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소설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로렌스(로런스) 블록이 쓴 탐정 매튜(매슈) 스커더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장편입니다.
매튜 스커더는 1976년 『아버지들의 죄』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뉴욕의 헬스 키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탐정이죠. 원래 뉴욕시 경찰 소속이었는데 강도에게 쏜 총알이 벽을 맞고 튀어 무고한 아이가 사망하면서 경찰을 그만두었어요. 탐정이라고 하지만 정식 탐정은 아닙니다. 면허도 따야 하고 세금 신고도 해야 해서 귀찮나 봐요. 그래서 자신을 탐정이라고 소개하는 대신 남의 부탁을 들어주고 감사의 표시를 받는다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전처에게 아이 양육비도 보내고, 종파를 가리지 않고 교회가 보이면 들어가서 십일조도 내고, 호텔 방값도 내고... 무엇보다 술을 마십니다. 알코올 중독 수준으로요. 단, 사고와 행동에 딱히 문제는 없어요. 술 때문에 행패를 부리는 일도 없고. 고기능 알코올 중독자지요.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1982년에 나온 다섯 번째 장편 『800만 가지 죽는 방법』에서 전기를 맞이합니다. 결말에서 스커더가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찾아가거든요. 로렌스 블록은 원래 그것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대요. 하지만 편집자인 친구에게 약속한 바가 있었기에 1984년에 「새벽의 빛 속에」라는 단편을 추가로 발표합니다. 술 끊은 스커더가 알코올 중독자 시절을 회고하는 시점으로 쓴 작품이었죠. 이 단편이 1985년에 미국미스터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에드거상과 미국사립탐정협회에서 주는 셰이머스상 최우수단편상을 받았어요. 그러자 블록은 이를 확장해 여섯 번째 장편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를 내놓았고요. 이것이 또 성공을 거둔 데다 블록 자신에게도 유달리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어요. 2023년에도 스물한 번째 단행본 『매튜 스커더의 자서전』이 나왔더군요.
2.
여기서 잠깐 다른 이야기.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로 양조위가 미국인들에게 새삼스럽게 발견된(...) 2021년 여름, 잡지 《GQ》 미국판에 양조위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인터뷰의 세 번째 문단은 다음과 같이 시작해요.
"양조위는 늘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그는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 작업하거나 로렌스 블록의 범죄 소설 영화판에 출연하기를 꿈꿔 왔다."
당시 이 대목을 읽은 팬들이 부르짖었죠. '스콜세지, 뭐 합니까! 얼른 양조위한테 연락 안 하고!' 글쎄요. 양조위 본인의 바람과는 별개로, 마틴 스콜세지가 양조위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창작자 같진 않아요. 특히 그가 제작자로나 감독으로 관여한 여러 아시아계 프로젝트들을 보면요.
대신 저는 부르짖었죠. '할리우드, 뭐 합니까! 얼른 양조위 주연으로 『아버지들의 죄』를 영화화하지 않고!'
3.
『아버지들의 죄』는 매튜 스커더와 중년 남자 의뢰인의 대화로 시작됩니다. 의뢰인의 딸은 얼마 전 살해 당했습니다. 사건 직후 딸의 동거인이 피투성이로 현장 근처를 배회하다 체포됐고요. 그는 며칠 후 유치장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어요. 수사는 시작도 못하고 종결됐습니다. 의뢰인은 사건 삼 년 전부터 딸과 소식이 끊긴 채였어요. 그는 스커더에게 딸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변했으며 누가 왜 딸을 죽이고 싶어 했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버지들의 죄』의 멋진 점은 소설 전체가 마땅히 일어날 만한 대화의 연쇄로만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매튜 스커더는 전직 경찰답게 경찰이 해야 했을 일을 대신합니다. 경찰 보고서를 검토하고, 보고서 작성자를 면담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주지를 확인하고, 가족과 지인 등등을 만나고. 물론 무면허 탐정이므로 이따금 경찰과 다른 경로에 의존하기는 해요. 하지만 수사 방법과 순서에 의외성은 없습니다. 뜻밖의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해 상황이 미궁 속으로 빠지지도 않고, 긴장을 유발하는 폭력 사태도 없어요.(*) 정보 a가 부족해서 관련인 A를 만나고, A와 이야기하다 보니 b가 궁금해져서 B를 만나고. 그렇게 계속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다 더 만날 사람이 없어지면 수집한 정보를 취합해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걸로 끝이에요.
