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E.R 8시즌



 

 

(자세한 내용 포함)

 

 

뭐라고 말을 할지.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이 가득하고 가슴은 먹먹합니다.

8시즌의 마지막 세 에피들; the letter, on the beach, lockdown은 제 평생 잊지 못할 부분이 될 것 같고 보고또보게 될 것 같습니다.

 

시카고 카운티 병원 ER의 대장이었던 마크 그린이 ER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캐리 위버의 말대로 저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린의 퇴장과 함께 드라마도 큰 매듭을 짓게 되고 ER의 Godfather 자리를 물려받게 된 ‘카터’가 거하게 즉위식을 치르며 시즌이 끝납니다.

이 떠남과 새로운 캡틴의 탄생을 너무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어준 제작진이 고맙습니다.

 

 

 

위 사진은 ‘the letter’ 에피의 한 장면입니다. (the letter : 마크 그린이 하와이에서 마지막으로 응급실 동료들 앞으로 보낸 편지)

심한 창상 환자를 보고 토할 것 같아서 밖에 나와 앉아있는 의대생 마이클 갈란드.

바닥에 고인 빗물에 EMERGENCY 간판이 비치고 뒤이어서 물에 비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다가오는데 그것은 닥터 카터.

카터가 갈란드에게 말합니다. 의사는 두 종류가 있다고. 감정(feelings)을 배제한채 일하는 의사가 있고 감정을 품고 일하는 의사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 가끔 토하게 된다고. 토가 나오면 토하면 되는 거고 그것이 의사 일의 일부라고.

본인도 지난 8년간 여러 번 토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라, 조금 더 앉아있다가 들어와라....

이 모든 말들과 이 장면은 정확하게 1시즌 pilot 에피 장면의 반복입니다.

 

8년전 같은 자리에서 구역질을 참으며 앉아있던 의대 실습생은 존 카터였고

빗물 웅덩이 EMERGENCY 글씨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나

"의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감정을 품고 가는 의사는 가끔 토하게 된다. 그래도 환자들이 우선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라 조금 더 쉬었다가 들어와라..."라고 말해주던 사람은 닥터 그린이었습니다.

 

8년 후에 그 때의 그린처럼 응급의학과 수석 레지던트가 된 카터가 실습 학생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며 떠난 그린을 추모하고

자신의 시대를 시작하는군요.

 

이 장면을 보며 생각이 나서 1시즌 pilot 에피를 꺼내서 다시 봤습니다.

정말 뽀송뽀송한 얼굴에 모든 것에 서툴고 어리버리한 카터도 재미있었지만

닥터 벤튼은 의외로 말이 많고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병맛캐릭이더군요. 지금의 로마노 역할을 벤튼이 맡고 있어.ㅎㅎ

 

8시즌 중반 벤튼이 카운티 병원을 떠날 때, 카터가 공원에 찾아가서 나누는 대화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카터가 건넨 이별 선물은 롤렉스 시계가 담겼을 것 같은 작은 상자에 넣어진 기차 토큰 하나.

카터가 외과 인턴으로 힘들어하자 집에 돌아갈 때 쓰거나 내일 아침 병원에 올 때 쓰라며 벤튼이 주었다는 토큰.

카터가 다시 벤튼에게 건네주며 ‘옮긴 병원이 지겨우면 이걸로 기차를 타고 카운티로 돌아오시라’고 말합니다.

억지로 껴안는 카터와 멋적어하는 벤튼.

카터가 뒤에서 “당신 덕분에 제가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외치자 돌아온 대답은 “아니. 아직 멀었어.”  :)

 

선택의 문제.

벤튼이 아들 리스 양육 때문에 결국 카운티를 포기하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런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임종을 앞둔 그린도 하더군요.

ex 와이프인 젠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젠이 “우리가 그 때 좀 참았더라면..” 이라고 말하자 그린이

“우리는 선택을 했던 거고 그래서 다른 삶을 살았다. 후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레이첼이 어릴 때 가족을 위한 시간을 너무 내지 못하는 그린에게 젠의 불평이 컸고

그래서 그린은 연봉이 다섯배나 많고 시간도 널럴하고 병원도 호텔같이 생긴 상류층을 위한 우아한 고급 클리닉에 가서

면접도 봤지만(pilot 에피에 나옴) 결국 ER을 선택했죠.

결과적으로 그것이 젠과의 결혼생활을 포기한 셈이 되었고 후에 ER에서 엘리자베스를 만났고 엘라를 얻었지요.

