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첩보국 The Ipcress File (1965)

The Ipcress File  국제첩보국

 


영국,1965. 


A Lowndes/Steven S. A. Productions. Distributed by Rank Film Distributors. 화면비 2.35:1, 35mm. 1시간 49분.


Director: Sidney J. Furie Screenplay: Bill Canaway, James Doran Based on the novel “The Ipcress File” by Len Deighton Cinematography: Otto Heller Production Design: Ken Adam Editor: Peter Hunt Producer: Harry Saltzman, Charles D. Kasher, Ronald Kinnoch Music: John Barry 


CAST: Michael Caine (해리 파머), Nigel Green (돌비 소령), Guy Doleman (로스 대령), Harry Andrews (카스웰), Sue Lloyd (진), Frank Gatliff (그랜트비), Aubrey Richards (라드클리프 박사), Thomas Baptiste (바니, CIA 요원), Oliver McGreevy (하우스마틴), Freda Bamford (앨리스), David Glover (칠코트-오크스), Stanley Meadows (케이틀리 경사), Barry Raymond (그레이). 


IPCRESS FILE- ONE OF YOU IS A TRAITOR


[국제첩보국] (원래 일본에서 붙인 제목. “입크레스 파일” 이라는 원제를 고대로 가져오기에는 문제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은 현존하는 에스피오나지 (“스파이 영화”) 장르의 역사상 최고작을 선고할 때 반드시 언급이 되어야만 하는 걸작이다. “리얼리즘 에스피오나지”— 존 르 카레 소설들의 영화화로 대표되는— 서브장르의 여러 작품들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1965) 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임스 본드 영화의 반작용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고, 애초에 “스파이 붐” 이 범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다. 


< 이 한편은 잘 알려진것처럼 [줄루], [알피] 와 더불어 마이클 케인을 국제적인 대 스타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편이지만, 지난 3월에 97세로 영면한 렌 데이튼 작가의 출세작 소설의 영화화이기도 하다. 데이튼 작가는 아버지가 일종의 화이트 크리미널 겸 사업가였던 르 카레나, 정치인 아버지와 사회명사 어머니의 아들이고 자마이카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던 금수저 이언 플레밍과 달리 노동-서비스 계급의 가정에 태어났다. 데이튼의 부모는 부유한 집안의 요리사와 식모로 일했었다. 그의 어머니가 출산이 박두해서 근처의 병원에 실려갔는데 “자리가 없다” 라는 이유로 되돌려 보내져서 노동계급이 임시 요양원으로 쓰는 곳에서 겨우 태어났다는 일화가 있다. 2차대전중에 공군에 복무하면서 전쟁직후에 요리사 (페이스트리 셰프) 로 일했었던 시기에 레시피 설명을 만화로 그려서 붙여두곤 했는데, [더 옵서버] 에서 그가 그린 요리 만화 칼럼을 고정 연재하게 된 것이 그의 창작 커리어의 시작이었다. 데이튼은 그의 스파이 소설들이 대박 친후에 “나는 문맹인 글쓰기” 라고 거침없이 말할 정도로, “문학적” 인 배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광고 대행사의 임원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역들이 전부 이튼 칼리지 출신이더라는 경험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입크레스 파일] 의 주인공은 그런 면에서도 자전적인 요소를 반영하는 캐릭터이다. 

