찢어져서 너덜거리고, 가방은 품에 안은 채로 뭔가에 쫓기는 듯한 품새.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누가 자길 쫓아오는데 어디 숨을 데 없냐는 거에요.;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제 옆의 아주머니가 의자 옆에 숨으라고 해서

얼른 뛰어가서 의자 옆에 웅크리고 숨었더래지요. 묘하게도 바로 그 순간에 남자가 달려온 쪽에서 다른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왔어요.

그런데... 오른 손에는 커터칼을 들고 있고, 청바지에는 핏자국으로 보이는 붉은 흔적들이 보였더랬습니다. 그러면서 시비조로 하는 말, "여기 누구 온 놈 없어요?"

와 정말 일순간 정적이 흐르더군요. 다들 우물거리고 대답을 안하니까 이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와서 차량 안을 훑어보는데

마침 숨은 사람을 찾아내기 전에 어떤 아저씨가 시비를 걸더군요. 지금 공포분위기 조성하고 뭐하는 거냐고.

그랬더니 이 남자는 별 말도 안하고 아저씨를 가만히 노려보면서 바로 앞까지 걸어가는 거에요. "뭐라고?" 뭐 이정도만 대꾸했나? 암만 봐도 싸움나기 직전처럼 보이더군요.

그래도 다들 조용했는데 오직 제 옆에 있는 아주머니 (숨으라고 했던 분) 만이 계속 제 무릎을 쥐어뜯고; 발을 구르고;

얼굴을 바라보면서; 중얼중얼거리더군요. 아이고 저걸 어떡하나, 싸우지 마요. 저거 누가 말려야 되는데, 그렇잖아요 총각? 그러지 말아요. 아이고 어떡해.

아 정말 그 순간만큼 제가 초라해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겠고 저러지도 못하겠고. 아주머니는 그래도 젊은 남자가 옆에 있으니 어떻게 해 보라는 것 같은데;

여하튼 아주머니의 힘으로 객차 안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니까 부담이 됐는지 그 남자도 별 일은 벌이지 않고 다시 옆 차량으로 넘어가더라구요.

숨어 있던 남자는 사람들이 나오라고 해서 일어났고... 누구길래 저러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 다짜고짜 칼을 들이댔다고.;

남자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완전히 당황한 표정이더군요. 마침 다음 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니까 쏜살같이 바깥으로 뛰어나갔어요.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두번째는 폭행(?) 사건. 이것도 한 3년 전에 충무로쯤에서 밤늦게 있었던 일인데

이번엔 사람이 좀 많았어요. 그런데 문 근처에서, 갑자기 왠 남자가 여자 따귀를 막 갈기기 시작하는 거에요.

처음엔 당연히 개인적인 싸움인가보다, 근데 좀 심하네. 싶었는데 이거 뭔지, 좀 정도가 지나치더군요.

여자는 거의 악 소리도 못 낼 정도로 쉴새 없이 맞고 있는데... 아무래도 눈치가 아는 사람한테 당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더라구요.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길래; 이번에는 좀 용기를 내서 남자 손을 잡고 문으로 밀쳤죠.

아, 그런데 이 남자 눈빛을 보는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니나 다를까 여자분은 뒤쪽에서 멍한 목소리로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고... 남자는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대답같은 것도 없이 히죽대기나 하고;

여전히 모든 사람이 구경만 하고 있는 통에 혼자서; 지하철 문에 밀어둔 채 다음 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문이 열리고 역사에 엎어져서도 한참을 혼자 끙끙대고 있었죠. 이 남자 힘이 센 편은 절대 아닌데 자꾸 여기저기를 더듬고 만지려 들어서 멈춰두기가 쉽질 않았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웬 아저씨... "학생 비켜!" 그러더니 정말 순식간에 제압; 을 해서 역사 구석으로 걷어차 버리고는 제 손을 붙들고 달려가더라구요.

정말 무림의 고수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었어요. 직원한테 신고한 후에 역 바깥으로 나와서 캔커피를 하나 사주시던데

씁쓸한 교훈 하나를 주시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더래죠. 앞으로는 그런 자리 있어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제가 지하철에서... 아니 서울에서 겪었던 가장 기괴한 사건 두 가지가 전부 (당사자들의 증언으로는)

"모르는 사람" 에게 당한 일이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서울의 밤거리나 지하철을 적잖이 무서워하는 편입니다.

