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바낭] 흔치 않은 한국산 환타지 앤솔로지, 'Re-BORN(리-본)' 잡담입니다

 - 2022년에 나온 걸로 되어 있어요. 에피소드 네 개를 묶은 앤솔로지이고 총 런닝 타임은 1시간 52분. 스포일러는 맨 끝에 따로 적습니다.

(아마도 단편으로 이미 발표됐던 영화들을 모아서 다시 공개하는 경우라 제목이 이런 게 아닌가 싶구요)

 - 앤솔로지니까 또 결론부터.

 아마도 대략 서로 관계 없이 만들어진 단편 영화들 중 성향 상 묶을만 하다 싶은 걸로 모아서 한 편으로 만든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이 독립적인 단편들로도 검색이 되거든요. 암튼 그러니 일관성 같은 건 기대하기 힘들겠고.

 대체로 특별히 재미 없는 것 없이 무난하게 볼만하긴 한데 특출나다 싶은 것도 없다는 느낌. 특히 대부분 뒷심이 좀 약해서 엔딩에서 살짝 맥이 풀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만. 반대로 말해서 좀 아쉽지만 기대보다 괜찮았단 얘기도 되겠죠.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네 편 중 세 편이 코미디의 비중이 커요.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좀 수줍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뻘생각도 들었구요.

 암튼 좀 독특한. 한국 영화들에서 흔치 않은 아이디어의 단편들을 모아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사알짝 추천합니다. 강력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럴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ㅋㅋㅋ 그렇게 그럭저럭 잘 봤습니다.



 - 각각 이야기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를 해야겠죠.


 1. 오늘의 초능력

(인디 요정에서 메이저로 승격해 올라가신 이유미님! 수원 사람의 정으로 응원합니다!!! ㅋㅋㅋ)

 - 대략 20여년 전에 지구에 악당 외계인이 내려오고, 그를 쫓아 도착한 우주의 왕자(?)는 자길 도울 인재들이 필요해서 근방의 어린이 수련회에 참석해 놀고 있던 아이 셋에게 하나씩 초능력을 줍니다. 그 초능력들은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부여할 수 있다나 뭐라나... 암튼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지구를 구한 초딩들은 이후 왕자가 지구를 떠나면서 부여 받은 힘이 약해져 하루에 한 번씩만 쓸 수 있게 돼요. 그러다보니 활용도가 엄청 나빠져서 결국 가끔 좀도둑질(...)이나 하는 데 쓰고. 게다가 다들 생활고에 시달려서 걍 그 능력으로 조금씩 이득을 보며 피곤하게 사는 불행한 청춘들이 되어 있네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24시간 초능력 리필이 중단이 되고 이 힘으로 뻘짓을 하던 옛 용사들은 줄줄이 경범죄로 경찰서에 끌려와서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 구질구질한 현생을 사는 잉여들에게 슈퍼 파워가 주어진다! 라는 설정도 이제 흔해질 만큼 흔해져서 딱히 신선한 느낌은 없는데요.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런닝 타임의 거의 대부분을 경찰서에서 벌어지는 뻘한 상황의 연속으로 웃기는 데 투자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뻘한, 마가 뜨는 느낌의 개그가 상당히 먹혀요. 이유미를 비롯해서 '어디서 자주 뵙던 분들'의 능청스런 연기도 좋구요. 그래서 응당 마무리를 장식해야 할 그 슈퍼 파워! 를 활용해서 마왕(?)에 대적하는 장면은 대충 슥삭 치워 버린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냥 허허실실 즐겁게 잘 봤습니다. 아니 뭐 애초에 인디 단편 영화에 무슨 스펙터클을 기대한 것도 아니니까요.


