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 2024, [위키드: 포 굿] 2025
감독 : 존 추
주연 :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양자경, 제프 골드블룸
"오즈"의 세계는 무려 125년의 세월동안 사랑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900년, L. 프랭크 바움이 원작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썼고,
1939년, 빅터 플래밍 감독, 주디 갈란드 주연의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개봉했습니다.
1995년,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가 나왔고
2003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위키드]가 초연되었으며,
2024년, 2025년에 영화 [위키드], [위키드: 포 굿]이 개봉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 [위키드] 연작은 원작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5차 창작물입니다.
영화는 구조적으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1막과 2막을 거의 그대로 두 편으로 분할해 영화화하면서, 스크린에 걸맞는 디테일을 추가했습니다.
뮤지컬 [위키드]는 [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의 4대 뮤지컬 이후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역대 흥행성적에서도 [라이온 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모두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로서, '사악한 서쪽 마녀'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시니컬한 은유로 답하는 원작소설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화려한 쇼와 환상적인 넘버들을 더하여 많은 이들의 갈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무대 공간을 벗어나, 오즈의 광활한 세계관은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로 확장되었습니다.
인물들의 관계와 정치 구조를 대사로 설명하던 무대와 달리, 영화는 공간의 스케일과 미장센을 통해 다양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결과 1부는 뮤지컬의 1막을 비교적 충실히 따라가되, 인물의 동선을 더 넓은 오즈 세계로 확장시키며 “이야기의 크기”를 키우는 데 성공합니다.
반면 2부에서는 원작 뮤지컬의 급박한 전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영화적 보강이 충분히 더해지지 않아, “이야기의 속도”에 쫓겨 서사의 밀도가 떨어지는 불균형이 생깁니다.
영화를 끌고 가는 가장 강력한 엔진은 단연 두 주연 배우의 퍼포먼스입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는 단순히 ‘초록 마녀’의 재현이 아니라, 상처와 분노, 이상과 두려움이 뒤엉킨 복합적인 내면을 그려냅니다.
그녀의 연기는 엘파바의 내적 변곡점을 짚어냅니다. 처음에는 타인의 시선을 경계하는 조용한 학생으로 출발하지만, 마법과 정치, 그리고 차별의 구조를 깨닫는 순간마다 눈빛과 목소리의 질감이 조금씩 거칠어지다가, 결국 스스로 ‘Wicked’라는 손가락질을 감내하기로 결심하는 지점에서, 관객들은 이 인물이 왜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납득하게 됩니다.
특히 1부의 클리프행어를 이루는 ‘Defying Gravity’는, 다이나믹한 탈출신과 함께 가사 하나, 음정 하나까지 뜨거운 감정을 담아내는 폭발적인 절창으로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를 선사합니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글린다는 캐스팅 발표 당시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사랑스럽고 복잡합니다.
1부의 아이코닉한 넘버인 ‘Popular’는 특유의 리듬감과 팝 보컬의 장점을 살려, 카메라에 최적화된 작은 표정·몸짓과 함께 ‘관종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소셜 퀸’의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2부에서 인기와 명성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자각하면서, 'Good'이라는 화려한 치장 뒤에 숨겨진 글린다의 복잡한 야심과 인간적인 고뇌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장면은 기대를 뛰어넘는 호연이었습니다.
1부 [위키드]는 "오즈"의 세계를 추상적인 무대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숨 쉬는 도시와 풍경으로 확장해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던 고전영화 속의 에메랄드 시티는 현대적 CG와 세트로 화려하게 재구성했고, 쉬즈 대학 캠퍼스는 '마법 학교'라는 익숙한 클리셰를 오즈 세계관에 녹여냅니다.
무엇보다 1부는 이 비주얼의 향연 위에 탄탄한 서사를 올려놓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가 서로를 오해하고, 부딪히고, 결국 서로만의 이해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충분한 시간과 장면을 부여받으면서, 명확한 이야기의 흐름이 막힘없이 전개됩니다.