특히 저런 일을 수많은 사람 앞에서 당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서운 것 같아요. 정말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다 해도 당장은 모른척 할걸요.

또 제 자신이 그 심리를 모르는 바도 아니라서 좀 많이 씁쓸하긴 씁쓸합니다.

의외지만 저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아주머니들의 중얼거림" 이더군요. 뭐랄까,

여론을 환기시키고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조성하는 능력 같은 게 남달라요. 젊은 학생이나 아저씨의 중얼거림이나 호통은 그냥 분위기만 더 험악하게 만들고 마는데.;



아무튼, 혹시 지하철에서 (이런 종류의) 이상한 일 겪으신 분 있나요.

    • 지하철에서 여고생들이 두세명 서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와서 한 명을 뒤에서 끌어 안더라구요. 놀래는 상황에서 2~3초도 안되서 젊은 남자분 두 명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제압해버렸습니다. 여고생에게 이 사람 아는 사람이냐고 묻고, 당연히 모른다는 답이 돌아오고..다음 역에서 내려서 역사로 끌고 가시는 것 같더군요. 두 분은 서로 모르는 분인데 동시에 튀어나와서 도움을 준 거고요. 멋있었어요.
    • 무..무섭네요. 야근할건데 집에 갈 길이 갑자기 걱정되는군요.
    • 섬뜩하네요. 이런 일을 보거나 당하게 될까봐 무척 두렵습니다. 지하철에서 이상한 일이라고 해봤자 기억나는 것은 어떤 남자가 핸드폰에
      대고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장면 정도...?
    • 어휴, 정말 무섭네요. 진짜 호신술 하나둘쯤 배워야 하나봐요.
    • 저는 런던에서 살때 180cm 정도의 키에 엄청 거구이고, 목소리가 진짜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중년 여자가 머리는 산발을 해가지고, 표를 내고 자기 순서 뒤로 따라나오는 모든 승객에게 다 일일히 시비를 거는 모습을 봤는데요. 어찌나 입이 걸걸하던지, 듣던 사람들이 다 기가 질리게 하는 수준이었어요. 말대꾸라도 하면 바로 그 솥뚜껑같은 손으로 바로 얻어맞을 것 같은 공포감을 주는 수준이었는데..그 험한 욕을 다 듣던 남자가 그래도 마주 욕은 안하고 "Thank you!"라고 점잖게 말하고 가던데... 순간 만약에 내가 저 여자에게 걸렸으면 난 진짜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리고 저 여자가 같은 인종, 비슷한 연령대, 비슷한 키의 사람에게니까 그나마 저러고 말았지, 훨씬 약해보이는 사람에게라면 당장 손부터 올라갔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더라구요. 거의 혼자 15분이 넘게 허공에 욕설을 지껄이는데, 진짜 보기만 해도 두려웠던 순간이었어요. 그때 친구를 기다리느라 역을 떠날 수가 없었는데, 정말... 이런 종류의 폭력성을 가진 민폐인간은 국적을 막론하고 양상이 비슷한 것 같아요.
    • 예전에 전철 기다리는데 소란스럽길래 전철 타러 올라오는 계단 아래 쪽을 내려다보고 거기서 짧은 시비 광경을 목격했던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마 서로 모르는 관계로 추정되는 관계의 아저씨가 한 아주머니에게 시비 거는 장면이었어요. 뒤늦게 본 거라 처음 상황은 모르겠는데, 신길역인가 환승 복도 지나서 전철 타러 올라오는 계단 중간쯤에서 어느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벽 쪽으로 몰고 험악하게 굴고 있었어요. 약간 당황한 듯 아주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를 하니까 아저씨가 확 달려드는데, 주변에서 오르내리던 사람들 중에 일행도 아닌 청년 두 명이 신속하게 쑥 나오더라고요. 한 명이 아저씨를 막아서고 있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아주머니를 보호해서 아래로 내려가게 하고. 올라가는 척 하던 아저씨가 슬쩍 따라 내려가려고 하니까 조금 전에 막아섰던 청년이 한 손으로 아저씨 등을 확확 밀면서 위로 떠밀려 보내는데 멋있었습니다. 별로 등치가 큰 것도 아니던데, 그 청년은 왼손에는 여자친구 손을 잡은 채로 오른 한손만으로 아저씨를 훽훽 순식간에 위쪽으로 올려보내는 신기술을 선보였다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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