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의도가 좋은 건 알겠습니다만. '상상 게임' 잡담입니다

 - 2018년작이라네요. 런닝 타임은 1시간 31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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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일본 영화 포스터들 중에 이렇게 출연진 얼굴을 다 넣어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아래 작은 칸 사람들 중 세 명은 출연 분량이 1~2분 밖에 안 되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역할이 기억도 안 나요... ㅋㅋ)



 - "낮에는 회사 부장, 퇴근 후에는 팬티 여신으로 활약하며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는 마키코. 어느 늦은 밤,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다 들켜 집을 나온 아오이와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 라고 왓챠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고 적는 이유는 이 설명이랑 뭔가 많이 다른 영화이기 때문이겠죠. 엄밀히 말해서 저게 틀린 요약은 아닙니다. 대략 저게 영화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중요 사건들인 게 맞아요. 근데 이렇게 적어 놓으면 무슨 환타지스러운 상상력을 뿜어내는, 코믹하고 과장된 즐거운 영화... 같은 느낌이잖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서 재생을 눌렀구요. 그런데 아닙니다. 전혀 아니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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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꽤 영향력 큰 연예계 으르신이라는 히사모토 마사미님. 전 전혀 몰랐구요.)



 - 일단 저기에서 말하는 '팬티 여신'이라는 건 마키코가 밤마다 유튜브 라이브를 켜고서 시부야 곳곳에 자신의 팬티를 벗어 숨기는 걸 보여준 후 구독자들이 그걸 찾게 하는 게임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키코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나이 먹고 못 생긴 데다가 일만 알고 성격 까칠한 장년 여성이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게 서럽고 고독해서에요. 아오이가 집을 나오게 된 이유는 단지 '남편 복수 사이트'를 운영해서가 아니라 거기에다 살인 예고를 하고 남편의 식사에 표백제를 들이 부었다는 걸 들켰기 때문이구요. 이 양반이 왜 이런 짓을 했냐면, 남편에게 늘상 무시당하고 외면 당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결국 남성들에게 소외 받고 상처 입은 결과 비행(?)을 벌이던 여성 둘이 인연을 맺고서 서로를 위해주고, 결국 서로의 인생을 구원해주는 뭐 그런, 아주 진지 심각 우울하면서 교훈적, 감동적인 페미니즘 스토리... 뭐 이런 걸 의도한 작품이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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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때는 그 유명한 AKB의 간판이자 아이콘 급으로 잘 나갔다는 이타노 토모미님. 물론 전 전혀 몰랐...)



 - 문제는 이야기의 총체적 부실입니다. 아니 기술적으로는 괜찮아요. 촬영이나 음악 활용은 오히려 썩 좋은 편이고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도 좋습니다. 찾아 보니 마키코 역할 맡으신 분은 일본 연예계에서 꽤 영향력도 있는 고참 배우라고 하고, 아오이 역을 맡은 분은 AKB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이콘에 가까운 (과거의) 대인기스타였고 뭐 그렇더라구요. 암튼 그래서 종종 나오는 감성적인 장면들은 의외로, 기대보다 꽤 먹히고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그냥 각본이 허접해요. 마키코는 사정이 좀 낫지만 아오이의 경우엔 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남편에게 표백제를 먹여 죽이려 계획하고 실행에까지 옮긴 사람을 두고 관객들이 감정 이입을 하게 하려면 그래도 빌드업이 좀 되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그게 전혀 없습니다. 무시당했다. 가정 폭력까지 당했다. 라고 대사로 두어 번 반복하는 걸 제외하면 뭐가 아무 것도 없거든요. 회사에서 부하 여직원을 그렇게 잔인하게 갈궈대는 마키코가 한밤에 놀이터에서 마주친 모르는 젊은이를 왜 그리 살뜰하게 챙겨주는지도 모르겠고. 나중에 둘의 관계가 그렇게 깊어지는 이유도 모르겠고. 후반에 비중이 커지는 마키코의 부하 여직원은 그냥 신비의 미스테리(...)입니다. 계속 어라? 어라라?? 엥? 하게 되는 행동들만 하는데 싹 다 이해가 안 되죠.


 이렇게 캐릭터도, 그들의 감정선도, 사건의 전개도 다 맥락 없이 제 멋대로이다 보니 생기는 크리티컬한 문제가요. 대놓고 여성 서사를 의도했는데 여성들의 현실도, 그들의 내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듣기 좋고 아름다운 좋은 의도를 내세우고선 대상에 대한 아무런 이해가 없다는 걸 팍팍 티내면서 괴상하고 튀는 이야기를 늘어 놓고 있으니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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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상 굉장히 나쁜 놈이어야 할 저 우측의 남편 놈의 나쁨이 정말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캐릭터 구축이 다 망했으니까요.)



