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1955)


[사냥꾼의 밤]을 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이고 여기저기에서 자주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는데, 정작 리뷰를 쓴 적은 없지요. 제 리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하지만 얼마 전에 왓챠에서 다시 들어와서 보았고 몇 줄 남깁니다.

찰스 로튼의 영화입니다. 로튼은 [헨리 8세의 사생활)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저명한 영국배우죠. 전 로튼의 작품 중엔 [검찰측 증인]을 가장 좋아합니다만. [사냥꾼의 밤]은 로튼의 유일한 영화 감독작인데, 당시엔 반응이 별로였습니다. 로튼은 실망했고 더 이상 영화 감독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로튼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냥 무대 연출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둘 다 사실일 수 있겠죠. 지금 이 영화는 로튼의 이름이 들어간 영화 중 최고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도 있는 거죠.

[사냥꾼의 밤]은 데이비스 그럽이라는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자보다는 각색자인 제임스 에이지가 더 유명한데, 이 영화의 각본은 에이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영화 개봉 직전에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그리고 그럽은 영화를 위해 꽤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데, 그 중 일부가 스토리보드로 쓰인 모양이에요. 이 사람은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색맹이라 포기했지만.

이 영화의 악당은 로버트 미첨이 연기하는 해리 파월이라는 자칭 전도사입니다. 말주변이 좋고 카리스마가 상당하죠. 한쪽 손엔 LOVE, 다른 손엔 HATE라는 문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이것들을 갖고 설교를 풀어가는데, 어쩌다 보니 이 잔재주는 영화사에 불멸의 이미지로 남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인간은 연쇄살인마이고 사기꾼이에요. 여자들을 유혹해 죽이고 돈을 강탈하는. 해리 파워스라는 실제 범죄자가 모델이라고 합니다.

파월은 감옥에서 벤 하퍼라는 사형수를 만납니다([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피터 그레이브스가 연기합니다) 이 사람은 은행을 털고 돈을 집 어딘가에 숨겼는데, 경찰은 찾지 못했죠. 하퍼는 처형되고 감옥에서 나온 파월은 하퍼의 아내 윌라(셜리 윈터스예요)를 그 사람을 유혹해요. 둘은 결혼하고 파월은 이 사람을 살해해 차와 함께 물속에 버립니다. 이제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하퍼의 아이들인 존과 펄만 남았어요. 아이들은 보트를 타고 달아나다가 레이철 쿠퍼라는 친절한 여자를 만납니다.

동화적 필름 누아르입니다. 현실 세계의 범죄자에서 영감을 얻은 끔찍한 남자가 대공황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범죄 행각을 저지르는데, 여기서 남자의 타겟은 두 어린아이들이에요. 그리고 관객들이 얘들을 주인공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영화는 그림동화스러운 환상성을 갖추게 됩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상당수는 그 동화적 렌즈를 통할 때 나와요. 그 과정을 통해 파월은 아이 잡아먹는 동화 속 괴물로 부풀려지고요.

파월의 묘사는 기독교 비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여성 혐오를 기독교로 정당화하고 있어요. 많은 평론가들은 이 남자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합니다. 기독교 환경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부정하다가 이 길로 간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면 그냥 평범한 이성애 욕망을 종교적 믿음이 막아선 결과 맛이 간 것일지도. 하여간 영화는 기독교 신앙이 비틀린 개인과 생각 없는 대중에게 어떤 끔찍한 영향을 끼치는지를 상세하게 보여줍니다. 단지 선을 넘지는 않죠. 아직 1950년대. 헤이즈 코드가 아주 죽지는 않았을 때. 파월이 ‘가짜 전도사’인 것도 이걸 피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원작에서도 가짜 전도사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반기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 후반에 아이들의 보호자로 나서는 레이철 쿠퍼 때문입니다. 이 사람도 기독교 신자예요. 파월을 ‘거짓 선지자‘ 프레임 안에 넣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이 사람이죠. 레이첼 쿠퍼는 파월이 갖고 있지 않은 모든 좋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심으로 자기가 보호하는 아이들을 아끼고 자신의 믿음을 멋대로 이용하거나 뒤틀지 않으며,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광신도는 절대로 아니에요. 언제나 사람이 먼저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종교를 믿어도 선한 길을 갈 사람입니다. 제가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 캐릭터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리고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전설적인 릴리언 기시였습니다. 로튼은 무성영화 시절 영화의 힘을 되살리려고 했으니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을 캐스팅한 건 너무나도 논리적이죠. 기시를 제안한 건 로튼의 아내 엘사 랜체스터였다고 합니다만.

레이철 쿠퍼와 해리 파월의 대립하는 후반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과 악의 대결입니다. 영화는 파월에게 어떤 거창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전반부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상관없이 후반부의 파월은 그냥 잡범이고 잡범처럼 경찰에게 끌려갑니다. 사실 잡범 맞죠. 어린아이의 인형을 빼앗으려다 잡혔으니. 그러는 내내 쿠퍼 선생은 도덕적 수호자로서 위엄있으면서도 단호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요. 영화는 후반부에서 파월의 악함을 다시 폭로하는 대신 이 악당을 린치하려는 분노한 군중들의 소름끼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쿠퍼 선생은 이들로부터도 단호하게 거리감을 둡니다. 여기서 이 분 정말 멋져요. 전 이 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흔들리는 십대 여자 아이 루비를 대하는 태도도 좋아합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종교 안에서 있어도 (또는 그냥 종교 바깥에 있어도) 티가 나는 법이죠.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제 소설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무뚝뚝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레이철 쿠퍼가 모델입니다. 특히 [두 번째 유모]가 그렇죠.

(26/01/22)

★★★★

기타등등
1. 물속 장면에 나오는 윌라의 시체는 셜리 윈터스가 아니라 윈터스의 얼굴 본을 뜬 가면을 쓴 인형입니다.

2. 영화에 스푼이라는 성을 가진 가족이 나옵니다. 왓챠 버전 자막에서는 이들은 모자 사이로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은 부부입니다. 당시 남부 남자들은 아내를 종종 mother라고 불렀어요. 그 때문에 생긴 착각일 텐데.


감독: Charles Laughton, 출연: Robert Mitchum, Shelley Winters, Lillian Gish, James Gleason, Evelyn Varden, Peter Graves, Don Beddoe, Gloria Castillo, Billy Chapin, Sally Jane Bruce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8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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