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 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콰이 강의 다리]는 데이비드 린의 대작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데이비드 린, 로버트 볼트, 모리스 자르의 팀이 이 영화로 완성되었다는 건 아니에요. 그건 다음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부터입니다. 알렉 기네스는 린의 이전 영화에도 나왔었고요. 이 영화를 본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린은 영국의 가장 뛰어난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이런 대작의 전문가로 여겨지지는 않았단 말이죠.

피에르 불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그러니까 영국인 주인공이 나오는 프랑스어 소설을 각색한 영어 영화지요. 영화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고 합니다. 단지 윌리엄 홀든이 연기하는 시어스는 원작에서는 영국인이라고 해요. 그리고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콰이강의 다리를 파괴하는 임무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불은 영화를 좋아했지만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요.

[나바론의 요새]처럼 파괴 미션을 수행하는 특공대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막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시어스라는 군인이 중요한 정보를 영국군에 제공합니다. 일본군이 연합군 포로들을 부려 다리를 짓고 있었던 거죠. 영국군은 시어스를 억지로 자기 팀에 넣고 다리 파괴 작전에 돌입합니다. 때마침 일본군 요인이 탄 기차가 다리를 통과한다네요. 영화는 이런 영화들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걸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공하지요.

그런데 영화가 진짜로 중요하게 그리는 건 이 다리의 건설과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인공인 영국군 포로 니콜슨 중령은 정말로 골때리는 인물이지요. 제네바 조약에 따라 장교들은 노역에 동원될 수 없다며 일본군에게 시위를 할 때까지 이 사람은 아주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위가 성공한 뒤로 니콜슨은 아주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국인들의 기술과 노동으로 진짜 끝내주는 다리를 건설해 영국인의 우월성을 보여주겠다고요.

이게 말이 되나? 심지어 이 영화에서 니콜슨을 연기해 아카데미 상을 받은 알렉 기네스도 이 인물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가 봐도 적에게 이로운 행위잖아요. 어쩔 수 없이 노역에 동원되어도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요.

그래도 우린 이해를 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일단 전쟁은 그냥 미친 행위이고 이 미친 짓에 오래 머문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질 수 있습니다. 니콜슨과 같은 직업 군인이 파괴하는 대신 오래 남는 무언가를 짓는 행위에 집착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에 또다른 것도 있는데, 니콜슨은 생각이 짧은 원칙주의자라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원칙에만 집착하다가는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다 길을 잘못 들면 계속 자신을 정당화화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이건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국주의 시스템의 일부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 더 험악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일본군이야 당연한 악역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니콜슨 역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이죠. 수용소의 사이토 대령과 니콜슨의 궁합이 그렇게 잘 맞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우리처럼 일제 강점기를 겪은 사람들 눈엔 더욱 그렇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니콜슨은 여러 모로 친일파로 전향한 왕년의 항일투사 같죠. 적어도 우리 눈에는요.

그러나 [콰이 강의 다리]는 그냥 '전쟁은 미칫 짓'이라는 큰 그림을 보는 영화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코미디지요.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웃깁니다. 니콜슨은 웃기는 괴물입니다. 시어스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영화는 이 남자를 온갖 방식으로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거 같습니다. 단지 영화가 당시 일본군이 당시 저지른 만행을 그대로 그렸다면 지금처럼 웃기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24/09/17)

★★★☆

기타등등
1. 참고로 말하면 불 역시 서방 제국주의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인도차이나의 프랑스군에 있었으니까요. 소설은 불 자신이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불의 또다른 대표작 [혹성탈출]에도 영향을 끼쳤죠. 백인남자인 자신이 백인남자가 아닌 존재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겁니다.

2. 데이비드 린의 작품들 중 가장 옆으로 긴 영화입니다. 2.55:1.

3. 제가 종종 이야기했었는데, 더빙 시절 한국 텔레비전 영화는 원래 영화음악을 쓰는 대신 몇몇 음악들을 돌려가면서 넣었습니다. 로저 미클로시의 [스펠바운드] 음악은 MBC에서 특히 자주 틀었던 것으로 기억하고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영화의 음악 몇 개도 꽤 자주 쓰였던 것 같습니다. 누가 확인해주었으면 좋겠어요.

4.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 대다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습니다. 50년대엔 그 전쟁이 그렇게까지 과거 일이 아니었던 거예요.

5. 이 영화의 각색자인 칼 포어먼과 마이클 윌슨은 모두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습니다. 영화는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는데, 어쩔 수 없이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원작자 피에르 불이 대신 상을 받아야 했습니다.


감독: David Lean, 출연: William Holden, Alec Guinness, Jack Hawkins, Sessue Hayakawa, James Donald, Ann Sears, Geoffrey Horn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0212/

    • Colonel Bogey March 가 제일 기억나는 영화이었습니다. 서너 번 봤었는데, 양철 찜통 감금이라는 형벌이 평화롭지만 괴로운 고문이라, 주인공에게 생수 한 병 던져 주고 싶은 마음이 막 생겼었습니다.
      그리고 위 영화의 영화 음악 중 일부 (찾아보니 'Trek to the Bridge'이네요)가 70년대에 tv 방영되었던 '그레이트 마징가'의 전투씬에 나오는 음악으로 (무단)사용되었던 것을 몇 년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
    • 맞습니다. 로봇 만화 팬이라 그레이트 마징가를 챙겨보았는데 거기서 콰이강의 다리 음악이 나왔습니다. 전투씬 뿐 아니라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자주 나왔습니다.
      • 아.. 맞습니다. 사실 긴장 고조시에 이 음악이 더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catch하시고 기억하시는 숨은 '고수'님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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