 - 그리고 덧붙여서. 도입부에 제시되는 저 '팬티 여신'과 '남편에게 복수하는 사이트' 라는 아이디어는 뭐 별 거 아니더라도 일단 흥미를 유발할 정도는 되었거든요. 근데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복수 사이트 얘긴 그냥 끝이고, 팬티 여신 이야기도 참 뻔한 방향으로 조금 흘러가다 멈춰요. 그리고 그걸 대신할 그 어떤 아이디어도, 특별한 전개도 없구요. 좋게 보자면 저런 것들로 관심을 끈 후에 진지한 드라마를 보여주겠다... 는 의도로 봐 줄 수 있겠지만 이미 적었듯이 그 '진지한 드라마'가 완전 사상누각이고 이야기 중반부터 와장창 무너지고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사실은 그냥 상상력이 딱 시작까지만이어서 어쩔 수 없이 심각한 드라마로 가신 게 아닌가요' 라고 묻고 싶어지고 그랬습니다. 여러모로 되게 안 좋은 방향으로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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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음악의 힘으로 이 둘이 애틋하다는 건 알겠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진 않는군?)



 - 그러니까 아무도 안 보셔도 됩니다. ㅋㅋ 

 뭐랄까.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압축해서 '기묘한 이야기'류의 짧은 단편들 모음 시리즈 중 한 편으로 내보냈다면 그냥저냥 볼만 했을지도. 라는 수준의 이야기였는데요. 저예산 티는 풀풀 나지만 어쨌든 이걸 유명 배우들 불러다 찍어서 극장에 걸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 일본 영화계는 되게 희망적인 상황일지도?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ㅋㅋㅋ

 아쉽긴 해요. 이미 적었듯이 앞뒤 맥락 다 자르고 보면 괜찮아 보이는 장면들도 좀 있었고. 배우들 연기들도 좋고 그랬거든요. 진짜로 진지하게 봐 줄만하고 보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로 잘 다듬었다면 꽤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나와 있는 결과물이 그런 최선의 결과와는 매우 많이 거리가 먼 관계로 심플하게 비추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하;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그래서 마키코는 직장에선 계속 젊은 부하 여직원을 갈구고, 높으신 남자 분들에겐 죽어라 비위를 맞추면서 어쨌든 자기 일은 열심히 하는. 그러면서 남자 직원들에게 '일만 아는 할망구 ㅋㅋㅋ' 라고 무시 당하며 사는 사람이구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진행하는 퇴근 후 '팬티 여신' 활동으로 외로움도 달래고 자존감도 채우고 그러며 지내다가... 이미 적은대로 남편을 살해하려다 실패해서 집을 나와 버린, 그러다 노숙을 시도 중이었던 아오이를 만나 다짜고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재워줘요. 그러면서 자신의 정체 - 팬티 여신! - 도 드러내고선 너도 같이 해보자고 회유를 시도하지만 쿨하게 거절 당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비싼 옷들도 사 입히고 아주 지극 정성입니다.


 그러다 맥락 없이 추가로 밝혀지는 것이, 사실 아오이는 중졸이고 남편에겐 대졸이라고 뻥을 치고 결혼했는데요. 그 이유는 세상에 닳고 달아 사방에 사기 치고 다니는, 그리고 남편 만큼이나 아오이를 무시하며 하찮게 보는 엄마 때문이구요. 이런 사실을 흥신소 직원을 통해 모두 알게 된 남편은 아오이를 더더욱 무시하게 되는데...


 이때쯤 쌩뚱맞게도 마키코에게 학대 당하던 부하 직원은 마키코가 공들여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함께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었던 어느 회사 젊은 사장을 꼬시는 데 성공합니다. 목표는 그 프로젝트에서 마키코를 배제해 버리고 자기가 리더가 되어 공을 세워 보려는 것이었는데요. 그 사장이 다짜고짜 모텔로 데리고 가자 기꺼이 따라가다가... 모텔에서 어떤 아저씨와 나오는 성매매 여성과 마주쳐요. 그리고 남자에게 돈을 받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선 뭘 깨달았다는 듯이 사장에게 '오늘은 아닌 것 같다.' 면서 물러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 여전히 팬티 여신 활동에 열심이던 마키코가 과욕을 부려서 공원 남자 화장실 변기에 팬티를 숨기려다가 순찰 돌던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마키코의 라이브를 보며 우리 여신님 얼굴 한 번 보자고 우루루 몰려왔던 남자들이 마키코의 실체를 목격하고, 인터넷상에선 엄청난 조롱과 비난 잔치가 벌어지겠죠. 뭘 사기죄로 고소 고발을 하겠다느니... 그러구요. 


 다음 날 마키코는 경찰서에서 풀려나지만 취재진이 우루루 몰려와 당혹스럽구요. 다음 날 출근을 했더니 인터넷으로 신상이 털린 상태이면서 모든 직원이 그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수치심에 꺼이꺼이 울며 퇴근하는 마키코구요. 그 시각에 아오이는 집에 돌아가 남편에게 말없이 이혼 서류를 내밀고, 자기 짐을 챙겨서는 마키코의 집으로 갑니다.


