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네파

영화의 전당에서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 전작전을 하고 있어요. 총 45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6월까지 세 차례 나누어서 한답니다. 2월 4일까지 67년에서 86년까지 작품인 20편을 일단 상영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병원, 복지, 고등학교, 모델, 복합장애, 법과 질서, 기초 군사 훈련, 청소년 법원, 고기, 시각 장애인, 에세네파' 등등의 작품들이 상영되었어요. '에세네파'를 선택한 것은 시간이 맞아서였는데, 남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다음 시기엔 좀 더 볼 수 있기를. 


'에세네파'는 수도원 생활을 다루는 1972년 작, 87분 길이의 다큐입니다. 

본 영화 시작 전에 와이즈먼 감독님의 영상이 나옵니다. 1930년 생이니 새해 96세가 되시는데 최근에 많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분명한 전달력을 가진 인사말이었어요. 한국 관객에게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짧은 소개말을 하십니다. 자신이 만든 영화들은 인간이 만든 제도를 다루며 이 시도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작업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토요일에 봤는데 확실한 표현인지 자신이 없지만 아마 비슷할 겁니다)

'에세네파'는 기원 전후 300년 정도의 시기에 있었던 유대교의 한 종파라고 합니다. 구약성서가 기반이 되겠네요.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이 종파가 가톨릭 수도원의 기원이라 여겨져서 정해진 제목인가 짐작합니다. 


영화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일상 중에서 주로 운영에 대한 회의와 영성관련 모임, 미사가 중심이 되어 전개됩니다. 수도원의 중요한 일상인 노동 일과의 비중은 아주 적었네요. 표면적인 일상보다 구성원들 사이의 의견 차이와 조율 문제, 내적 고민이나 신앙 문제 등이 나타나는 장면을 주로 담았습니다. 수도자로 적응한 평화로운 신앙인의 일상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외부자가 궁금해 할 만한 수도원 일상을 시간 순으로 보여 주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사소한 문제부터 계속 논의합니다. 예를 들면 서로 이름만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수사에게 원장 신부가 찾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데 나이가 꽤 든 수사는 다른 이와의 사이에 있는 벽을 함부로 허무는 것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친밀감의 표현은 존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성을 빼놓고 이름만 부르는 것을 반대합니다. 원장 입장에서는 수도원 생활을 하는 자가 왜 그래? 자아가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식의 말을 할 법도 한데 권위로 몇 단계를 뛰어넘는 공격을 하지 않고 나이 든 수사의 생각 방향에서 대화를 거듭합니다. 

낯설게 보인 장면도 있었어요. 아마도 신앙 문제, 묵상 내용 등을 표현하는 회합인 것 같았는데, 격하게 속을 토로한 어떤 인물이 몸을 웅크리자 그를 중심으로 모두 둘러서서 머리와 몸에 손을 대며 기도하고 노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격렬한 표현과 눈물, 감동적인 호응...저는 성당 다닐 때 저런 표현 방식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개신교의 적극적인 표현 방식이 떠올랐어요. 저는 가톨릭 구성원들의 특징이 좀 수줍어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이브스 아웃'의 블랑 탐정이 말한 것처럼 가톨릭 의례나 장식은 개신교에 비해 과장되어 있고 압박감을 줍니다. 간소화했다고 해도 여전한 전통의 유산이 지금 시각으로 또 외부자 시각으로 보면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외양과 달리 가톨릭은 내면의 신앙 생활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수줍어 하는 특징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의례와 형식 속에 가두어 놓았다고나 할까요. 아니 그런 외양이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움츠리는 포즈를 하는 것일지도요. 오랜 시간 누린 것도 많고 저지른 잘못도 많아서 눈에 띄는 것을 삼가는 식으로 가진 유산을 유지하는 것인지도요. 그러면 수줍다라는 표현보다는 내숭스럽다가 더 맞을지도요. 또 저 혼자 머릿속 생각이 뻗어나가네요.

이 영화의 수도원 분위기 중에서 낯설게 느낀 부분은 예전에 유럽의 수도원 다큐를 보고 가진 선입견의 작용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 곳은 그냥 미국식 베네딕도 수도원이 가진 자연스런 모습일 수도 있겠죠. 이 영화에는 대화하고 내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많아서 권위와 수직적 위계 그리고 수도원 고유의 엄숙한(칙칙한) 분위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건물 자체나 공간이 전체적으로 비추어지는 장면은 적고 안에 사는 사람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감상이 듭니다. 그리고 70년대 초 바깥 세계의 영향도 어느 정도 느껴집니다..기도 내용에 들어가기도 하거든요. 수도원이 세계의 구석에 있긴 해도 일부이고 역시 제도 중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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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개봉한
      당스’(2009), ‘내셔날 갤러리’(2024), ‘뉴욕
      라이브러리에서’(2017)를 보면서 이분 작품 세계는 온갖 분야로 무한정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앞 세 영화는 각각
      파리, 런던, 뉴욕 문화기관 배경이라 유명 예술가나 작품도
      나오는데 문외한이 알아볼 수 만한 자막 하나도 없이 좀 불친절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기관이라도
      여러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회의와 논의를 하면서 차근차근 일이 진행되는 건 다 비슷했던 듯하고요. 무용, 미술, 서적도 흥미로운 주제지만 이분의 진가는 병원이나 복지 같은
      더 사람 중심 기관에서 돋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전을 못 보는 제 신세가 더 아쉽군요.


