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똔 체홉 극장에서 [벚꽃동산] 보고 왔습니다

작년 25년도에 제가 [벚꽃동산]을 봤는지 안봤는지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합니다. 달력 어플을 보니 안봤던 것 같습니다. 이제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올해가 되니까 또 보고 싶더군요. 같은 영화를 두번 세번씩 보지는 않는데 왜 연극은 몇번씩 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매체로 기록된 것을 보는 것과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사람이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의 차이일려나요. 어쩌면 매해 봄에 체홉 극장에서 [벚꽃동산]을 보는 게 저에게 작은 의식으로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남명지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한 라네쁘스까야를 봤습니다. 아마 저희 세대에게는 [투캅스 3]로 유명할 것 같은 권민중 배우인데요. 이전에 고 이순재 배우가 리어왕으로 분했던 [리어왕]에서 첫째 딸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걸 봐서 걱정은 전혀 없었습니다.제가 익숙하게 여기는 남명지 배우의 연기와 어떻게 다른 연기를 보여줄까 궁금했습니다.
이건 꽤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주연배우가 달라지니까 극이 아예 다 바뀌어버리더군요. 제가 봤던 남명지 배우의 라네쁘스까야는 어리석고 현실감각이 없지만 그래도 연민이 있고 사랑스러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권민중 배우의 라네쁘스까야는 훨씬 더 예민하고 옛 기억에 바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여자더군요.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린 듯한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극이 더 처연하고 상처가 가득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호불호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냥 극의 성격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게 가장 두드러진다고 느낀 게 3막의 파티 장면입니다. 벚꽃동산이 경매에 팔리는 당일 라네쁘스까야는 파티를 열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흥에 겨워서 집안의 여기저기를 쏘다닙니다. 제 기억 속에서 남명지 배우의 라네쁘스까야는 억지로 미소를 띄워놓지만 중간중간 그의 얼굴에 이 동산이 팔려 없어진다는 그림자가 드리워지곤 했습니다. 현 권민중 배우의 라네쁘스까야는 이미 이 현실에 압도된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초조하고 울적한 채 파티에서 겉도는데 혼자 붕 떠있는 것 같달까요. 괜찮은 척을 하지만 중간중간 불안이 새어나오는가, 이미 불안에 잠식됐지만 애써 대외적인 괜찮음을 가면처럼 쓰고 있는가, 이 부분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권민중 배우의 연기는 굉장했습니다. 이런 게 연극 연기구나, 하고 바로 실감하게 될 정도였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다른 캐릭터의 액션에 리액션을 하는데 정말이지 온 얼굴을 다 써서 연기를 하더군요. 연기라는 건 이 세상에 찔리고 꿈틀거리는 촉감의 반응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권민중 배우가 눈쌀을 찌푸리거나 멈칫하기만 해도 그 제스처에 보고 있는 제가 훅 낚여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대)연기의 몰입감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권민중 배우의 연기가 굉장했던 것도 있지만 모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도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줬던 것도 있습니다. 정말 희한하게도, 그 배우가 대사를 막 내뱉고 있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만 들지 그 세계 안에 들어가있다는 느낌을 안주더군요. 연기의 성패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서 좀 신기했습니다. 그 배우분은 나중에 시간이 흐르니까 나아졌습니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역으로 제가 처음으로 이 작품을 봤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연극을 보고 행복해하는 이 경험의 근원에는 몇년 전 제가 처음으로 [벚꽃동산]을 보고 감동했던 그 때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불호를 떠나서 저는 아마 남명지 배우와 조환 배우가 연기한 [벚꽃동산]을 일종의 원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배우들의 열연을 제가 늘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원한 것은 없고 아름다웠던 시절도 쇠한다는 이 작품의 교훈을 떠올리며 새로운 것과 변해버린 것을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의 최초의 관람을 다시 떠올렸던 또다른 이유는... 제가 봤던 그 회차의 배우들이 정말 웃겼기 때문입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배우들이 뭘 못하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빵 터져야 할 부분에서 웃음기 없이 흘러가더군요. 특히나 김병춘 배우의 연기가 정말 그리웠습니다. 아마 가장 많이 알려진 배역은 [말죽거리 잔혹사]의 교련선생님일텐데, 이분이 [벚꽃동산]에서 연기하는 삐쉭이란 캐릭터가 얼마나 웃기던지요. 등장할 때마다 물을 몇컵씩 마시면서 돈 좀 꿔주라고 하는 그런 캐릭터인데, 다른 배우들이 연기는 뭔가 이런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역으로 우스꽝스러움이 지닌 페이소스의 힘을 더 곱ssib게 됩니다. 이른바 감초 캐릭터들은 그렇게 존중할만큼 위대하지도 않고, 초라하기만 하고, 주변상황을 잘 읽지도 못해서 어떤 소동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렇지만 관객은 그걸 보고 웃으면서 친근감을 느끼는데 이렇게 웃으면서 그 캐릭터를 보는 게 강력한 연민으로 작동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봤던 연극작품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실시간 연기를 앞에서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딱 한번의 감흥이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미루지 않고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봐두어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작년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좋은 배우진들로 공연했는데 그걸 못봐서 너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