* 딱 한 번 노상강도를 상대로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긴 합니다. 다만 수사 중 잠시 격앙된 매튜 스커더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만 쓰여요. 플롯과는 무관합니다.
단, 매튜 스커더는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는 보고자는 아닙니다. 그가 받은 의뢰는 사망한 피해자의 초상을 그려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가 하는 일은 정신 분석가나 소설가의 업무에 가까워집니다─이런저런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따님은 이러저러하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삶을 살았던 데에는 아마도 이러저러한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따님이 살아 있었다면 장차 이러저러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죽은 사람의 삶을 재구성해서 들려준다. 그것만으로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이 성립한다. 그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왔지요. 미스터리의 한 원형에 접근한 기분이었달까.
그리고 이제 상상해 보세요. 양조위가 그런 역할에 얼마나 어울릴지. 숨결에 술 냄새가 묻어 나지만 지나치게 흐트러지는 법은 없이 아직 유능한 경찰 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몸가짐을 하고서 물기 어린 눈으로 죄책감에 젖어 호텔과 술집과 교회를 배회하며 살아가는 중년 남자 양조위. 그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의뢰를 받아 뉴욕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 끝에 아버지는 몰랐던 딸의 초상을 그려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대화 장면을 잘 연출할 줄 알고 중년 남자의 자기 연민에 도취하지 않는 창작자를 만난다면 양조위의 새로운 대표작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할리우드, 뭐 합니까!
4.
이후 한국에 출간된 매튜 스커더 시리즈를 전부 읽어 보았습니다... 라고 말할 자신은 없군요. 다 읽긴 했을 텐데 내용을 기억하는 작품이 없거든요. 『아버지들의 죄』만큼의 울림은 다시 느끼지 못했어요. 그럴 법도 해요. 『아버지들의 죄』 같은 '원형'을 반복하기는 쉽지 않겠죠. 후속권들은 새로운 양념이 더해졌을 거예요. 제가 처음 『아버지들의 죄』에 반했던 이유에서는 차츰 멀어졌을 테고요. 물론 필립 말로 시리즈처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심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그런 길을 가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한국어판이 나온 작품 중에서는 최신작인(1992년 발표) 『무덤으로 향하다』를 읽고 크게 실망했던 걸 기억해요. 『무덤으로 향하다』는 2014년에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툼스톤〉이라는 심란한 한국어 제목을 달고 개봉했죠. 당시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또 하나의 리암 니슨 액션 영화가 나왔다는 식으로 반응했어요. 예고편을 봐도 그런 티가 나고요. 하지만 원작을 읽은 독자로서 말하자면 영화사와 리암 니슨만 탓할 일은 아닙니다. 묘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총격 액션 장면을 읽노라니 투덜거림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매튜 스커더는 어디로 가고 이런 미제 기성품 액션 스릴러 같은 게 나왔담. 내가 이런 걸 원했으면 애초에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를 집어 들었겠지!'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애초에 더 출간된 작품도 없긴 했지만요.
그래서 한국에 십 년 만에 '새' 매튜 스커더 소설,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호기심 반 불안 반이었어요. 과연 이번 작품은 또 다른 『아버지들의 죄』가 될 수 있을까?
5.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의 초반부는 어딘가 굼뜹니다. 사건이 없어서는 아니에요. 1장에서는 술집에 무장 강도가 듭니다. 3장에서는 한 사람이 살해 당하고요. 4장에서는 절도 및 협박 사건도 일어나요. 매슈 스커더는 세 사건 모두에 관여하고요.(*)
*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이야기를 할 때는 새 번역판의 표기를 존중해 '매슈' 스커더와 '로런스' 블록으로 쓰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사건도 긴박감은 없습니다. 매슈 스커더의 눈앞에서 벌어진 무장 강도 사건은 큰 피해 없이 순식간에 끝나요. 술집 주인과 손님들 모두 금세 흥분을 가라앉힙니다. 살인 사건은 아예 작품에 등장한 적도 없는 캐릭터를 상대로 발생하고요. 절도 및 협박 사건도 마찬가지. 더욱이 물건을 돌려받고 싶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범인이 피해자를 협박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느긋하게 진행됩니다.