      • 극장에서는 예전에 '내셔널 갤러리' 하나 보았습니다. 미술관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건조하면서 꼼꼼하게 보여주는 것을 흥미롭게 볼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말씀대로 회의하는 장면, 사람들이 서로 조율하는 내용들이 감독님 영화에 많은가봐요. '뉴욕 라이브러리'가 왓챠에 있는데 세 시간이 넘어서 보다가 중단한 후로 미루었네요. 저도 이번 전작전으로 작품의 수와 다양함을 알게 되었고 그 오랜 시간의 꾸준한 작업을 생각하게도 되었어요. 

    • 아 이 감독님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요즘 상업화된 다큐 영화 장르들처럼 인터뷰나 자료화면 등을 활용하는 게 아닌 최대한 관찰한 그대로 보여주는 fly on the wall 스타일로 평생 만들어오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저도 넷플 실화 범죄 다큐나 많이 봤지 막상 이분의 작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70년대 수도원 생활을 다뤘다니 요즘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성향, 특징과 비교해서 봐도 재밌는 부분들이 있겠네요. 최근 교회들을 보면 전통을 지키면서도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두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 생각하곤 합니다. 저희 친가쪽이 기독교라 이번에 이런저런 얘기들 나누다가 종교쪽으로도 말이 나왔는데 조용히 듣고 있다가 귀를 막고 싶어지는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언급하신 늙은 수사는 연도까지 감안하면 괜찮은 분 같네요.

      • 네, 드라마적 요소가 전혀 없고 감독이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시작하지 않는 거 같아요. 시간을 들여 많이 찍은 다음 편집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습니다. 편집 과정에 감독의 생각이 정리된다는.


        제가 접한 감독님 최근 영화들이 긴데 반해 이 영화는 길이가 짧아서 다양한 부분들이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수도원을 포장하는 분위기 위주로 만들지 않았고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꽤나 많은 말을 나누는 영화였습니다. 나이든 그 수사는 약간 고집스럽게 느껴졌어요. 원장도 감당을 못하는? ㅎ 

    • 언제나 그렇듯 뻘플입니다만. 한국에서 보는 카톨릭과 서양에서 보는 카톨릭은 이미지 차이가 좀 큰 것 같다... 는 생각을 영화나 드라마들 보면서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선 말씀대로 폼이 나는 동시에 내향적이면서 심지어 정의로운 이미지까지 있잖아요. 근데 서양 쪽에선 역사가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기독교보다도 더 빌런 느낌이랄까요. ㅋㅋ 




      그리고 더더욱 죄송한 얘기지만 전 '베네딕도 수도원'이란 말을 들으면 소시지 생각부터 나서 말입니다. 배가 고파옵니다... 얼른 자야겠어요. ㅠㅜ




      https://www.bundofood.com/




      오랜만에 다시 주문해보고픈 충동이 밀려오지만 저번에 주문했을 때 저 혼자만 계속 먹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참겠습니다! ㅋㅋ

      • 유럽 경우에 구교와 신교는 나쁜 짓의 총합으로 보면 비교가 될 수 없으니까요..ㅎ


        한국은 미국식 개신교가(근본주의? 복음주의?) 들어오고 역사적 사건들 땜에 많이 꼬인 데다가 나날이 더 왜곡되는 느낌이.




        저 소시지 맛 궁금하네요. 저는 수녀원 된장, 딸기잼 등 먹어봤는데 다 괜찮았어요. 

        • 한국의 일반 소시지(?)와는 그냥 장르가 다른 맛이었습니다. ㅋㅋ 상대적으로 건전하게 괜찮은 맛이긴 했는데 맛들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독일에 가서 진짜 그 동네 소시지를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는 못하겠구요.




          그게 그렇죠. 대학 때 교양 필수로 강제 수강했던 기독교 수업 교수님이 정말 신랄하게 깠었는데 말씀대로 애초에 한국 기독교는 시작부터 본토에서도 마이너한, 독한 종파가 들어와서 무속 신앙이랑 결합하며 괴상해졌다는 얘기였습니다. 모 모 대형 교회랑 목사들을 그렇게 비판했는데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 교회랑 목사(및 그 자식)들은 전혀 변함이 없네요. 희망이 없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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