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한테 '듀나풍 SF 단편 써줘'라고 했더니...

1. 기억 편집사 — 사망자 기억을 정리하는 화자가 의뢰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발견.   자아/타인 경계의 존재론적 SF.                                                    
2. 외계어 번역 AI — 외계 언어를 번역하는 AI가 인간 언어를 잊고, 담당 언어학자도 사고가 변질. 소통과 변질.                                                        
3. 궤도 엘리베이터 동료 — 유지보수 기사가 동료의 부재를 알아차리지만 시스템은 존재한 적 없다고 말한다. 일상의 균열.                                            
4. 심해 군체 생물 — 미지의 생물이 승무원 신경계를 모방, 감각이 공유되기 시작.      신체 경계의 해체.                                                                  
5. 세대선 지구 아카이브 — 3세대 승무원이 '지구' 기록을 복원하지만 진위가 의심스러워진다. 기원과 허구.                                                                                                                                        
어떤 방향으로 갈까요?

(1번 선택)

# 정리사

서진의 파일이 내 작업대에 올라온 건 화요일 오후였다. 이전 의뢰—일흔두 살 여성, 치매 진행 전 기억 보존 건—의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고 커피를 내리는 사이에 알림이 떴다. 서진. 사십삼 세. 사고사. 유족 의뢰. 특이사항: 정리사 지정 있음.

정리사 지정은 드물지 않다. 생전에 보관 계약을 맺은 사람 중 일부는 특정 정리사를 지명한다. 대개는 지인이거나, 평판을 보고 고르거나, 아무 이유 없이 고른다. 이유를 밝힐 의무는 없다. 나는 지정 의뢰를 연 서너 건 받아왔고, 그때마다 의뢰인을 알지 못했다.

장비를 켰다. 기억 데이터를 로딩하는 데 십사 분. 그 사이에 의뢰서를 읽었다. 유족은 서진의 배우자였다. 편집 요청 사항은 표준적이었다. 사적 기억 중 배우자와의 친밀한 장면 삭제, 업무 기억 중 기밀 분류 항목 마스킹, 나머지는 정리사 재량. 배우자는 비고란에 한 줄을 덧붙였다. "본인이 원한 거예요."

모니터링 모드에 진입했다. 서진의 기억이 3인칭 시점으로 펼쳐졌다. 기억 속의 서진이 어딘가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전의 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컵이 있었고 컵 안에 커피가 반쯤 남아 있었다. 편집할 것이 없는 장면이었다. 다음으로 넘겼다.

기억 편집은 영상 편집과 비슷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르다. 기억에는 시간 축이 있되 선형이 아니다. 하나의 기억이 다른 기억과 감각으로 연결되어 있고, 특정 장면을 삭제하면 연결된 장면의 맥락이 훼손된다. 정리사의 일은 삭제보다 봉합에 가깝다. 잘라낸 자리를 자연스럽게 메워서, 기억을 재생하는 사람이 빈 곳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서진의 기억은 정돈되어 있었다. 감각 연결이 일관적이고, 시간 축의 왜곡이 적다는 뜻이다. 작업하기 수월한 유형이었다. 나는 의뢰서에 표시된 항목들을 순서대로 처리했다. 배우자와의 장면을 잘라내고 봉합했다. 업무 기밀을 마스킹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나는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월한 작업이었고, 손이 멈출 타이밍을 놓쳤다.

쉬어야 했다. 그런데 다음 장면을 넘기다가 멈췄다.

카페였다. 서진이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누군가가 있었다. 3인칭 모니터링이므로 나는 그 장면을 밖에서 보고 있었다. 서진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나였다.

확대했다. 모니터링 모드에서는 기억 속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 있다. 나였다. 지금의 나와 거의 동일한 얼굴. 머리 길이, 안경, 왼쪽 귀 위의 작은 흉터까지 같았다. 기억 속의 나는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모니터링 모드에서는 음성이 선택적으로 재생된다. 서진의 주의가 향한 소리만 들린다. 서진은 내 말을 듣고 있었고, 그래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야."

내 목소리였다. 위조가 아니었다—적어도 데이터 수준에서는.

모니터링을 일시 정지하고 데이터 속성을 확인했다. 이 장면의 기억 생성 시점은 삼 년 전이었다. 편집 이력은 없었다. 원본 그대로.

삼 년 전에 나는 이 카페에 간 적이 있는가. 삼 년 전의 화요일과 수요일과 목요일은 대개 비슷했다. 갔을 수도 있고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서진이라는 사람을 몰랐다. 그건 확실했다. 아마.