매슈 스커더의 태도도 나른함에 일조합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유독 사건에 열의가 없어 보입니다. 아예 의뢰에 응할 생각이 없거나, 마지못해 응했어도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다는 기대나 계획이 없지요. 수사도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이렇다 할 진전도 없고.
열의의 부재를 대신하는 것은 취기입니다.
2장은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의 태도를 집약합니다. 1장은 술집에 무장 강도가 들고 단골들이 가게를 나와 잡담을 나누다가 한 사람이 "올여름은 무슨 일이 날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끝납니다. 미스터리의 도입부로 손색이 없죠. 헌데 스커더는 바로 다음 쪽에서 "이 모든 게 오래전에 일어났다."는 말로 2장을 시작합니다. 독자가 '현재'로 인지했던 시간대는 단숨에 먼 과거로 밀려나요. 스커더는 앞서 일어난 강도 사건에는 무심합니다. 대신 1975년 여름에 일어났던 일들과, 자신이 즐겨 다녔던 동네 술집들과, 그 시절 술친구들에 관해 횡설수설하죠. 시간 감각은 자꾸만 흔들립니다. 80년대 중반에 75년 여름을 회고하다가 술친구의 어린 시절이 불려 나오는 식으로요. 바로 앞에서 '사건'이 터졌건만 느닷없이 한 장을 통째로 들여 두서없는 회고담을 늘어놓다니. 정말 취객의 말을 듣는 기분입니다. 뭐가 중요한 정보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 정보인지, 어떤 등장인물과 공간과 사건을 기억하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죠.
읽다 보면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전체가 그런 식입니다. 책의 절반이 지나도록 플롯은 도무지 작동하는 것 같지 않아요. 사건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알코올 중독자 주인공은 술집을 전전하며 술친구를 만나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는 데에 많은 지면을 소모합니다. 아무 수사도 하지 않고 술에 취해 자다가 깨서 숙취 속에 뭔가 먹고 TV를 보거나 또 술집에 가서 술친구들과 시간을 죽이다가 잠들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리만치 자세히 다루어져요.
처음에는 이 소설이 대체 뭘 하려고 이러나 싶습니다. 혹시 이렇게 플롯과 무관해 보이는 시간과 행동 속에 사건의 단서를 숨겨 놓은 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하고요. 그렇게 의문 속에 꾸역꾸역 책장을 넘기다 보면 뇌가 시나브로 그 몽롱한 리듬과 발을 맞춥니다.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저기 같던 술집들의 이름이 차츰 자리를 잡아요. 다짜고짜 몰려나와 헛소리를 늘어놓는 통에 누가 누군지 외우기 힘들던 술친구들의 얼굴도 하나씩 분간할 수 있게 되고요. 사건의 진상에 대한 궁금증은 점차 뒤로 밀려나고, 대신 취기 어린 농담 따먹기가 갈수록 재밌게 느껴집니다. 독자도 매슈 스커더와 더불어 멍하니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전전하며 시간을 죽이다가 가끔 정신을 차리고 사건을 따라가다가 다시 또 취하기를 반복하면서 술꾼으로 변해 간달까요. 이건 영화로 따지면 하드보일드 필름 누아르보다는 존 카사베티스의 〈남편들Husbands〉이나 일레인 메이의 〈마이키와 니키Mikey and Nicky〉에 훨씬 가까운 경험입니다.
저는 이렇게 플롯이 중단되거나 희박해지는 이야기에 매혹을 느낍니다. 아예 처음부터 플롯이 중요하지 않은 티를 팍팍 내면 흥미가 덜하고요. 그보다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는 가공의 완결된 이야기를 인과에 따라 전달해야 한다는 책무에 얽매인 작품이 그걸 잊은 것처럼 굴 때가 재밌어요.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플롯을 방기한 대신 뭘 하려는 걸까? 긴박한 사건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작품보다 한결 다층적인 긴장이 있습니다. 그걸 제대로 해내면 결국 플롯이 작동해 이야기가 말끔히 마무리되더라도 남는 것은 읽는 동안 뇌리를 잠식했던 어떤 순간들, 분위기, 심상인데,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런 것들이 훨씬 오래갈 뿐더러 이야기의 본질에 가깝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어디까지나 인기 소설가가 쓴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플롯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을 피할 수는 없어요. 정처 없이 배회하던 이야기는 일순 긴박한 사건에 이르러 급물살을 탑니다. 진실은 남김없이 밝혀지고 매듭지어지죠. 매듭이 다소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다며 불평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심지어 탐정이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사건을 풀이하는 고풍스러운 '해결편'마저 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인지라 해결이라고 해도 모든 갈등이 일소되고 질서가 완전히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해결은 아니지만요.