어떤 선택이 맞고 어떤 선택이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을 떠나기 전에 ER로 보낸 편지에서 그린은 ER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같은 의사라 해도 그린을 수술해준 뉴욕의 신경외과 닥터는 정말 후덜덜한 수입과 고단한 2교대 응급실 의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럭셔리한 일상생활,

무엇보다 카운티 병원 의사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수술을 “나는 할 수 있다”는 한마디와 함께 깨끗하게 해내는 세계 최고의 실력.

사람마다 다 자기 자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재벌가 아들이지만 ER을 선택한 카터도 있고요.

의대 3학년, 1년 남짓 지나면 의사 면허를 가질 수 있을텐데 간호사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애비도 있지요.

의사보다 간호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애비의 이 대사 부분이 조금 이해는 안 됐지만

눈오는 날 성희롱 교육을 위해 의대 강의실에 갇힌 다섯 사람(애비, 카터, 수잔, 루카, 갈란드) 에피소드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얽히고설킨 감정들 속에서 나누는 대화. 각자의 아버지 이야기에, 첫경험 나이 맞추기, 그러다 펜싱 대결과 몸싸움, 연극 햄릿 이야기,

지난밤 각각 외박한 애비와 수잔에 대한 이야기.(결국 카터와 애비를 위한 해프닝이 됐지만)

마지막에 수잔이 카터를 보내주는 장면까지. 정말 완소 에피입니다. 다시 보고싶네요.

 

 

 

 

다시 그린과 카터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린의 사물함을 정리하다가 청진기를 발견한 카터는 자신의 청진기를 내려놓고 그린의 청진기를 목에 겁니다.

이 때의 청진기는 대부에서 막내 마이클(알 파치노)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처음으로 형에게서 권총을 받아서 쥐어보는

그 장면과 오버랩 되더군요. :) 본격적으로 패밀리 비즈니스에 가담하게 되는 거죠.

권총, 아니 청진기를 이어받은 카터는 드디어 마지막 에피 ‘lockdown'에서 수십년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smallpox(로 의심되는 것)와 맞서서 카운티 응급실 안에서 알파치노만큼이나 멋지게 싸웁니다.

이때 카터와 환상의 짝이 되어 일하는 유능한 너스 애비를 보며 전에 애비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간호사를 선택했다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그 와중에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애비와의 첫키스.

고백하자면 이 두 사람이 궁금하고 시즌 끝이 궁금해서 21에피를 건너뛰고 22 에피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린의 하와이 생활과 마지막 모습이 담긴 21 에피를 제일 마지막에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고 감동적이었습니다. :-P

그린을 그냥 보내나 싶었는데 한 에피를 할애하여 가는 모습 보여준 제작진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정말 가슴아프면서 또 아름다웠습니다.

 

 

 

경쾌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마지막으로 텅빈 ER을 둘러보는 닥터 그린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얼마나 저 곳을 수없이 오가며 환자들과 동료들과 인생을 보냈던 정든 곳인지요... 안녕 마크.

 

애비도 그렇고 카터에게도 작가진이 정말 신경을 많이 써줘서 초기 시즌들에서 뺀질거리고 이기적이고 어린 모습도 보였던 카터가

8시즌 후반부에는 거의 남자로서,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졌고 너무 멋지고 매력 완전 폭발입니다. 

가끔 진짜 어른스러운 코바치 앞에서 략간 기가 죽을 때도 있지만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햄릿 연극에서 ‘호레이쇼’역을 맡았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연적인)루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난 햄릿.”이라고 말하자 깨갱.ㅎㅎㅎ

카터가 어릴 때는 깨갱하는 표정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는 흔하게 볼 수 없어졌지요.

 

1시즌 다시 보니 첫 suture 한 후에 실밥  제거하러 10일 ~ 3주 사이에(?) 오라며 얼버무리는 모습,

생애 1번째로 IV 잡느라고 개심술이라도 하는 것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의 비명소리가 밖으로 새나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등등

너무 귀엽습니다. 근데 카터의 첫 IV 희생양이 된 환자는 8시즌 현재 ER 접수 담당이 프랭크 아저씨더라고요?ㅎㅎ

그린이 떠난 후 그린이 도맡아 치료를 해왔던 흑인 부랑자가 카터를 그린으로 착각하며 카터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데

이 환자도 pilot 에피부터 그린이 치료하고 있더군요. 세심함 돋는 제작진.

암튼 배우 노아 와일은 아무리 봐도 존 카터가 되기위해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본인도 그 사실에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코바치가 애비와 다투다가 이별임을 선언하는 뜬금없는 한 마디 : “Carter can have you!” 

