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F1 더 무비 - 이빨 빠지고 발톱 빠진 늙은 사자의 공허한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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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세상은 왜 이리 빨리 변하는 것일까요.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에 습득했던 지식,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우리는 또다시 부상하는 새로운 기술, 환경, 문화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늙은 세대는 치고 올라오는 젊은 세대들한테 자리를 비켜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는 것이 보통이고요.

한데 꼭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도 옛날에는 한 때 세상을 호령하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F1]은 그런 늙은 세대들을 위한 예찬입니다.

으랏차차! 나 아직 죽지 않았다구!

네, 뭐 좋습니다.
돈 들여서 나이든 세대 위로하고 기 살려주는 영화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죠.

하지만 하려면 ‘잘’ 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대책없이 촌스러워지고 꼰대소리로 보일 수 있거든요.

코신스키 감독의 전작인 [탑건: 매버릭]과 다르게, [F1]은 시작부터 약간의 핸디캡을 안고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진짜로 잘나갔던 시절을 보여주는 기반이 없다는 거요.

사람들이 [록키 발보아]하고 [탑건: 매버릭]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시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 두 영화에 무리수가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줄 수 있습니다. 추억팔이이긴 하지만, 기분 좋은 추억팔이죠.

한데 [F1]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초반에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주인공 소니 헤이스를 바라보게 됩니다. 연기하는 배우가 환갑이 다 되었는데 F1 레이싱카 운전대를 잡겠다고 하고 있으니 납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물론 그 배우가 브래드 피트이긴 하니까 웬만하면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한데 [F1]은 소니 헤이스의 잘난 모습을 괴상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수석 엔지니어의 견해는 대놓고 무시하고, 팀 치프가 같은 팀 드라이버 조슈아에게 길을 터주라고 지시해도 듣지도 않고, 경쟁선수 차량에 고의로 충돌해서 세이프티 카가 돌게 만드는 거친 방식으로요.

그러니까 이런 거죠.

“나 아직 안 죽었다고! 그리고 나 위험한 놈이야! 크아아아앙!”

위와 같은 방법 말고도 캐릭터의 전문가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주인공의 팀 에이펙스GP는 이전까지 분명 차에 문제가 있긴 한데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거든요. 
그걸 소니가 와서 몇번 타보더니 의견을 제시하고 서로 조율하고 테스트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식으로 그릴 수 있죠.

한데 아무리 왕년에 날렸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고로 떠났다가 30년만에 현장에 복귀했으면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거고 본인도 적응하려면 좀 숙이고 들어가야 할텐데, 이 양반은 현 팀에 대한 존중이 별로 없습니다.

여성이 수석 엔지니어로 들어와있고, 젊은 흑인 드라이버가 자기 잘났다면서 SNS와 미디어에 천착 해대는 것이 꼴같잖아 보일 뿐이죠. 딱 요즘 세대의 변화를 싫어하는 늙은 백인 남성의 시선을 대변합니다.

결국 영화의 스토리는 에이팩스GP가 소니의 방식에 길들여지고 그에게 맞추면서 비로소 제 갈 길을 찾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젊은 동료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까지도요.

그 와중에 많은 장면들이 노년 백인 남성 비위맞춰주는 목적을 위해 봉사됩니다.
조슈아에게 SNS와 미디어는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충고하는 장면이라던가,
트레드밀과 반사신경 훈련 장치로 훈련하는 조슈아와 대비되게 바깥에서 달리기하고 테니스공 2개 던지는 장면으로 훈련하는 장면이라던가,
팀 크루들과 다같이 달리기 하면서 결속을 다지는 장면이라던가,
급기야는 주인공 소니 헤이스! 나이 먹었지만 성적 매력 아직 안 죽었다! 라고 선언하는 장면까지 나와요.

위와같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전 기분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었을 겁니다.
결말만 좋았다면요.

네, 이 영화의 화룡점정은 결말입니다.

소니는 결국 1등으로 들어와서 우승을 차지해버리거든요.
그 와중에 1등을 할 수 있었던 조슈아는 경쟁 선수 차와 부딪혀 리타이어를 해버려서 포디움에 설 기회도 박탈당하고요.

주인공이 다음 세대 선수를 위해 길을 터주고 1위와 3위로 들어와 같이 포디움에 서는 식으로 그릴 수는 없었던 걸까요. 
끝내 주인공에게 트로피를 쥐어주는 감독의 ‘선언’ 앞에서 저는 그동안의 감흥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드비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존중, 다 좋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하고, 그냥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우기는 것은 그냥 꼰대소리죠.

지금으로서도 적당히 볼만한 오락물은 되었습니다만, 거대 자본 블록버스터가 결국은 늙은 백인 남성 에고를 채워주는 쪽으로 수렴하는 것은 앞으로 그만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좀 세련되게 표현하던지요.


ps.
맷 데이먼은 [마션]으로 과학과 엔지니어링에 대한 찬양 영화를 찍고 나서 [포드 v 페라리]로 엔지니어링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제일 중요한 것은 드라이버라는 내용의 영화를 찍었죠.
브래드 피트도 똑같이 [머니볼]로 스포츠에 대한 수학, 과학적 접근을 다루는 영화를 찍고 나서 [F1]으로 과학적 접근 다 소용없고 베테랑 드라이버의 동물적 감각이 최고다라는 영화를 찍은 것도 대비가 되어 재미있습니다.
레이싱 영화라는 게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분명 기계가 강하게 연관되어 있는 스포츠인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 역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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