그러거나 말거나, 사건 종결 자체는 핵심이 아닙니다. 플롯을 이끄는 사건 각각은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리긴 했지만) 별반 대단치 않아요. 기발한 음모나 악랄한 악당도 없고, 개인이 감당 못 할 사회 부조리나 거대 부패 권력의 어둠도 없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에서 마주칠 법한 비교적 흔한 범죄들이죠.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진상이 밝혀지고 여파가 일기 시작하면 절로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크흡, 이걸 하려고 그렇게 꾸물거리면서 술집을 드나들고 수다를 떨었구나!' 이건 조그마한 이야기인 동시에 한 세계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책을 읽는 동안 익숙해졌던 세계는 사건 종결과 함께 삽시간에 붕괴합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매슈 스커더가 들려주는 이 회고담은 생존자가 뒤늦게 쓴 부고이자 추도문이에요. 옛날이 좋았고 그립다는 식의 낭만 가득한 넋두리는 아닙니다. 그러기에는 술에서 깬 지 한참 됐으니까. 하지만 스커더(와 독자)가 술기운 속에 살아냈던 세계는 어쨌든 한때 분명 존재했고, 그곳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위안이, 유대가, 우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빠져나왔다고 해서 아예 없었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들이죠.
하나의 세계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빈자리를 돌아보고 더듬으려는 마음이 이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다음으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인지도 몰라요. 딸이 죽은 뒤에라도 딸을 알아야만 했던 아버지가 그랬듯이요. 그렇네요.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에서 매슈 스커더가 한 일은 『아버지들의 죄』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죽은 여자를 대상으로 했던 일을 이번에는 자신이 겪어 낸 시대를 대상으로 한 거지요. 『무덤으로 향하다』의 실망을 기억하는 독자로서는 시리즈가 여기서 끝나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시리즈를 다시 이어가기로 한 로런스 블록의 결심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버지들의 죄』에서 스커더는 죽은 여자의 초상을 그린 뒤 결코 볼 수 없을 그녀의 미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스커더가 겪어 낸 시대의 초상을 그리고 나서는 아직 살아 있는 스커더의 다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이 시리즈가 한국에 계속 출간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저는 다시 호기심이 생겼고, 기대를 걸고 싶어졌어요.
6.
이 글을 쓰기 위해 『아버지들의 죄』를 다시 읽었습니다. 감상의 큰 줄기는 전과 같아요.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사건의 진상에 관한 매튜 스커더의 설명은 낡았더라고요. 프로이트 심리학을 단순하고 과격하게 반영했던 1950년대 할리우드 멜로드라마 같습니다.
『아버지들의 죄』 이후 꼭 필요한 대화의 연쇄로만 이루어졌다는 기분이 드는 미스터리 소설을 또 하나 만났죠. 로스 맥도널드의 『블랙 머니』요. 코엔 형제가 영화로 만든다고 해서 기대가 컸어요. 두 사람은 미국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전통에 충실하고 대화 장면도 잘 찍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어느덧 구 년 전 소식입니다.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의 뒷날개에는 등장인물 일람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책을 절반 넘게 읽고 나서야 발견했습니다만. 말했듯 초반부에 인물 이름과 관계를 숙지하는 데에 조금 애를 먹었는데, 일람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도움이 됐을 거예요. 물론 애를 먹다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과정 또한 감상의 일부였지만요. 흔히 등장인물이 많고 헷갈리기 쉬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 일람을 본문 앞쪽에 싣죠.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뒷날개에 싣는 편이 읽는 도중 참고하기에 훨씬 편하겠다는 걸 이 책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라는 제목은 작가 로런스 블록의 친구이기도 한 포크 가수 데이브 반 롱크(*)의 노래 〈라스트 콜〉 가사에서 왔습니다. 매슈 스커더가 술친구의 소개로 이 노래를 듣는 장면이 나와요. 감상 후 친구가 소감을 물으니 스커더는 다시 듣고 싶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친구는 대꾸합니다. "다시 연주해 줘요, 샘. 당신이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면 날 위해서도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버틸 수 있다면 나도 버틸수 있어요." 옮긴이 또는 엮은이는 여기에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에 나오는 대사"라는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주석을 반드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경 쓰여요. 물론 우디 앨런의 희곡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과 허버트 로스 감독의 영화 모두 〈카사블랑카〉를 적극 인용하는 작품입니다. 전 둘 다 못 봤지만 아마 같은 대사가 등장하겠죠. 또 희곡은 1969년, 영화는 1972년에 발표됐으니 197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연극이나 영화를 봤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고요. 그래도 여기선 굳이 우디 앨런을 경유하는 대신 그냥 영화 〈카사블랑카〉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전직 경찰인 무면허 탐정과 밤새 술을 마시다가 문득 한 포크 가수의 노래가 떠오른다면서 자기 집에서 음반을 들으며 한잔 더 하자고 제안하는 뉴요커 아저씨 술꾼이 저 대사를 인용했을 때는 우디 앨런보다는 험프리 보가트를 인용했으리라는 확신이 들거든요. 사실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더라도 저 대사를 인용하는 미국인 절대 다수는 〈카사블랑카〉를 인용하는 걸 테고요. 그리고 출처가 어느 쪽이든, 원본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연기한 술집 주인 릭과 그에게 고용된 피아니스트 샘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 대사는 반말로 옮기는 게 나아요.
