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 best & worst

대학생 시절, 총선이 있으면 아침에 투표하고 저녁에 학교 친구, 선배들과 만나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개표 방송을 보곤 했습니다.

지지하는 쪽이 앞서면 신난다고 원 샷, 뒤지면 열 받아서 원 샷, 추격하면 또 힘 내라고 원 샷, 결국 어떤 지역에서 이기면 기쁘다고 한 잔 더 하고 지면 우울하다고 한 잔 더 하고... 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짓인데, 어제 갑자기 생각나서 집에서 와이프와 막걸리 마시면서 두시 반쯤까지 중계를 보다가 잤습니다.

덕택에 출근한 지금 컨디션이 영 메롱메롱하군요. 잠든 사이에 뒤집힌 지역이 있어서 더 피곤하기도 하고... -_-;;

어쨌거나.


가장 맘에 드는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3. 강원도지사 & 교육감 : 한나라당에 대한 강원도의 오랜 짝사랑이 드디어 끝이 났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호구 노릇도 하루 이틀이죠. 뭐 사실 민주당 뽑아준다고 해서 갑자기 강원도에 콩고물이 막 떨어지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그 동안 그렇게 희롱당했으면 따귀 한 대 정도는 날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결과가 그렇게 기쁜 건 물론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계에 투신한 이계진씨에 대한 얄미움 때문이 크긴 합니다만(...) 당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 뭐 하고 계실지. 흐;


2. 경상남도지사 : 다른 것 다 무시하더라도, 경상도잖아요. 경상도란 말입니다. ;ㅁ; 한나라당 싫은 사람들은 경상도에서 한나라당이 패해서 좋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앞으로 몇 십년간 이 결과를 들먹이며 '우린 전라도 놈들처럼 공산당 선거하진 않는다규!!!' 라면서 잘난 척 할 수 있어서 좋고. 윈-윈이라고 생각합니다. 으하하.


1. 경기도 교육감 : 그게 누구 탓이든 간에 사실상 지난 임기 동안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으신 게 거의 없어서, 게다가 어차피 도지사는 김문수가 될 테니까(그냥 분위기가 그래요. 누가 뭐래도 김문수는 꽤 인기가 많습니다;) 당선이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역시 '공짜'의 힘은 위대하더군요(?) 뭐 기분 같아서는 '경기도민들의 의식이 변하고 어쩌고 저쩌고' 라는 식의 얘길 하고 싶지만, 문수씨가 그토록 무난하게 당선되도록 만든 사람들도 경기도민이니만큼 역시 무상 급식 공약의 힘이라고 생각해야겠죠. 딱 한 가지 흠집이 있다면... 도지사님하의 얼굴과 비례 대표 정당별 득표수를 보면 이번 임기 동안에도 도대체 뭘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 orz


싫은 결과는... 두 개만 얘기하겠습니다. 싫으니까;


2. 아아 김문수. ㅠㅜ

원인들이야 찾아보면 많겠지만 일단은 뭣보다도 이 동네 유권자들에게 이 사람의 이미지가 워낙 좋아요. 적어도 어르신들에겐 거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이 사람입니다. '황우석 연구소' 같은 거대 삽질이라든가 뭐 흠도 많긴 하지만 사실 사람들에게 딱 와 닿는 수준에서는 크게 삽질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거기에다 여당이라는 어드밴티지까지 업고 있으니 비호감 아이돌(...) 유시민에게는 애초부터 벅찬 상대였다고 봅니다. 애초에 투표할 때 부터 이 사람은 당선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네요. 아싸리 유시민과의 표 차이도 커서 심상정씨도 괜한 욕은 좀 덜 먹어도 될 것 같고 말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뻔한 얘기지만, 티비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빨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인 것 같습니다. 폼이 중요한 거지 승패(?)는 별 의미가 없어요.


그나저나 이제 유시민씨는 어디에서 놀아야 하나요. 이쪽 저쪽 모두에게 밉보여 버려서리;


1. 훈이 어린이.

두시 반쯤 자러 갈 때까지 한명숙 후보가 리드는 하면서도 차이를 거의 벌리지 못 해 질 것 같단 생각이 들긴 했었지만, 밤을 세워(...) 결과를 끝까지 보고 출근한 와이프님하와 아침에 의사 소통이 잘 못 되어서 한명숙씨가 이긴 걸로 알고 출근했어요. 그래서 기분 좋게 출근해놓고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순간 오 마이 갓... orz 그래서 더더더더더더욱 우울합니다. 어흑.

