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람보(First Blood, 1982)

 

 

개인적으로 가장 어이없게 생각하는 시리즈 중 하나가 람보 시리즈입니다. 어느새 미국적 마초 영웅의 아이콘으로 각인된 람보지만, 그 1편은 미국적 가치를 옹호하기보단 오히려 비판하는 영화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_-;;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람보는 로키 산맥 근처의 친구를 찾아나서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입니다. 람보의 부랑자 행색이 맘에 들지 않은 보안관은 람보에게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하지만 람보는 이에 따르지 않고, 보안관은 억지죄목으로 그를 체포하죠. 구치소 안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던 람보는 베트남전 당시 고문당하던 악몽을 떠올리고, 급기야 난동을 부리며 탈주합니다. 이후 산으로 도망친 람보가 서바이벌 기술을 활용해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들을 격퇴하고, 그를 사살하기 위해 주방위군까지 투입된 상황에서 외로운 전쟁을 벌이는 것이 람보 1편의 줄거리입니다.

 

뭔가 기대와 많이 다르지 않나요? 람보가 맞서싸우는 것은 외부의 악당이 아니라 미국의 보수적인 백인(로키 산맥 근처라면 아마 콜로라도 주가 아닐까 싶은데 이곳은 전통적인 공화당 지역이며 스킨헤드들이 흑인을 살해하는 등 백인우월주의 색채가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있죠.)입니다. 싸우는 이유 또한 애국심이나 미국적 가치 수호 등 개풀 뜯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보완관과 경찰들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싸움이고요. 1편의 람보는 외부의 적에 맞서 미국적 가치를 드세우는 국가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 이후 갈곳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 얼떨결에 미국 정부와 싸우게 된 반영웅 캐릭터죠.

 

주방위군까지 투입되지만 번번히 람보에 농락당하고, 결국 그를 설득하기 위해 람보의 옛 상관이 찾아오는데 그들의 대화는 이 영화의 진정한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옛 전우들은 모두 고엽제로 죽었다", "전쟁 때는 수백만 달러 짜리 장비도 맘껏 사용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 나는 몇 달러조차 벌 수 없는 무능력자다"라고 절규에 가까운 불만을 쏟아내는 람보의 모습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지만, 돌아온 뒤 얻은 건 부상과 살인자라는 반전단체의 비난 뿐이었다"라고 외치던 7월 4일생의 톰 크루즈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람보 1은 액션에 기댄 B급영화임에 분명하지만, 그 성격에서는 전쟁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반전영화에 가깝습니다. 이런 그가 이후 어쩌다가 미국의 대표적 싸구려 마초영웅으로 전락한 건지...-_- 특히 3편의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 영화를 용감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바칩니다."라고 나옵니다. 영화 당시엔 미국이 소련에 침공당한 아프가니스탄을 응원하는 편이었다지만 부시 시절 미국을 떠올리면 정말 어이가 반쪽... -_-+

p.s. 람보의 엔딩 씬도 꽤 특이합니다. 여느 싸구려 액션영화였다면 람보가 "미국을 구원해줘서 고맙네"란 정부 고위인사의 입에 발린 소리를 듣고 승리의 환호를 지르며 옆에 있는 골빈 금발미녀와 키스하는 걸로 끝났겠지만(...써놓고보니 언더시즈 1편 엔딩... 언더시즈도 좋아하는 영화인데;;), 람보 1은 매우 현명하게도(그리고 현실적이게도) 주방위군을 따돌리며 경찰서까지 침입했지만 결국 상관의 설득에 보안관에 결국 복수하는 걸 포기한 람보가 수갑을 찬 채 순순히 연행되고, 그걸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상관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개인은 부당한 공권력을 이길 수 없는건지... 씁쓸하지만 매우 맘에 드는 엔딩입니다.

    • 원작에서 람보 존J는 마지막에 상관의 공격으로 사망하죠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 경찰서장인 티슬에 가까운거 같습니다
      • 원작이 있고 원래는 람보가 죽는다는 얘기는 예전에 얼핏 들었는데 소설 원작이었군요. 한번 읽어보고 싶긴 한데 번역 정발된 적이 있나요?
        • 네 영화를 보고 감동 받아서 당시 정발된 책을 샀는데 내용이 하드해서 멘붕 했었죠
          1983년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번역은 영화 평론가 정영일 씨가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람보를 (역시 전혀 안땡겨서..)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주제음악은 좋아서 영화음악 프로에서 나올 때마다 영화를 봐야할까 망설였었죠. 리뷰 보니 언제 기회되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머리를 비우고 액션만 감상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이로운 이후 작품들과 달리 1편은 꽤 묵직한 영화입니다. 의외로 액션보다 드라마의 비중이 높고요.(사실 저예산 영화라 액션 씬이 별로 볼 건 없음;; 그래도 투박하면서도 꽤 긴장된 느낌이 있습니다.)

        람보 1편과 록키 1편(무려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 감독상 수상작) 등 매우 좋은 영화들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던 스탤론이 이후 그의 근육 밖에 볼게 없는 싸구려 속편들로 커리어를 말아먹은 걸 보면 상당히 아쉽습니다. 익스펜더블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록키 1편 찍을 때의 스탤론이 쭉 이어졌다면 알 파치노나 숀 펜 옆에 앉아있어도 위화감이 없었을텐데 말이죠. ...뭐 이후 아카데미 대신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대활약을 보여줍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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