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소설] 방심했다

놈과의 거리를 믿고 방심했다. 몇 미터 떨어져 있기에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며 변칙적인 기술을 쓰려 했는데, 어느 순간 재빠르게 코앞까지 다가온 놈이 명치에 팔꿈치로 가격을 하려 했다. 가까스로 피해 옆구리를 스치는 걸로 끝났지만 잘못 했다간 단번에 승부가 결정 날 순간이었다.

이번엔 검을 뽑아 자세를 잡고 다시 반격에 나섰다. 이제 겨우 반 걸음 차이도 안 나는 거리에서 빠르게 검을 돌려 밑으로 내렸다. 그리고 신속히 들어올려 휘둘렀다. 분명 제대로 들어갔을 거라 생각했다. 확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시 방심하고 말았다.

 

놈은 검을 뽑기는커녕 다시 나의 품으로 파고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옷 안에서 단도를 꺼내 휘둘렀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내 확실히 알았다.

 

검을 들고 있던 내 오른손이 사라졌다는 걸.

 

등 뒤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손목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아픔 이전에 위기감이 먼저 찾아왔다. 앞엔 아직 적이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목숨이 위태로운 적이. 몸을 숙여 적을 어깨로 밀쳤다. 그 순간 확실히 보았다. 놈이 방심하는 것을. 한순간의 기회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았다. 놈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남은 왼손으로 집었다. 아니, 그러기 전에 놈이 검을 뽑았다. 그리고 난 집을 뽑았다. 그 상태로 놈의 허리를 강하게 집 끝으로 찔렀다. 놈이 크게 기침을 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또 한 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집을 크게 휘둘렀다. 강렬하게, 아주 강렬하게 놈의 얼굴에 직격했다. 자세가 무너지고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이 튀었다. 놈이 날 올려다 노려봤다. 나도 똑같이 노려봤다. 검집으로 상대를 겨누며.

 

상대가 안 된다고? 무모하다고? 하지만 난 벌써 두 번이나 기회를 잡았고 성공했다. 벌써 다음 수를 여섯 개 정도는 생각해뒀다. 상황은 아까 처음으로 대치하던 때로 돌아갔다. 다른 건 이번엔 방심하지 않을 거라는 거. 그 단 하나의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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