보다가 엄청 웃었네요.

 

벤튼이 카운티에서의 마지막 수술을 마치고 OR을 떠나며 섭섭해하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윙크하며 던진 한 마디

: “We had our moments.”  

전 정말 이 커플 찬성이었는데 말이죠.

 

아빠 마크 그린이 딸 레이첼에게 남긴 마지막 말 :  “Be generous...”

이 말은 닥터 그린과 이별을 하는 나에게도 들려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들었습니다.

 

“Be generous with your time, with your love, with your life."

 

 

 

 

 

 

 

 

    • 강의실에 갇힌 에피소드는 코바치가 햄릿 대사를 읊는 거죠? 하여간 그 에피소드는 조찬클럽의 패러디였죠. 미국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더라는.
    • 아 네. 한 40분 정도의 분량이나 되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코바치가 보스니아어로 햄릿 대사를 읊어서 다들 숙연.
    • 조금 재미있는 게 고렌 비쉬닉은 실제로 햄릿을 연기한 적이 있었거든요. 크로아티아 시절에. 물론 햄릿은 많이 올리는 연극이기는 합니다만. 지금도 유투브 어딘가에서 동영상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거에요. 마지막 에피 두개를 앞두고 직전 에피를 본 듀나님이 '이게 끝이에요?' 라고 하셨던게 생각나요. 물론 그 뒤로 제작진은 닥터 그린 송별회를 성대하게 치뤘었죠. 그때가 아련하네요.
    • 고렌 비쉬닉(표기가 여러가지더군요;)이 드라마 안에서도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나오는 거죠? 저의 보스니아란 말은 왜 튀어나온 건지..;; 저는 이 사람을 E.R에서 볼때 언제나 '프랙티컬 매직'의 그 (무서운)캐릭터가 같이 떠올라서 자주 곤혹스럽곤 합니다.; 그런데 햄릿 대사 읊을 때는 꽤 분위기가 그럴듯했어요. 잘 어울리더군요. 얼굴 자체로 이미 분장한 느낌이고요.ㅎ 그때 교실에서 펜싱도 잘하던데. 루카 코바치 역할은 캐롤-로스 커플이나 애비-카터 커플을 위해 희생 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쪽으로 자유로웠으면 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이게 끝이에요?"라고 저도 20에피(the letter) 끝나고서 중얼거렸지요.:) 선물처럼 다음 에피(on the beach)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잠시 후에 알았고요. 그걸 실시간으로 같이들 보신 거예요?!
    • 나도 생애 1번째 동영상 올리기에 성공.^^
    • 그렇게 기억하셔도 아주 틀리진 않은 게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나 예전 유고 연방에 속해 있었으니까요. 고렌 비쉬닉은 실제로 보스니아 내전에도 참전 했었습니다. + 저는 훨씬 후에 케이블에서 방영 해 줄때 봤었어요. 몸이 좀 안좋은 상태였었는데 누워서 줄줄 울던게 생각나네요.
    • 마크그린이 죽고난뒤 이알을 그만 본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고렌비쉬닉 참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애정이 좀 덜갔죠.
      마크그린 후 들어온 캐릭터들에게는 묘한 반감같은게 들었어요. 묘한 의리감이였을라나.
    • 마크 그린의 퇴장과 함께 사실 이알 자체가 큰 막을 내린 셈이지요. 어쩌면 제작진 내에서도 8시즌으로 종영하자는 의견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9시즌부터는 거의 새로운 이알이 시작되었다고 봐야지요. 그린 없는 ER은 정말 예전 ER이 아니더군요.ㅜ
      새로운 캐릭들에 대해서, 9,10시즌 리뷰에도 썼지만 '텃세'로 여겨지는 심리적인 거부반응 같은 것이 저한테도 꽤 강하게 들더라고요.
    • 아침에 세수하다가 생각이났는데... 마크 장례식에 어떻게 베프 더그가 안 올 수 있죠?? 캐롤도 마찬가지.; ER의 공공연한 절친이었으면서. 마크가 죽었는데... :-/
    • 브랫/되려 캐롤 마지막에 더그가 나온게 신기했어요. 그냥 떠나는 걸로 처리할줄 알았는데.
    • 마크 떠날 때 나온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나중에 찾아보니 1997년 30대의 나이로 요절한 하와이안 뮤지션 Israel Kamakawiwo'ole(IZ)의 연주더군요. 악기는 Ukulele(우쿨렐레). You Tube에서 찾아본 영상에서의 모습이 정말 의외였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1bFr2SWP1I )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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