공정택 당선 때의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는 것도 너무너무 짜증이 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 부자 동네 삼총사에게 농락을 당해야 하는지. 그나마 그 쪽이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편이었다길래 조금은 희망을 가졌었는데, 성실한 사람들은 죄다 훈이를 찍었나 보죠. -_-+

그리고 쫌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득표 차. 이건 뭐 노회찬씨와 진보신당더러 두 번 죽으라는 결과로군요. 이런 꼴 보기 싫어서 한명숙씨가 이기든가, 질 거면 아예 큰 차이로 져 버렸으면 했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 결과 때문에 노회찬씨나 진보신당을 비난하는 건 (심정적으론 쬐끔 이해할 수 있긴 합니다만;)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당연히 민주당의 책임이죠. 이 사람들이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비전 같은 게 제대로 잡혀 있기라도 했다면, 지난 몇 년간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모습만 보였다면 노회찬씨가 나왔든 말든 이번에 당선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색이 전통의 제 1야당이면서 이 사람들이 그 동안 한 게 뭐 있습니까? '한나라당 공식 안티 모임' 이면서 다른 안티들에 비해 세력이 커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외에 이 당의 존재 의의가 뭐가 있을까요. 사실 저도 이번 선거에서 이 쪽 사람을 한 명 뽑긴 했습니다만, 그 사람이 당선되어서 뭔가 잘 하리란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한나라당 당선되는 게 싫었던 거죠. 지들이 당선되고 싶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민주당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하란 말입니다. 기본적인 노선도, 생각도 다른 후보들 갈취하면서 비난 돌리지 말구요.


암튼.

슬퍼요. ㅠㅜ

    • 마지막 문단에 정말 공감합니다.
    • 서울시장은 가장 안타까운 결과죠. 젊은 층이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더라면 더 나은 오늘이 되었을 텐데요.
      용산 재조사는 물 건너갔고 (이게 역사의 뒤로 사라질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이명박씨 레임덕이나 제대로 멕였으면 합니다.
    • 마지막. 저도 결과 때문에 '누구'한테 책임을 지우려고 하고, 비난하는 그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맨 마지막 포인트, 심상정 사퇴 후 민주당이 기고만장(?)해서 노회찬 단일화 운운한 거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밀어주기' 하려다가..... 오히려 반발.... 누구 찍을 지 결정... 이하생략..) 왠지 저같은 분들 꽤 되실 듯?
      민 주당이 가만히만 있었어도 아마도 지금보다는 표가 더 나왔겠죠?
    • 공정택 사태와 똑같은 식으로 서울시장 투표가 갈음된 걸 보니 착잡하더군요.
      그래도 서울시 교육감이 진보후보 쪽이 되어서 정말정말 선방했다, 다행이다!를 외치고 싶습니다.

      유시민의 이후 행보는 궁금해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선거 흥행에 끼친 그의 파워가 대단하다 싶거든요.
      진보신당이 받을 비난이 너무 아프고, 안그래도 후보 사퇴와 이번 선거 결과로 여러모로 힘들텐데 잘 추스를 수 있었음 해요.
    • 노통의 사람들이 이번에 선전했죠. 민주당이 정신 조금이라도 차리면 국참당과 합당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다음에는 단일화 압력 미친듯이 강해지겠죠..이건 필연.
    • 다음선거는 당연히 여야권 할것없이 단일화 압박이 강할겁니다. 이번에 여권이 진 원인중 하나가 공천실패-탈락자가 반발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로 인해 보수표가 나뉜것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여권은 다 '보수'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야권은 민주당-선진당은 보수이고, 민노-진보신당은 진보란 말이죠. 야권 단일화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 경상남도지사...제가 찍었지만 정말 될 줄 몰랐습니다. 감격!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나라당 싫다는 티는 내야지.' 정도의 생각으로 찍었는데 정말로 될줄이야... 서울, 경기 아쉽지만 그래도 그것 하나는 뿌듯하네요.
    • worst 2.
      어르신들은 말빨이 좋아봤자 "싸가지 없다"라고 폄하하게 되기 마련이죠.
      이미지메이킹에 동감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택시 타고 돌아다닌 거 엄청 좋게 평가하던데요;;;
    • 혼자생각/ 그게 바로 접니다!ㅠㅠ 그리고 제 주변에 그런 사람 몇 명 더 있어요

      안그래도 한명숙후보가 토론에서 밀렸단 얘기 듣고 답답해서 속태우고 있다가 심상정의 눈물+민주당의 기고만장에 격분해서 결정해버렸죠. 한후보가 좀더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거나 민주당이 좀더 예의바른 모습을 보였거나, 둘중 하나만 됐어도 좀 달랐을거예요. 다섯 살 훈이가 된건 열받지만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된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하지만 그럴리가 없겠죠ㅠㅠ
    • 어제 밤만 해도 한명숙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쁘겠다고 생각하며 서울광장까지 갔지만, 노회찬 후보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니 어이가 없어요. 저도 비슷한 막말로 화답한다면 "어차피 질거였으면 노회찬 표나 뺏지 말지" 랄까요 -_-;;
    • 개인적으로 서울은 초반 네거티브한 목소리들인 참 김빠진 케이스였습니다. 수구언론의 한명숙이 택도 안된다는 여론조사, 심지어 이 게시판 내에서도 한명숙은 안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죠. 그러나 의외로 말없는 민심은 묵묵히 갈 길을 가더군요. 아쉽게 지긴 했지만 유의미한 선거였다고 생각하구요.
    • 왜 다들 원인을 찾아 비난하고 책임떠넘기기에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노회찬후보 때문에 한명숙후보가 안된게 아니잖습니까. 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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