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추천] 게이와 미친년의 애니멀 라이프 '대도시의 사랑법'

- 어느 건물 안 옥상으로 달려가서 문을 연 흥수는 웨딩드레스에 운동화를 신고(위 포스터의 복장) 담배를 피고있는 재희를 발견합니다. 우리 자기 왔냐고 반갑게 맞이하는 재희, 그렇다면 이 둘은 결혼을 앞둔 커플일까요? 타이틀이 뜨며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둘은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 신입생 동기로 처음 만났는데 많이 내성적인 성격인듯한 흥수에 비해 헤어, 패션부터 범상치 않고 잘 놀 것 같고 쿨해 보이기까지 하는 재희는 곧바로 과내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어느날 밤 역시나 신나게 클러빙을 즐기던 재희는 누군가와 찐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던 흥수를 발견하고 장난스럽게 아는 척을 하는데 키스 상대가... 남자였습니다. 사실 흥수는 클로짓 게이였던 것이죠.
혹시 아웃팅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재희를 경계하지만 오히려 과 전체에 소문이 날뻔한 위기에서 재희가 나서서 재치있게 커버해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쿨하게 받아들여주자 호감을 갖게 됩니다. 재희 또한 흔히 '잘 노는 젊은 여성'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해 붙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며 점점 낙인이 찍히고 있을 때 소심하게라도 용기를 내서 자신을 지지해준 흥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곧 둘은 과내 '아싸' 콤비로 의기투합하여 밤마다 클럽에서 신나게 마시고 놀고 즐기다가 아예 같은 자취집에서 동거까지 하며 서로의 20대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됩니다.

-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공감해주고 싸우기도 하다가도 위로해주며 함께 대학생활 - 취업시기를 헤쳐나가는 두 절친의 우정, 로맨스, 청춘 성장물이 되겠습니다. 국내 퀴어문학 작품 중에서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동명의 원작이 있고 책에서는 흥수가 메인 주인공인데 재희라는 베프 여사친과 동거를 하던 시기를 다룬 챕터에서 재희의 비중을 공동 주연급으로 올려서 각색을 했다네요.
한국 서울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를 거치면서 청춘남녀, 그중에서도 게이 남성과 '잘 노는' 여성이 겪었을만한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적절히 생각해보고 공감할 거리들을 던져주면서 흐뭇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잘 만들어진 의미+재미 다 잡은 좋은 작품이었어요.
요즘 아무리 세상이 많이 앞으로 나아갔다지만 여전히 주류 영상물에서 제대로 된 비중을 주고 예의와 존중, 올바른 감수성을 갖춰 그려낸 퀴어 캐릭터는 여전히, 특히 국내에선 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비록 원작과 달리 공동 주인공으로 격하(?)되는 타협과정을 거쳤다지만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클로짓 퀴어가 겪을만한 현실적인 고민과 어려움, 연애생활과 주변인들에게 커밍아웃 하는 등의 소재들을 균형있게 잘 그려낸 작품을 보게되서 무척 반가웠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재밌게 잘 놀고 다니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부당한 차별을 당하고 낙인을 찍히면서도 그 아픔을 토대로 성장해나가는 재희의 이야기도 못지않게 좋았구요.

(네가 너인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 소재도 맘에 들었고 평가, 입소문 자체도 좋은 편이었지만 역시나 김고은을 보고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같은 해에 먼저 개봉했던 '파묘'도 있었고 정말 연기력이나 매력이나 한창 물이 올랐고 배우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자신감이 넘쳐서 신나게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은 게 팍팍 느껴집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무비스타 그 자체이고 작년 '은중과 상연', '자백의 대가'에서 보여준 명배우 포스도 당연히 그랬겠구나 싶었습니다.
인터뷰들을 찾아보니 김고은은 제작진과 첫번째 미팅 자리에서 곧바로 구두로 출연약속을 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는데 흥수 역 캐스팅 과정은 상당히 난항이었다고 하더군요. 정확히는 김고은과 어느정도 급이 맞는 유명 남배우들 중에서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그래서 당시 애플 시리즈 '파친코' 정도를 제외하면 경력이 거의 없었던 신인급 노상현에게 기회가 갈 수 밖에 없었는데 비록 김고은과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들도 눈에 띄었지만 소울메이트 절친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둘의 케미는 훌륭했고 경력 대비 충분히 잘 소화해냈습니다. 청룡에서 신인남우상도 받았다니 결과적으로 매우 잘됐죠.
작품 자체의 평도 좋았고 손익분기점에는 살짝 못 미치는 극장흥행 스코어였지만 부가판권으로 수익이 났을 정도라 이정도면 국내에서 상업영화 규모로 개봉한 퀴어물로서 충분히 유의미한 성과를 냈고 앞으로도 이런 시도들이 점차 늘어났으면 좋겠지만 이 작품 후 약 1년 반이 흐르는 동안 딱히 바통을 이어받을만한 소식은... 하하 뭐 그렇죠.