2 차대전 당시에 상사들한테 “고분고분하지 못한 놈” 으로 찍힌 바 있고, 첩보국으로 이송된 다음에도 항상 “충성심” 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지만,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자기 상사와 가시돋힌 대화를 나누고, 집에서는 프렌치 프레스를 써서 커피를 맛있게 끓이고 계란을 한손으로 하나씩 능숙하게 깨어서 오믈렛을 근사하게 만든다 (케선생이 계란을 두 손을 써야지만 깨는 걸 보고 영화 자문하러 온 데이튼이답답해서 자기 손이 파머의 손 대역을 하도록 찍었다는 일화가 있다). 제임스 본드처럼 우아하게 서비스를 받으면서 유명 와인 브랜드를 줄줄히 꿰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자기가 나서서 먹을 것을 구매하고 요리까지 하는, 그리고 그런 중산층-노동계급식 생활 습관을 헛똑똑이 꼰대 상사들에게 태연자약하게 쭈빗거림이 없이 들이대는 것이 마이클 케인이 연기한 해리 파머이다 (물론 데이튼 자신은 나중에 와인에 관한 책도 썼다). 그런 반면에 정착 스파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라고 보통 생각할 권총은 베개밑인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게 놔둔다. 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데이튼의 원작은 1인칭 소설이고 결말까지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해리 파머” 라는 이름은 백퍼센트 영화화를 위해 가져다 붙인 명칭이다. 


< [국제 첩보국] 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초기에 알버트 브로콜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본드를 범지구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킨 (이 표현에는 단 1옹스트롬도 과장이 섞여있지 않다. 요즘 마블 영화 이런걸 보고 자란 젊은 분들은 60년대의 제임스 본드 같은 극단적으로 “서구 중심적” 인 캐릭터가 얼마나 막대한 글로벌한 영향력을— 대한민국, 일본 심지어는 북조선이나 중국도 결코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행사했었는지 오히려 감이 잘 안올 수도 있을 지 모른다) 해리 살츠먼이 주도한 기획이다. 이 얘기는 내가 지금까지 집필한 제임스 본드 영화 리뷰에서도 쓴 것이지만,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는 영화로부터 얻기 쉬운 “국제 플레이보이” 적인 이미지와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육감적이고 즉물적이며 (섹스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기는 한다. 누가 뭐래나? 무슨 수도승 탐정이 주인공인 이야기도 아니고) 자신의 직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워킹 프로페셔널” 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이 한편의 파머는 본드와 그렇게 심대한 격차가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없다. 


젊은 시절의 케선생님에게 아마도 연기력의 과시라는 측면에서는 [알피] 나 심지어는 [카터를 죽여라] 가 더 유효한 한편이었을 지 몰라도, 굵은 뿔테안경을 끼고 두터운 트위드 자켓이나 바바리 코트를 걸친 파머가 케선생님의 스타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데에 더없이 좋은 역할이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60년대 영국영화에서 믿을 수 있는 조역 중의 하나인 나이젤 그린 ([줄루] 에서도 케인과 공연한 바 있다) 이 연기하는 돌비 소령과 가이 돌맨이 맡은 로스 대령은 둘 다 보울러 해트를 쓰고 우산을 지참하고 휘적거리며 걸어다니는 스테레오티피컬한 영국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부하들을 포함한 다른 인간들을 전혀 신용하지도 않고 도구 취급하는 위선적인 꼰대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 결과 파머가 이들의 주절거리는 변명에 대해 “입 닥쳐” 라고 일도양단의 언사로 대응하는 클라이맥스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통쾌함을 가져다 준다. 케선생님의 카리스마에는 쿨하고 냉혹하기까지 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에도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는 “팔푼이” 적인 요소가 항존하는 데, [국제첩보국] 에서도 어김없이 최상포식자적인 숀 코네리나 칼처럼 예리한 테런스 스탬프 등에는 없는 그런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IPCRESS FILE- THE TAPE


[국제첩보국] 은 시드니 J. 퓨리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퓨리 감독은 뛰어난 영상감각의 소유자였지만, 거장으로 발돋움하기에는 스스로에게 합당한 소재를 파악하고 또 그것을 자신 나름의 사상적 기반위에 놓고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해내는 능력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던 듯 하다. 이 한편은 30년대 독일에서 나치를 피해서 망명온 오토 헬러 촬영감독이 바이마르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뿌리를 둔 음영의 차이를 구사한 영상미를 보여주는데, 거기에 퓨리 감독의 과격한 프레이밍과 구도의 배치가 맞물려 들어가면서 독특하고도 긴장감 넘치는 화면들을 보여준다. 전화 박스의 빨간색 격자, 문의 쇠창살 사이 등 좁은 간격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카메라의 시점, 램프셰이드, 다른 인물들의 등 등에 가리워 2.35 대 1 와이드스크린 화면의 4분의 1 을 겨우 채우는 등장인물들, 극단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카메라, 환하게 켜져 있는 전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점 등 여러 각도와 접근법에서 통상적—50년대 헐리웃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미장센을 거부하고, 마치 플롯과 “누가 범인이냐” 식의 미스테리에 의존하는 이런 주류 스릴러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것인지를 은근히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지, 빠르게 인물들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 줌 같은 굉장히 유행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기법도 적지 않게 쓰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여지없이 60년대적인 역사적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가 가능한 부분도 있다. 

