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추천] 살아야 할 가치 '나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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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딴 곳의 한 허름한 집에서 영화의 주인공 윌이라는 남자가 십여개의 TV 화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부 1인칭 시점인데 보다보면 실시간으로 해당 영상 주인공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윌은 이들의 삶을 모니터하면서 특이사항이 있으면 메모를 하고 하루치 영상을 녹화한 VHS를 정리하는 등의 관리자로 보입니다.


이중 윌이 유독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한 영상이 있는데 느닷없이 차 사고를 당하면서 영상이 끊깁니다. 아마 죽으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충격을 받은 윌과 그를 위로하는 동료, 그리고 다음날 몇명의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오고 윌은 이들을 면접관처럼 인터뷰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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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이곳은 현실세계가 아닌 일종의 이승과 저승사이의 경계 같은 곳이고 윌은 태어나고자 하는 영혼들 중 누가 적합할지 총 9일의 심사과정을 거쳐 하나를 최종선택하고 그렇게 태어난 영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니터를 하는 게 일입니다.(당연히 그들의 삶에 관여는 불가능) 관리자 1명 당 약 10여개의 영혼들을 담당하는 것 같은데 오프닝에서처럼 한 명이 사망하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영혼 후보들이 몰려오고 또 그 중에서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죠. 이 영혼들은 막 태어난 존재들이지만 성인으로 자라났을 경우 어떤 모습일지를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외모와 성격, 개성, 자질 등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 판단의 근거가 되죠.


- 최근 삶과 죽음에 관해서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았는데 마침 시놉시스가 눈에 들어왔고 출연진도 탄탄하길래 감상했습니다. 각본 & 연출의 에드손 오다는 재밌게도 일본계 브라질 출신의 감독인데 작품의 내용도 그렇고 여러가지 설정과 분위기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를 연상시키는데 아예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고 다녔더군요. 큰 차이가 있다면 그 영화는 죽음 이후를 다뤘고 이건 태어나기 전이죠. 영혼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픽사의 '소울'도 생각이 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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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세번째가 감독님



-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내려야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 결국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같이 얘기하고 싶어하는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과연 어떤 성정을 갖춘 영혼이라야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삶이라는 것이 꼭 태어나서 살아야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등에 대해서 말이죠.


어떤 이유에서인지 윌은 세상을 힘들게 견뎌내야하는 거칠고 험한 곳으로 보고 그래서 영혼은 착하고 감성적인 것보다 강인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굉장히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도모해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일지라도 윌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렵진 않죠. 물론 그럭저럭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뉴스들을 잠깐만 훑어봐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와 선택과는 관계없이 끔찍한 일들을 겪고 저럴거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사건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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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그래가지고 이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너무 희망적으로 바라보면 나이브해 보이고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보면 관객들 입장에서 암울할 수 있는데 그래도 이건 그 중간에서 절묘한 밸런스를 잘 잡아서 그려낸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외딴 곳의 허름한 집이라는 하나의 로케이션에서 대부분 대화 위주로 진행되는 2시간짜리라 저예산 대비로 해도 손해를 봤을 정도로 흥행은 망이었습니다만 평단이나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골고루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제한적인 배경에서도 아름답고 감각적인 촬영으로 최대한 여러가지 볼거리를 뽑아냈고 인디영화에 잘 어울리는 로우파이한 스코어까지 저는 참 맘에 들었습니다.


톱스타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활발히 활동중인 배우들이 다들 크게 튀지 않게 제몫을 탄탄히 해주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출연진들도 뭔가 보여줄 수 있는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하나씩은 부여받고 있구요. 특히 주인공 윌을 맡은 윈스턴 듀크가 당연하겠지만 가장 돋보입니다. 마블 '블랙 팬서' 팀의 씬 스틸러 음바쿠로 이름을 알린 배우인데 평소 저 거대한 몸집과 강한 발성, 목소리에서 또 이렇게 섬세하고 사람 마음을 울리는 연기도 가능했구나 싶어서 놀랐습니다. 감독님도 원래 전혀 다른 느낌의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첫 미팅만에 바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특히 혼자 한참동안 독백 개인기로 장식한 엔딩 씬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를 감상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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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잔하고 감성적인 인디스타일이 별로이신 분만 아니라면 좋게 보실 것 같습니다. 저는 참 좋았네요. 요즘 심적으로 많이 흔들렸는데 용기와 힘을 많이 전달받은 느낌이었어요. 언급했듯이 '원더풀 라이프' 감성으로 그려낸 '소울'이라고 보시면 되겠어요. 아쉽게도 스트리밍에선 볼 수 없고 각종 서비스에서 천몇백원 정도로 개별구매만 가능합니다. 유튜브에서 표준화질 900원이 최저가격.

    • 소개글 감사합니다. 제가 무사히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적어두었어요.

      식사 잘 챙겨드시고 계시죠?
      • 보는데 힘드실만한 그런 장면들은 없습니다. 다만 다루는 주제에서 인생에서 힘들고 어렵고 비극적일 수 있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파고들어간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요. 빵도 먹고 밥도 먹고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ㅋㅋㅋ 쏘맥님도 평소처럼 맛있는 거 잘 챙겨드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 안 그래도 며칠 전 왓챠에 '원더풀 라이프'가 올라왔는데요. ㅋㅋㅋ 그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옛날에 본 영화였는데 그 당시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렇게 네임드는 아니었다 보니 감독이 누군지 잊은(모른?) 채로 살았더라구요. 당시엔 좋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보면 어떨지 몰라서 그냥 찜만 해놨습니다. (그러니까 망하지 마 왓챠야. ㅠㅜ)




      설정만 봐선 되게 나이브 & 로맨틱 폭주 영화일 것 같은데 균형을 잘 잡았다니 호기심이 생깁니다만. 무려 900원이라니!!! ㅋㅋ 일단 기억해 두겠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감정적으로 도움 되는 영화들이 당기곤 하니까요. 글 잘 읽었어요!

      • 저는 '아무도 모른다'로 이 감독을 처음 접한 뒤에 이렇게 따뜻한 영화도 만들었구나 싶어서 놀랐던 기억인데 아마 국내 첫 개봉 당시에 보신 분들은 다 비슷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프닝부터 주인공이 심한 멘탈 데미지를 당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생 비관주의를 설파하는건가 싶은데 중간 균형을 잘 잡아가더군요. 개별구매만 가능한 영화들 추천글을 올릴 때마다 배티님이 고민하시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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