 2. 원 플러스 원

(좀 모자란 남자애 하나 건사해 보자고 여러 여성이 고생하는 이야기... 는 아닙니다만, 비슷합니다. ㅋㅋ)

 - 한 방에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성질 더러운 누나를 두고 9급 공무원에 연속 낙방하는 잉여의 삶을 시전하고 있는 남동생이 주인공입니다. 엄마랑 이모가 살뜰히 챙겨주긴 하지만 그것도 오히려 부담이구요. 근데 어느 날 또 가족들과 한바탕 하고 방구석 침대에 몸을 던지고 보니 이게 뭡니까. 자신의 도플갱어가 멍하니 서 있지 않겠어요. 처음엔 공포에 사로 잡히지만 잠시 머리를 굴려 보니 이거슨 찬스. 그래서 상처 받고 좌절한 우울한 나... 의 역할을 그 녀석에게 맡기고 자긴 신이 나서 사귄지 얼마 안 된 예쁜 여자 친구와 여행을 떠납니다만. 여기에 뭔가 위험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합니다...


 - 이것도 뭔가 시대정신? 비슷한 거겠죠. 20대의 좌절! 다만 이 영화의 경우엔 그걸 희화화하고 살짝 놀리는 쪽입니다. 주인공 녀석이 아무리 봐도 인생을 그다지 열심히 사는 놈 같지가 않구요. 또 이야기의 성비 구성이 그래요. 주인공만 빼고 다 여자인데 주인공만 빼곤 다 인생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고... 허허. 수상한 사상(?)을 깔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영화의 재미는 반반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그런 찌질한 일상을 보여주고, 도플갱어 등장 후로 만들어가는 코미디까진 재밌었는데. 음모가 드러나고 이야기가 살짝 심각해지는 후반은 많이 심심하고 힘도 달리면서 결정적으로 전반부의 분위기와 잘 안 붙는 느낌이고 그랬어요. 추천은 못하겠네요.


 3. 장아치청

('다찌마와 리'류의 영화를 좋아하셨다면...)

 - 제목이 무슨 안 유명한 사자성어 같지만 그냥 주인공 둘의 이름입니다. 장아와 치청. 이들은 88올림픽 때 야심차게 생산했다가 멸망했던 88콜라를 마시면 한 시간 동안 각자에게 맞는 초능력이 생긴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되구요. 본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장아는 맷집과 파워 + 10초에 한 번 충전해서 쓰는 장풍 능력. 치청에겐 미친 듯이 손을 박박 비비면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니면 다 회복시켜 주는 회복 능력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러니 이 능력으로 뭐든 해서 돈을 벌고 싶은데 어렵게 구한 콜라는 이제 두 캔 뿐이고. 그래서 이 능력을 활용해서 일단 그 콜라의 제조법이 적힌 기밀 문서(?)를 탈취하자는 계획을 세우는데... 문제는 이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게 국제 범죄 조직의 심장부라는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장아는 싸우고 치청은 회복한다! 라는 계획으로 힘차게 쳐들어가는 2인조! 하지만 아무리 봐도 어설픈 이 둘의 미래는 과연!!!?


 - 길게 설명할 게 없어서 좋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능력이 없냐?'라는 열정으로 뽑아낸 격투 액션 영화에요. 배경과 캐릭터 설명을 위해 도입부에만 잠시 코믹 드라마로 가다가 둘의 임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엔딩까지 정말 액션과 액션과 액션으로만 이어집니다. 웃기기 위해 무슨 현대 무용수 같은 분들이 괴상한 킬러 팀으로 출동한다거나... 하는 식의 만화적 과장들을 넣지만 그 와중에도 롱테이크를 활용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겠다! 는 기조는 변함이 없구요. 그래서 이야기로서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즐겁게 봤습니다. 어지간한 액션들은 거의 cg와 편집빨로 슥삭 해치워 버리는 시대에 가끔 이렇게 우직한 액션을 보면 기분이 좋죠. 그랬습니다.


 4. Love Sick

(뜻밖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좀비물이었네요.)

 -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남자 좀비 한 마리가 결박 당한 채로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그 남자와 무슨 관계인지 모를 여자가 다가가 진정 시켜 보려 하는데 잘 되지가 않고. 그때 옆에서 덮쳐오는 할매 좀비, 침대 밑에서 튀어 나온 할배 좀비를 다 필사적으로 무찌른 여자는 남자에게 주사기를 들이밉니다.