* 앞서 코엔 형제 얘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데이브 반 롱크는 코엔 형제의 영화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Inside Llewyn Davis〉에 영감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기회가 되면 스커더 시리즈를 첫 권부터 읽으려고 결심했는데, 이 결심을 다시 새기게 하는 리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본이 다 나와 있어서 번역본으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카사블랑카 인용구 이야기를 들으니 원서에 도전할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양조위나 장만옥같은 영어도 되는 홍콩영화계 인재를 헐리우드가 활용하지 못한 건 엄청난 실수죠. 아직 실수를 만회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장만옥은 벌써 은퇴씩이나 했으니;;;;;
아이고, 오랜만에 출간된 한국어판의 판매에 누를 끼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데요. 제가 구제 불능의 영화 중독자라서 저런 대목을 그냥 넘기지 못할 뿐이지 번역이 나쁘단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제 취향에는 대사가 쪼끔 뻣뻣하긴 했지만요. 시리즈 첫 작품 『아버지들의 죄』는 출판사도 옮긴이도 다르고 분량도 짧으니 한국 출판사에 한 번 기회를 주어 보셔도?
〈샹치...〉도 어느덧 삼 년 전 영화인데 그간 양조위가 다른 할리우드 영화 출연을 타진 중이라는 소문조차 없었던 걸 보면 이번에도 할리우드는 기회를 날린 듯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들의 죄』가 양조위 주연으로 영화화 되면 좋겠다고 말은 했지만 애당초 할리우드에 아시아 국가의 대스타들을 제대로 활용할 역량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긴 해요. 냉정하게 말하면 철저한 자국 공산품 영화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이 역량을 발휘할 무대를 마련하는 것조차 아직 서툴지 않은지.
헉, 이 글을 이제 발견하고 읽었습니다. 제가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를 읽고 쓴 인상에 기반한 짧은 잡담에 비하면 참으로 조화롭고 체계가 있는 글이네요. 저도 [아버지들의 죄]를 비롯 이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좋았던 작품도 있었고 그저그런 작품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무척 읽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말씀대로 지난 그 시절에 대한 존중이 많이 느껴졌어요.
요즘 책을 읽다보면 주를 달아서 주변 지식을 보태서 이해를 도우려고 하는 부분이 오히려 살짝 이상한 것도 보이지만, 이 책의 경우 본문의 번역에 대해선 저는 크게 이상을 못 느꼈던 거 같습니다. 저는 한국어 문장이나 맥락에서 이해가 잘 되는지만 볼 따름이지만요.
네, 저는 『아버지들의 죄』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사실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를 읽고 나서도 관성적으로 '그래도 역시 『아버지들의 죄』가 최고지' 했는데, 본문에 쓴 대로 내친 김에 다시 읽었더니 기억과는 달리 조금 걸리는 부분도 있고 해서,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가 한층 더 좋아졌습니다.
저도 번역 결코 나쁘지 않았어요. 〈카사블랑카〉 관련 지적이야 워낙 익숙한 영화라서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자유게시판의 독서왕 thoma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예전에는 감상문 곧잘 썼는데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라서 문장마다 막히고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또 무언가 쓰도록 노력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