작업을 계속했다. 서진의 기억을 시간순으로 넘기면서 나를 찾았다. 편집해야 할 항목은 아니었지만, 편집할 수 없었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을 잘라내면 보고서에 사유를 적어야 한다. 사유를 적으려면 무언가를 설명해야 한다. 지금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는 서진의 기억 속에 네 번 더 나타났다. 합쳐서 다섯 번이었다.

두 번째는 거리였다. 서진이 걷고 있었고 맞은편에서 내가 걸어왔다. 스쳤다. 아는 사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세 번째는 다시 카페였다. 같은 카페인지 다른 카페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서진과 나는 마주 앉아 있었고 서진이 말했다.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째는 어떤 건물의 복도였다. 나는 복도 끝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중이었다. 서진은 복도 반대편에 서 있었다. 서진이 나를 보았다. 나는 서진을 보지 않았다.

다섯 번째는 공원이었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기억 속 시간으로 사 분 정도. 서진의 시선은 내 쪽을 향하지 않았고, 나의 시선도 서진 쪽을 향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은 벤치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억이 거기에 머물렀다. 서진이 그 사 분을 기억할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장비를 끄고 의자에 기대앉았다. 천장의 환기구에서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환기구를 보았다.

---

다음 날 자기 기억 스캔을 신청했다. 정리사는 자기 기억에 대한 정기 스캔 권한이 있다. 직업병 예방 차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다. 자기 기억을 들여다보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기억은 업무지만 자기 기억은 다르다.

스캔 결과는 한 시간 뒤에 나왔다. 편집 흔적 없음. 지난 십 년간의 기억 데이터에 외부 개입의 흔적이 없었다. 기억이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인간의 기억은 원래 불완전하고 자기 편집이 일어난다—그러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내 기억을 조작한 적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나는 서진을 만나지 않았다. 서진의 기억에 내가 있지만 내 기억에 서진은 없고, 내 기억은 조작되지 않았으므로, 서진의 기억이 틀린 것이다. 서진이 나를 실제로 만나지 않았는데 만났다고 기억하고 있거나, 다른 누군가를 나의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있다. 기억은 녹화가 아니라 재구성이므로, 얼굴이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체되는 일이 일어난다. 뇌가 빈 자리를 채운다.

한에게 물었다. 한은 내 맞은편 작업실을 쓴다. 이 사무실에서 가장 오래 일한 정리사다.

"기억 속 인물의 외형이 의뢰인의 재구성일 수 있지." 한은 모니터를 보면서 말했다. 자기 작업 중이었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인데 얼굴만 네 거로 덮어씌운 거."

"데이터 수준에서 위조 흔적이 없었어."

"재구성은 위조가 아니야. 기억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니까. 로그에 안 남아." 한은 여전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서진이 너를 어디서 봤겠지. 직접 만난 게 아니라 사진이나 영상에서. 그 이미지가 기억 속 인물한테 씌워진 거야."

가능한 설명이었다. 다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서진은 사망했고, 서진의 기억 속 '나'에게 질문할 수는 없었다.

"그냥 처리해." 한이 말했다. "네가 등장하는 건 편집 대상이 아니잖아. 의뢰서에도 없고. 그대로 두면 돼."

한의 말이 맞았다. 의뢰서에 없는 항목을 정리사가 임의로 편집하면 윤리위원회 소관이다. 나는 서진의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야 했다.

작업실로 돌아가서 서진의 기억을 계속 편집했다.

---

자기 기억 스캔 결과를 다시 읽었다. 편집 흔적 없음. 편집 흔적이 없다는 것은 내 기억이 온전하다는 뜻이고, 온전한 기억 속에 서진이 없다는 것은 서진을 만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완결된 문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스캔을 다시 읽고 있었다. 한 번 확인한 결과를 또 확인하고 있었다.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 바뀌기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왜 다시 읽고 있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편집 흔적이 없다는 것은, 편집 흔적이 남는 방식으로 편집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억 기술 초창기에 처리된 데이터는 로그 포맷이 현재와 달랐다. 호환되지 않는 로그는 스캔에서 감지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업계에서 팔 년을 일했고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스캔 결과지의 하단에도 그 내용이 면책 조항으로 적혀 있었다. "본 스캔은 현행 로그 포맷 기준이며, 구형 포맷에 대해서는 완전한 감지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면책 조항은 원래 아무도 읽지 않는 문장이다. 나도 읽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내 기억 데이터가 구형 포맷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은 낮았다. 나는 기억 기술이 보편화된 이후에 성인이 되었고, 구형 포맷이 사용되던 시기에 기억 편집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없다는 것과 달랐다. 나는 그 차이를 직업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타인의 기억에서 그 차이를 처리하는 것이 내 일이었으므로.

