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폴 Dylda (2019)


칸테미르 발라고프의 [빈폴]은 작년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감독상과 국제영화비평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소개되었고 전 얼마 전에 CGV에서 하는 아카데미상 행사에서 봤어요. '2020년 아카데미 아차상'이라고 분류되어 있더군요. 이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아니, 인터내셔널 영화상 롱 리스트에는 올라와 있었는데, 최종 후보는 되지 못했거든요. 그게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만.

제목의 '빈폴'은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야의 별명입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왜 그런 별명을 얻었는지 알 수 있어요. 굉장히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의가사제대했고, 그 뒤로는 레닌그라드의 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아직 다 낫지 않아서 가끔가다 몸이 경직되곤 해요. 세살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사실은 같은 부대에 있었던 마샤의 아이지요.

영화가 시작되면 이미 전쟁은 끝났습니다. 소련 영화에 익숙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통 이 시기는 희망차고 밝게 그려지기 마련입니다. 전쟁으로 몇천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사악한 나치과 맞서 싸워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고, 이제 재건의 기쁨만이 남아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이건 그냥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아직도 몇 년 더 버틸 스탈린 정권의 독재를 잊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 끔찍한 전쟁의 상흔에서 그렇게 말끔하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죠. 발라고프는 이 상흔을 진지하게 파기로 결정했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소스로 삼았습니다. 이 책을 영화화한 게 아니라 이 책에서 기록한 여자들의 구술사를 교과서 삼아 영화 속 우주를 만들어낸 거죠. 당연히 [빈폴]은 이 당시를 다룬 옛 소련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와 드라마와 인물들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내용은 그냥 고통스럽습니다. 이 영화에는 긍정적인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심하게 다쳤고 도시는 유령들이 떠도는 폐허와 같습니다. 모두 경제적으로 궁핍한 건 당연한 일이고요. 하지만 그 중 가장 끔찍한 건 인간 관계입니다. 전 이 영화에서 벌어진 아주 끔찍한 일은 언급할 생각도 없어요. 단지 이 영화의 사랑과 섹스가 모두 스토킹과 강간처럼 보인다는 말은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보면서 이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건 그냥 무례한 일입니다. 다들 심각하게 다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같은 충만된 로맨스를 기대하는 건 부질없습니다. [빈폴]은 아름다운 영화지만 그 아름다움은 광기와 고통과 상처와 폐허의 아름다움입니다. 영화는 끝에 간신히 해피엔딩 비슷한 걸 형식적으로 흉내내지만 우린 그게 해피엔딩의 유령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영원한 것은 없고 두 주인공이 말미에서 그처럼 갈망하던 안정을 찾았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그 상처를 없었던 것처럼 여길 수 있겠어요. (20/01/30)

★★★☆

기타등등
스탈린 정권 시절 소련에서 전형적인 계급 갈등 멜로드라마가 연출되는 걸 보면 늘 신기하단 말이죠. 이상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요.


감독: Kantemir Balagov, 배우: Viktoria Miroshnichenko, Vasilisa Perelygina, Andrey Bykov, Igor Shirokov, Konstantin Balakirev, Kseniya Kutepova, Alyona Kuchkova, 다른 제목: Beanpole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19964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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