-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고 러닝타임은 1시간 50여분 정도입니다. 위에 적었듯이 이 영화는 원작에서 흥수와 재희의 이야기를 다룬 챕터만을 각색했고 원작의 내용을 더 포괄적으로 다룬 드라마판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티빙에서 방영이 됐다는데 그것도 봐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예고편이 공개됐을때 국내 종교단체에서 항의를 해서 예고편이 한동안 내려가는등 뭐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네요... 지들 본래 할 일이나 똑바로 하지 뭘 그리 쓸데없는 참견인지 허허;;
*노파심에 부연설명 하자면 글 제목의 '미친년'은 작중에서 재희가 남들에게 그렇게 불리니까 "그래 나 미친년 맞다 어쩔래?" 하는 식으로 대응하는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나레이션으로 서로를 그렇게 지칭하면서 우리의 애니멀 라이프가 시작됐다고 말하기도 하구요.
극장 개봉했을 때 그냥 청춘 로맨스물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생각보다 참신한 내용이었군요. 네플릭스에 있다니 꼭 챙겨보겠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개봉 당시에는 마케팅에서 강조를 안해서인지 퀴어 소재인지는 몰랐어요. 동명의 원작 책이 있는 것도 몰랐으니... 그래서 퀴어물인지 모르고 봤다가 욕했다는 후기도 보긴 했습니다. 하하;;
작품은 진짜 좋으니까 재밌게 보시길 바래요!
아주 정확하진 않은데 맞습니다. 그 대사 ㅋㅋㅋ 제가 본문에 쓴 것도 있고 좀 직접적으로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사들이 있는데 전부 효과적으로 잘 썼다고 생각해요. 언급하신 대사는 정말 사이다였죠. 하지만 뭐 X페미 같은 대사였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ㅉㅉ
얼마 전에 추천글 올렸던 '세상의 딸들'에서도 그렇고 판타지 같지만 정말 실제로 저런 영혼의 단짝같은 친구가 있다면 동거생활도 해볼만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 장면은 이 영화가 어쨌든 밝은 청춘물을 지향하니까 좋게 끝나지만 현실에서 대개 어떻게 되는지 평소 뉴스에서 너무 자주 보다보니 마음에 걸리긴 하더라구요. ㅠㅠ
연기는 최근에 쭉 너무 잘했지만 그 중 가장 매력적으로 나온 작품으론 저도 이걸 꼽을 것 같아요. 노상현은 '파친코'에서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고 그냥 딱 역할에 맞게 훈훈하다 싶었는데 여기선 포텐이 보이더라구요.
이게 고작(?) 15세 관람가였고 개봉 시기가 대충 맞아서 학생들 단체 관람작 후보에 올려놨다가... 나의 일자리는 소중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포기했던 추억의 영화입니다만, 저도 정작 보지는 않았죠. ㅋㅋ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었군요. 평소 잘 보는 장르는 아니지만 김고은에 대한 마음(??)으로 일단 찜은 해두겠습니다!
후보에 올려놓으셨던 것만으로도 매우 용감하십니다? ㅋㅋ 미국에서 한 교사가 퀴어관련 요소가 아주 살짝 들어간 픽사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줬는데 학부모들이 난리도 아니었다는 걸 보면 말이죠. 하하;;
저도 김고은 참 좋아하는데 출연작 중에 연기는 기본이고 매력 최고치 경신한 배역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