 이미 회사에서 당한 수치와 온세상에 자신의 행각이 까발려졌다는 사실에 맛이 가 헤롱거리던 마키코는... 한밤중에 갑자기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집 밖으로 걸어 나갑니다. 그 뒤를 아오이와 취재진이 따르구요. 자기가 사는 아파트 앞 벤치에 멈춰선 마키코는 아오이에게 자신의 폰을 건네 주며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구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대로 '팬티 여신' 방송을 시작한 후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벤치 위에 두고 돌아와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무도 건드리지 않던 그 팬티를 드디어 등장한 노숙자님이 조심스레 집어 들고선 걷고 걸어요. 이때 자기 집 베란다에서 아오이와 그걸 지켜보는 마키코... 인데 노숙자 아저씨가 그걸 집어든 이유는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ㅋㅋ 그래서 마키코도 허탈하게 웃고, 그렇게 끝나려는 순가! 갑자기 나타난 마키코의 부하 직원이 그 팬티를 빼앗아들고 베란다의 마키코에게 외칩니다. "이렇게 포기하시면 안 되죠! 싸우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장님!!" 아니 얘는 마키코에게 왜 잘해 주려는 건데


 장면이 바뀌면 3년 후입니다. 그 부하 직원은 직장에서 고속 승진해서 그간 마키코를 비웃던 남자 직원들을 대놓고 갈구고 조롱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구요. 이 회사의 신입 사원으로 아오이가 다니고 있네요. 남편과 이혼하고 독립하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 중인가 봅니다. 그리고 마키코가 직장 앞으로 찾아와서 아오이가 나가서 만나요. 둘의 대화를 보면 마키코는 내친 김에 여성 속옷 브랜드를 런칭해서 대박이 난 듯 하구요. 남자 친구도 생겨서 잘 지내고 있답니다. 대충 서로 화이팅하고 훈훈하게 헤어진 후에... 새 남자 친구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자길 찍어 달라는 마키코, 그리고 그 폰에다 대고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저는 팬티 천사에요. 오늘도 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라고 인사하는 마키코의 모습으로 엔딩입니다.

    • 보통 배티님이 정리해주시면 허섭한 영화도 지나치게 멀쩡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는데 와....이거는 정리해주신 걸 봐도 이미 이상한데요.... 여성 서사를 해보자! 그게 요즘 트렌드라더라! 까지라도 도달한 것에 기뻐야하는 걸까요 아니면 여성서사라고 기획을 한 게 이 정도가 최선이고 업계의 굵직한 배우들 보시기에도 이게 그나마 최선이었던 것에 아쉬워야하는 걸까요.
      • 줄거리가 흐리멍텅하면 대략 기둥 요소만 골라내서 적으면 멀쩡해 보이는데요. 이건 줄거리가 선명한데 그냥 이상합니다. ㅋㅋㅋ 뭐 일본에도 괜찮은, 때로는 훌륭한 여성 서사 작품들이 드물지 않으니 그냥 이걸 만든 사람들이 심히 부족하셨던 걸로... ㅠㅜ

    • 전 AKB48도 잘 모르고 저 으르신이라는 분도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네요. 본업은 개그맨 쪽에 더 가까우신가봐요. 하여간 '의도만 좋았다'에 해당하는 작품이라니 안타깝습니다. 이 소재로 그렇게 만들면 오히려 조롱만 당하고 별로 도움이 안되는데 말이죠...




      진짜 일본영화 특유의 저 굳이 조/단역들 작은 얼굴로 끼워넣는 포스터는 작품 완성도와 별개로 사전 감상의욕을 떨어트릴 정도로 짜치죠. ㅋㅋ

      • 저도 으르신은 모르는 분이었고 AKB 멤버님은 검색해서 얼굴을 보니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오래 전에 사진으로 뵙던 분이란 게 간신히 기억이 나고... 그랬습니다. ㅋㅋ 암튼 나름 건전하게 훈훈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전혀 교훈이 되지 않는 작품이어서 난감할 뿐이었네요.




        아마도 일본 특유의 예의(?) 같은 게 아닐까. 라고 짐작합니다. 역할은 작아도 경력 되는 배우님들이 나오시면 어떻게든 사진은 넣어드려야 하는... 뭐 그런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소속사들 알력일 수도 있겠구요. ㅋㅋ

    • 잘 읽었습니다. 제가 특촬은 몰라도 일본 현대 드라마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전혀 모르는 영역이네요. 최근에 일본 고양이 다큐 같은 게 케이블에 좀 올라와서 그거 틀어 놓고 잠드는 중이네요 ㅎㅎㅎ :DAIN_

      • 고양이와 멍멍이 영상은 가끔 인스타에 추천으로 뜨는 걸 챙겨 보곤 합니다. 사실 그런 영상만큼 아무 생각 없이 보며 시간 죽이기 좋은 것도 드물죠. 물론 인스타에 올라오는 것들 중엔 함정 카드가 많아서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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