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고기 (2025)


[사람과 고기]를 보다보면 세 주인공이 수도권 전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몇 분의 몇 초 동안 '저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약자석에 앉는 것이 당연한 노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뇌가 깜빡했던 거죠. 지금까지 그 노인 주인공들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네, 노인네 세 명이 주인공입니다. 남자 둘은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고 있어요. 여자는 노점상이고요.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어요. 평생 독신이었던 우식은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 살아가고 있고, 형준은 외국에 간 아들의 소유라 팔 수도 없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고, 화진은 돈많은 남자의 첩이었다가 죽은 딸이 남긴 손주를 간신히 대학에 보냈습니다. 삶이 퍽퍽하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노인네들이라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죠.

그 때까지는 평범하게 살아왔던 형준과 화진은 우식 때문에 사고를 치게 됩니다. 수도권 여기저기 고깃집을 돌아다니며 무전취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우식을 따라갔다가 질겁한 두 사람은 점점 우식에게 말려듭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끝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특히 요새처럼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시대엔.

컴컴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사람과 고기]는 의외로 밝은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코미디라는 건 아니에요. 영화는 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암담한지를 감추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의외로 씩씩하고 심지어 용맹하거든요. 심지어 꽤 하드보일드하기도 합니다. 범죄나 캐릭터의 묘사도 그렇고, 사법기관과의 충돌 묘사도 그렇고.

보면 신기한데, 영화는 우리가 노인 소재 영화에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없거나 적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연민요. 없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살면 당연히 자기가 불쌍하죠. 하지만 그 연민은 우리가 생각되는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징징거리지 않습니다. 영화는 자기 인정의 욕구도 없습니다. 내 삶이 얼마나 힘들었고, 우리 세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너네들은 아느냐는 호령도 없어요. 세 사람은 모두 그냥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 살아가는 방식이 무전취식이라 문제지.

그러면서도 영화는 의외로 정확합니다. 일단 최적의 눈높이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주인공들을 타자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깝게 가서 객관성을 잃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 나이 또래 노인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나이도 그렇고 특정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그렇고. 비교적이라고 말한 건 세 배우의 연기가 다들 노련해서 그 또래 노인들의 흐릿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이건 꼭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다들 수상쩍을 정도로 꼿꼿하고 대충 입은 거 같은 복장이 은근히 쿨해 보이기도 하는데 전 이것도 대충 넘기고 싶고요. 어쨌건 올해 본 한국 영화 중 [사람과 고기]처럼 예측하지 못한 재미를 준 작품은 없었으니까요. (25/11/23)

★★★☆

기타등등
중후반에 우식의 고양이를 누가 돌봤는지가 영화에 나오지 않아 많이 걱정되었는데, 각본에 따르면 형준이 맡았다고 합니다.


감독: 양종현, 출연: 박근형, 장용, 예수정, 다른 제목: People and Meat

KMDb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4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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