< [국제첩보국] 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반드시 빠질 수 없는 것이 존 배리의 음악일 것이다. 배리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완전히 논외로 치더라도, 63-68년 정도의 시기에 전방위적으로 역사에 남는 위대한 영화음악 ([줄루], [겨울의 사자], [Petulia]) 이거나 원래 영화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도 못 할 정도의 대규모 히트를 기록한 음악들 ([야성의 엘자], [The Quiller Memorandum]) 을 내놓았는데, 멋들어진 재즈에 헝가리산 타악기 심발롬으로 표출되는 날카로운 긴장감을 배합한 [국제첩보국] 의 스코어도 당연히 이 리스트에서 누락될 수 없다. “액션” 을 따라가면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장면이 지닌 “분위기” 와 “감정적 상태” 를 그려내는 스코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금관악기가 비수로 찌르듯이 “빵 빵 빵!” 하고 터지는 stinger 가 이러한 느긋하고 미끄러지는 듯한 플레이버의 음악에 강력한 액선트를 선사한다. 이런 종류의 음악의 배치는 죤 배리나 제리 골드스미스 같은 거장들이 우리를 떠나면서, 더 이상 영화에서 들을 수 없게 된 것일까? 


앞으로 다른 해리 파머 시리즈의 작품들에 대해 얘기를 할 기회가 올 지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순전히 개인적인 나의 의견으로는 후속작들인 [베를린의 장례식] 과 [십억달러의 두뇌] 에 관해서는, 파머가 일종의 관찰자 역할로 밀려나고 실질적으로 소련과 영국의 첩보국 수장들의 장기의 말이나 졸 같은 존재로 강등되는 것이 것이 적지않게 불만임을 고백하겠다. 데이튼의 원작에서도 파머가 사람들을 마구 쏴죽이고 두들겨 패고 그러면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지는 제임스 본드식 액션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 아니다. 그렇지만 원작에서의 파머는 본드처럼 몸으로 때우면서 들이받고 보는 아색기가 아니고, 모든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칼한 태도를 취하면서 일인칭으로 즉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남들한테 한 방 먹었다라는 식의 전개가 벌어지더라도 주인공의 존재감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일인칭 소설의 영화화라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영화화 팀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하는 유감이 없지는 않다. 


IPCRESS FILE- EXCHANGE

위에서 말한 스파이 영화의 걸작이라는 규정에는 일말의 의문도 없으나, [국제첩보국] 이 과연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과 맞먹는 수준의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가져다 주는 그런 영화일까? 그렇게 보자면 제임스 본드 영화는 그런 인문학적인 시점에서 바라본 걸작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시계장치 오렌지] 의 작자 안소니 버제스가 가장 위대한 99편의 현대 영어 소설을 선고하면서 존 르 카레는 전부 누락시키고 이언 플레밍의 [골드핑거] 를 포함시켰던 것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는데 (데이튼의 [Bomber] 는 당연히 올라가 있다), 나도 그런 식으로 [007 위기 일발] 이나 영화판 [골드핑거] 를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박찬욱 감독의 [Little Drummer Girl] 은 미니시리즈이므로 적합한 비교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보다 영화사적으로나 “예술작품” 으로서 더 높게 평가할 수 있을런지. 현재로서는 나의 입장은 유보적이지만, 항상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보는 것이 정직한 답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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