 장면이 바뀌면 가상의 근미래. 한국엔 좀비 확산이 벌어졌는데... 극복했습니다! 치료제가 발명됐거든요. 문제는 그 이후의 사회입니다. 여전히 좀비 감염의 위험은 남아 있고, 신체 곳곳에 감염의 흔적이 눈에 띄게 남아 있는 회복자들은 비감염자들에게 거리낌의 대상이 되구요. 그렇게 회복자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이슈가 된 세상에서 자신도 회복자로서 다른 회복자들을 돕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는 우리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하는데요...


 - 네 편의 이야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스토리를 보고 오!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나름 참신하지 않습니까? 제가 좀비물을 안 좋아해서 많이 보지 않은 관계로 잘은 모르겠지만 좀비 아포칼립스 극복 후의 세계를 이런 관점에서 다룬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자기가 좀비일 때 여러 사람을 죽이고 감염 시켰는데 회복이 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그럼 법적인 책임은 모면할 수 있다 해도 그걸 지켜보는 피해자들의 유가족 입장은 어떨까요. 이런 애매한 부분을 상상해서 파고들며 끌고 가는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결말 역시 이런 테마에 걸맞게 잘 짜여져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잘 맺어 줍니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고, 또 이런 상상이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상상력과 그걸 구체화한 각본 자체가 좋아서 재밌게 봤네요.



 - 그럼 이제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 간단하게...


 1. 오늘의 초능력 : 뭔가 내용은 많은데 중요한 것만 남기고 요약하자면 한 없이 하찮고 그런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일단 편의점에서 투명 능력으로 도둑질 하려던 이유미가 경찰서에 끌려 오고. 거기에서 초밥집에서 비싼 초밥 양껏 먹고 순간 이동으로 튀려다가 끌려온 옛 동료를 만나고. 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그게 우리가 원래 초능력으로 튈 생각이었는데요' 라고 경찰에게 진술하는 바람에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죠. 이들이 하도 진지하게 얘길 하니 '우리 의경이 거짓말 하난 완벽하게 탐지하는데 말야' 라며 불러온 의경도 결국 초능력자였구요. 그 와중에 철창에 갖혀 있던 또래 남자 하나가 자기도 같은 경우라고 주장하고... 이렇게 아웅다웅하다가 우연히 각자의 출신 지역이 다 인천이라는 것.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 수련회를 갔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잊혔던 기억, 외계인에게 초능력을 전달 받고 뭐뭐... 를 기억해낸 이들 앞에 외계 왕자님이 나타납니다. 니들 한심한 꼬라지를 봐라. 내가 준 능력으로 그따위로 살래? 걍 나 혼자 마왕 상대할 테니 니들은 알아서 하렴. 하고 떠나 버리는 왕자님입니다만. 어린 시절 이 분과 힘을 합쳐 싸우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 주인공들은 결국 초능력을 다시, 하지만 당연히 한 번 씩만 발동해서 서로를 구해주고 경찰서를 탈출해서 왕자님을 재회하고. 흐뭇해하며 초능력 사용을 무제한으로 올려준 왕자님과 함께 성질 더러운 멍멍이의 형상을 한 마왕을 물리쳐요. 이때 당연히 이 모든 게 농담인 줄 알고 장난 삼아 맞장구 치고 있던 철창남에게도 덩달아 초능력이 부여돼서 결국 동료가 되는 전개가 있구요. 이후로 그들은 정의롭게,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 도우며 잘 살았답니다~ 로 요약되는 애니메이션이 한참 나오며 엔딩입니다. 시리즈로 나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죠. 솔직히 그 정도로 재밌진 않기도 했구요. ㅋㅋ