서진의 기억을 전부 편집하는 데 이틀이 더 걸렸다. 그 사이에 나는 자기 기억 스캔을 두 번 더 했다. 결과는 같았다. 편집 흔적 없음. 세 번의 동일한 결과가 있었고, 세 번 모두 내가 다음에 한 일은 면책 조항을 읽는 것이었다.

한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스캔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같은 사무실이고, 스캔 신청은 공용 시스템을 통하므로. 그러나 한은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관심을 두지 않기로 한 사람이었다. 그 둘이 같은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

서진의 기억 중 마지막 것은 기억 보관을 의뢰하는 장면이었다. 접수 창구였다. 서진이 서류를 내밀고 있었다. 접수 담당자가 모니터를 보며 질문했다.

"정리사 지정하시겠어요?"

"네. 윤으로요."

"성함이…"

"윤이요. 그쪽에 있을 거예요."

담당자가 시스템을 확인했다. "윤 정리사님. 확인됩니다."

서진의 표정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오래전에 정해둔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세 번 재생했다. 편집할 것은 없었다. 의뢰서에 해당하는 항목이 없었고, 내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서진이 내 이름을 말했을 뿐이었다.

서진은 나를 알고 있었다. 정리사 목록에서 이름을 골라낸 것이 아니었다. "그쪽에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이 사무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서진을 몰랐다.

내 기억에 편집 흔적은 없었다.

---

보고서를 작성했다. 편집 항목, 봉합 처리 내역, 아카이브 등록 권고. 표준 양식이었다. 비고란에 적을 것이 있는지 잠시 생각했다. 적지 않았다. 적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장비를 껐다. 다음 의뢰 파일이 대기열에 올라와 있었다. 박모. 육십칠 세. 자연사. 유족 의뢰. 특이사항: 없음.

파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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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상: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끝나는 감이 없지는 않은데 그래도 듀나님 문체 잘 흉내낸 것 같기도 하고... 중간까지는 제법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무리가 살짝 아쉽네요.
AI가 쓴 글은 저작권이 없다죠. 그래서 위 단편은 그대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ㅋㅋㅋ(제가 건드린 부분 없음)

    • 문체는 듀나님 문체라기 보단 듀나님 문체랑 닮은 다른 누군가의 문체... 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신기하네요. 제가 평소에 AI를 멀리하며 살아서 그런지 정말로 신기합니다. ㅋㅋ 놀라운 세상! 누가 결말만 조금 더 뭔 내용이 있는 버전으로 바꿔줬으면 좋겠어요... 하하.

      • 지금보니 소재는 듀나님이 쓴 단편 느낌이 좀 나는데 말씀대로 문체는 그렇게까지 비슷하진 않네요 ㅋㅋ 아시겠지만 유튜브에 올라와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AI 동영상이나 노래들은 한번에 뚝딱하고 나온 게 아니라 잘 나온 결과물을 여러 번 뽑아서 편집한 것이죠. 이 단편도 좀더 요구해보면 보다 나아질 것 같은데 나중에 해보겠습니다.

    • 참 신기하면서도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듀나님이 리뷰한 적 없는 영화들도 '듀나체로 리뷰해줘' 라는 식으로 하면 대충 비슷하게 나올 것도 같고 하하;;

      • 기존에 듀나님이 쓰신 영화 리뷰가 AI 학습 대상으로 들어갔다면 말씀대로 그런 식으로 작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작권에 대해 민감한 일본 크리에이터들은 자기 그림이나 글, 곡 같은 걸 AI 학습 대상으로 쓰지 말라고 강하게 권고 사항을 넣어놓기도 하더라고요.

    • AI한테 이런저런 소설 써보라고 하면, 소재만 달라질 뿐 다들 딱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요 글도 비슷하네요.
      • 오오 많이 시켜보신 모양이군요. 저는 각 모델(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마다 쓰는 말투가 조금 다르다는 건 아는데 말씀하신 비슷한 지점 같은 건 아직 못 느꼈습니다. 이 글은 클로드한테 시켜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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