그래서 'Defying Gravity'가 뮤지컬 무대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장관을 선보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뮤지컬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정점에 도달했다는 만족감과 2부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문제는 2부 [위키드: 포 굿]에서 서사의 템포가 갑자기 꼬인다는 점입니다.
시간은 훌쩍 흘렀다고 선언되지만, 인물들의 감정은 거의 제자리에서 이어지기 때문에, 관객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사와 암시로 추론해야만 합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쉴 새 없이 발생하는데, 그 사건들이 인물에게 남긴 상처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은 부족해, 2부의 전개는 다소 급작스럽고 불친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갑작스레 흑화한 네사로즈가 가장 큰 희생양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하며 편애를 받던 소녀가 정치적 권력을 쥐고 '동쪽 마녀'로 변모하는 전개는 원래도 빠른 편인데, 2부에서는 이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기보다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감정과 동기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그녀의 결핍과 집착이 조금 더 촘촘하게 그려졌다면, '왜 이 아이가 여기까지 떠밀렸는지'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을텐데요.
엘파바를 도발하기 위한 미끼로 희생되는 갑작스런 마무리도 캐릭터의 비중에 비해 아쉽습니다.
피예로와 엘파바의 로맨스도 비슷한 문제를 겪습니다.
1부에서 유머러스한 삼각관계로 시작된 감정선이, 2부에서는 어느 순간 이미 깊어져 있는 관계로 도약해 버려, 관객이 함께 사랑에 빠질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키스와 희생, 재회 같은 클라이맥스 장면들 자체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감각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지만,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세밀한 감정선이 부족해 급물살을 타다 갑자기 타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역시, 1부에서 공들여 쌓아 올린 호흡에 비해 2부에서의 갈등과 화해가 상대적으로 도식적으로 보이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 차이와 도덕적 선택의 딜레마를 충분히 담았다면 두 사람의 결별과 마지막 선택이 훨씬 설득력 있었을텐데, 영화는 러닝타임과 넘버 배치를 의식하듯 빠르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엔딩의 ‘For Good’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 노래가 울리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더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오즈 마법사와 모리블 학장의 퇴장도 너무 급하게 처리된 느낌이 있습니다.
진실이 드러난 뒤에도 그들이 체현하던 ‘제도적 폭력’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논의하기보다 서둘러 이야기 밖으로 밀려납니다.
마법사는 원작동화를 따른다 쳐도, 모리블 학장이 마법으로도 권력으로도 한 수 아래인 글린다에게 그렇게 손쉽게 제압당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부족합니다.
음악적으로도 2부는 기억에 남을 만한 히트 넘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1부가 'Popular'와 ‘Defying Gravity’라는 확실한 쇼스톱퍼를 갖고 있다면, 2부는 새로운 곡과 기존 테마의 변주를 섞어 썼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네요.
'No Place Like Home'이나 'For Good'도 1부의 히트 넘버에 비하면 힘이 부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의 결말부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분명합니다.
특히 도로시의 등장과 구두의 비밀, 그리고 익숙한 캐릭터들의 탄생 비화가 '오즈의 마법사' 원작 스토리와 퍼즐처럼 맞춰지며 모든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오즈의 각종 모순과 거짓이 하나씩 밝혀지고, 엘파바의 ‘죽음’이 어떻게 ‘오즈의 마법사’ 속 전설로 굳어지는지 드러나는 과정에서, 관객은 자신이 알고 있던 동화가 사실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편집된 역사였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마지막 선택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과 자유의 무게를 남긴 채, 서로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반(反)동화식 해피엔딩으로 기능합니다.
2부 제목인 [Wicked for Good]처럼, '착한마녀' 글린다를 위해 '사악한마녀'의 오명을 감수한 엘파바의 우정은 오랫동안 관객들의 마음속에 'For Good(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위키드] 연작은 '대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지금의 기술과 배우들로 어떻게 스크린에 옮길 것인가'라는 질문에 꽤 설득력 있는 모범답안을 제시했습니다.
1부와 2부의 균형감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동시에 “이 정도면 사랑하던 무대의 기억을 망치지 않는 준수한 스크린 이식”이라는 안도감 또한 함께 느껴지는, 복합적인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