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II Gladiator II (2024)

전에도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전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로마 제국의 멸망]의
짝퉁이라 신선함이 떨어지고 당시 로마의 역사를 바라보는 현대 서구인의 관점은 좀 민망하지요. 특히 공화주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좀 어이가 없죠. 그렇다고 이 영화를 싫어한다는 건 아니고요. 나쁜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까지 애착이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얼마 전 [글래디에이터 II]가 나왔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그런 것처럼 스콧 영감이 옛날 자기 히트작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확장 우주를 추구한 영화죠. 왜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영화의 각본가는 데이비드 스카파로
그렇게 인기있다고 할 수 없는 스콧의 전작인 [나폴레옹]의 각본을 쓴 사람이죠.
영화는 1편이 끝난 지 20여년 뒤가 배경입니다. 카라칼라와 게타가 공동황제였던 시절입니다. 전편도 그렇게까지
실제 역사에 충실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이 영화는 더 심한 편입니다. 1편은 그래도 영화가 끝난 뒤엔 우리가
아는 로마 역사를 따를 수도 있을 거 같잖아요. 이번 영화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실 시작부터 영화 속
우주 자체가 평행우주처럼 보이죠.
영화는 한노라는 검투사를 주인공으로 진행되는데, 이 사람은 사실 루킬라와 막시무스의 아들 루키우스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에 의해 누미비아에 보내졌다가 군인이 되어 정착했는데, 전쟁에 패배해 다시 노예로 끌려왔지요. 그러다가
우리 우주에서는 미래의 황제인 마크리누스의 눈에 들어 검투사가 됩니다. 마크리누스는 무어인 황제로 여겨지고
있어서 스콧은 댄젤 워싱턴을 캐스팅했는데, 무어인들이 꼭 흑인일 필요는 없지요. 아마 오셀로도 그냥
피부가 좀 짙은 북아프리카 사람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워싱턴을 캐스팅할 기회가 있다면 잡아야죠.
우리가 이 배우를 로마 사극에서 볼 기회가 몇 번이나 더 있겠습니까.
하여간 영화는 복수와 공화정이라는 1편의 테마를 반복하고 변주하는데, 아무래도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역사를 대충 다루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결국 역사물은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하는데, 이게
실제 역사로부터 점점 멀어지다보니 세계관이 헐거운 판타지물 비슷하게 변해가는 거예요. 무게를 잃어버리는
겁니다. 차라리 어딘가에 타임머신을 세워놓고 대체역사물로 만들었다면 더 정직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전 1편보다 재미있게 봤어요. 처음부터 '얘들이 어디까지
가나 보자'하며 실눈을 뜨고 보다가 결국 포기해버리는 과정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할까요.
게다가 이렇게 탁 줄이 끊기다 보니 정말 아무 거나 막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대충 만든 거 같은 장면 일부는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좀 어이가 없죠. 예를 들어
콜로세움에서는 실제로 가짜 해전이 공연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리들리 스콧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인들이 거기에 상어를 풀거나 하지는 않았겠죠. 그리고 초반에 나오는 개코원숭이는
우리가 모르는 아종처럼 보이지 않던가요.
[글래디에이터 II] 이후의 대체역사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로마인들이 그 세계를 발전적으로 유지시켰을 거 같지는 않아요. 과거는, 그리고 역사는
미래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단합니다. 그래서 종종 절망하게 되는 것이지만.
(24/11/25)
★★☆
기타등등
[문나이트]의 메이 칼라와이가 꽤 비중있는 역으로 캐스팅된 모양인데, 출연장면이
몽땅 삭제되었습니다. 종종 있는 일인데, 그래도 팬들은 기분 나쁘죠. 그 배우가
팔레스타인계이니 음모론도 가능하고.
감독:
Ridley Scott,
출연:
Paul Mescal,
Pedro Pascal,
Joseph Quinn,
Fred Hechinger,
Lior Raz,
Derek Jacobi,
Connie Nielsen,
Denzel Washington
IMDb https://www.imdb.com/title/tt9218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