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2023)


윤수익의 [폭설]은 미스터리의 해답과 같은 영화입니다. 언젠가부터 한해인이 짧은 머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한소희가 서핑을 시작했는데, 알고 봤더니 이게 모두 다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였던 거죠. 영화는 2019년에 찍었지만 작년부터 영화제를 돌다가 얼마 전에 개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동안 한소희가 스타가 되었으니 개봉 가능성이 열려서였겠죠. 그 뒤에 일어난 좀 어처구니 없는 스캔들 이전에 개봉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강릉의 예고에 다니는 두 학생 이야기입니다. 설이는 아역 시절부터 배우 일을 해온 스타인데 막 그 학교에 전학왔습니다. 수안은 그 학교 연기 전공 학생이고요. 둘은 친구가 되고 서울로 여행을 갑니다. 몇 년 뒤 나름 인기있는 신인 배우가 된 수안은 강릉으로 돌아가는데, 거기선 배우 일을 그만 둔 설이가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지배하는 불만은 고등학교 때 겁먹은 수안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설이를 밀어냈다는 데에서 발생합니다. 한 마디로 두 사람은 했어야 할 섹스를 못했고 관객들은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영화의 드라마를 끌어갈 서스펜스가 발생합니다.

단지 로맨스를 기대하고 볼 영화는 아닙니다. 재료는 있는데, 그게 이런 장르의 팬들이 기대하는 덩어리로 뭉쳐지지는 않아요. 두 사람이 좀 관념적인 아트하우스 영화 레즈비언이긴 한데, 이게 진짜 문제는 아닙니다(아니, 여러분은 다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좋아하잖아요). 관념적인 아트하우스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캐릭터들을 끌어가는 일관적인 흐름과 에너지가 있다면 결국 설득력이 생기고 관객들은 받아들이겠죠.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게 많이 부족해요. 특히 대사가 그런데. 두 배우가 빈약한 소스를 연기력과 매력으로 커버하며 끌어간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영화가 중요시하는 게 로맨스가 아니기도 합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진짜로 일어났는지 관객들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수안이 마약중독으로 쓰러졌을 때부터 모두 수안의 환상일 수 있습니다. 수안이 서핑을 하다 바다에 쓸려간 뒤부터 앰브로스 비어스 스타일의 환상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고요. 물론 이 모든 게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진 진짜 사건일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눈덮인 강원도 숲 속에서 벌어지는 후반부의 이야기가 과거에 사로잡힌 수안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꽤 재미있는 해석들이 가능해지긴 합니다. 단지, 그렇다고 해도 영화의 부족한 매력은 여전히 아쉽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꿈결 같은 영화라는 건 위에서 언급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마찬가지잖아요. 이 문제의 상당부분은 각본에 조금 더 공을 들였다면 해결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전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단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고, 여기서 두 배우는 실망을 안 시키니까요. 러닝타임도 짧고, 약간의 구질구질함과 진부함을 이겨내고 보다보면 뜻밖에 아름다운 장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다음엔 더 좋게 볼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무엇보다 둘이 막판에 결국 섹스를 한 거 같아요. 그게 수안의 머릿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일단 화면에 뜨긴 떴으니까 관객들은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습니다. (24/10/27)

★★☆

기타등등
당시 한소희가 모델이었던 바닐라코 광고사진이 나옵니다.


감독: 윤수익, 출연: 한해인, 한소희, 다른 제목: Heavy Snow

IMDb https://www.imdb.com/title/tt28679156/

영화 리뷰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2304 수연의 선율 (2024) 2 852 12-02
2303 아침바다 갈매기는 (2024) 969 12-02
2302 위키드 Wicked (2024) 7 2,294 12-01
2301 글래디에이터 II Gladiator II (2024) 2 1,919 11-25
2300 히든페이스 (2024) 2 2,207 11-25
2299 사흘 (2024) 1,410 11-18
2298 사랑의 도피 L'amour en fuite (1979) 1,180 11-01
열람 폭설 (2023) 1,724 10-27
2296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2024) 2,224 10-22
2295 매드 매드 대소동 It's a Mad, Mad, Mad, Mad World (1963) 4 1,324 10-03
2294 서부개척사 How the West Was Won (1962) 2 900 10-01
2293 콰이 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3 2,492 09-17
2292 열정의 랩소디 Lust for Life (1956) 855 09-16
2291 그림 형제의 멋진 세계 The Wonderful World of the Brothers Grimm (1962… 915 09-16
2290 이것이 시네라마다 This Is Cinerama (1952) 1,046 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