 2. 원 플러스 원 : 그러니까 이게 다 외계인의 음모였습니다. '신체 강탈자'랑 비슷한 거죠. 사람 하나를 복제해서 원본은 납치해서 없애고 복제만 남겨 두는 방식으로 지구를 침략하는. 주인공이 남겨두고 간 복제가 지나치게 유능하고 착실한 것에 의심을 하게 된 가족들이 결국 그 정체를 눈치 채고는 사라진 원본을 구하러 원본이 여자 친구랑 놀러간 펜션으로 쳐들어가는데, 거기에서 원본은 여자 친구로 위장한 외계인에게 약이 든 술을 먹고 뻗어서 죽기 직전이었죠. 하지만 공부도 잘 하고 싸움도 잘 하는 서울대 의대생 누나의 활약으로 어떻게 구출해서 탈출은 하는데, 이걸 도와주러 왔던 이모와 엄마가 모두 붙들리고. 결국 주인공과 누나도 붙들리는 걸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상하게 끝 장면은 다시 주인공의 집이고. 마치 주인공만 원래 그대로이고 나머지 식구들만 도플갱어로 대체 되어서 주인공이 숨 죽이고 사는 듯한 장면으로 끝이에요. 뭐가 뭔지...


 3. 장아치청 : 앞서 설명했듯이 뭐 얘기할 게 없습니다. 그냥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요.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에 전투 담당 장아의 초능력 제한 시간이 만료 되어 버리고 악당들에게 집단으로 두들겨 맞으며 죽기 직전이 되는데요. 방금 전에 혹시 이렇게 될 경우엔 치청이 걍 자동차로 다 함께 밀어 버린 후 잽싸게 장아를 회복시켜 주는 걸로 얘기가 됐었거든요. 그래서 단단히 마음 먹고 그대로 행동하는 치청! 일단 차로 다 깔아 뭉개 버렸고 장아를 살리기만 하면 되는데... 쓸 데 없는 대화로 시간을 끌다가 회복 능력을 시전하려는 순간 본인도 시간 제한이 끝나 버립니다. 으아악 어떡해!!! 하면서 엔딩... 이니까 영화 분위기와 안 어울리게 새드 엔딩인데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마치 속편 떡밥을 흘리듯 치청이 누굴 보고 화들짝 놀라고, 이때 죽은 줄 알았던 장아도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 보는 장면이 나와요. 그러니 코믹 액션 영화 주제에 찜찜하게 주인공을 죽이진 않은 걸로 알고 맘 편히 마무리를... ㅋㅋ


 4. Love Sick : 결말만 얘기해도 될 것 같네요. 마지막에 회복자들 전용 레스토랑에서 낭만적으로, 언제나 나를 믿고 도우며 힘이 되어 준 여자 친구에게 프로포즈를 시전하는 주인공. 그리고 아침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래서 자식에게 유전 여부를 걱정했던) 여자 친구는 뭔가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고백을 합니다. 오빠, 사실은 오빠 아버지랑 어머니 죽인 게 나야. 오빠를 회복시켜야 하는데 두 분이 갑자기 달려 들어서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오빠 사랑해!! 그러니까 도입부의 그 장면이 주인공과 여자 친구의 상황이었던 거죠. 그러자 불현듯 좀비 시절의 기억, 그 장면이 떠오르며 여자 친구가 유난히 꼼꼼하게도 두 사람의 머리통을 와작와작 밟아서 부숴 버리던 장면이 떠오르며 주인공은 지극히 난감해지구요. 남자가 말이 없으니 이해해 주는 걸로 생각한 여자 친구가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며 남자를 와락 끌어 안고. 이걸 구경하던 레스토랑 손님들이 와와~ 하고 환호하는 가운데 난감 떫떠름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엔딩입니다.



 + 제목이 진짜 구립니다. '리본'도 아니고 '리-본'도 아니고 'Re-born(리본)'이 제목이에요. 그리고 셋 중의 뭘로 검색해도 이 영환 안 나오고 동명의 일본 액션 영화만 나오구요. 제목 붙이기 전에 검색은 한 번씩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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