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사이달 Homicidal (1961)

윌리엄 캐슬의 [호미사이달]은 1961년에 나온 [싸이코] 짝퉁 영화입니다. 네, 맞아요. 염치 없죠. 하지만
캐슬에게서 염치 같은 걸 기대하면 안 됩니다. 당시엔 미적지근한 평을 받은 작품인데, 캐슬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의외로 수명이 길고 팬도 많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효과적인 반전을 갖고 있어요.
지금 반전을 모르고 [싸이코]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호미사이달]은 가능하니까 기회를
줘도 될 거 같습니다. 단지 여기서 전 영화의 결말을 노출합니다. 결말을 모르고 보고 싶으시다면
나가세요.
영화는 히치콕 흉내를 내며 영화를 소개하는 캐슬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남매를 보여주죠. 현재로 건너 뛴 영화는 어느 호텔에
손님으로 들어온 금발 여자를 보여주는데, 이 사람은 갑자기 벨보이 하나를 고르더니 자기랑
결혼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단지 결혼식을 올리는 즉시 무효화하겠다는 조건이죠. 벨보이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습니다. 둘은 한밤중에 치안판사네 집을 찾아가 식을 올리는데, 갑자기 그 여자는 칼을
꺼내 그 치안판사를 살해합니다. 이것도 반전일 수 있을 거예요. 이런 국면 전환을 상상하며
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여자는 용하게 살인현장에서 빠져 나오고, 우린 이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됩니다. 사실
이후 나오는 대사들은 추리소설용 정보전달 기능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무심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 대화의 기능은 모두 관객들에게 설정 이해와 추리를 위한 기반을 제공해주는 거죠.
아까 살인을 한 사람은 에밀리입니다. 헬가라는 은퇴한 늙은 간호사의 간병인이죠. 헬가는
미리엄과 워렌이라는 이복 남매가 돌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앞에서 봤던 남매예요. 헬가는
말을 못하고 에밀리는 이 사람을 정서적으로 학대합니다.
30분쯤 지나면 관객들은 대충 이 영화가 무슨 게임을 하려고 하는지 대충은 짐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확신은 안 서니까 따라가는 거죠. 전 모 엘러리 퀸 단편을 떠올렸는데, 나중에 결말이
밝혀지고 보니 절반 정도는 비슷했습니다. 하여간 이 영화를 끌어가는 건 이런 추리소설의
서스펜스입니다. 호러로 소개되고 있지만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비중이 더 커요. 히치콕은 둘이
전혀 다르다고 했지만 그렇지는 않지요.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에 캐슬 특유의 장난이 등장합니다. 미리엄이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한 저택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화면에 시계가 뜨고는
앞으로 일어날 정말로 무서운 장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나가라고, 지금 나가면
환불해준다고 선언하는 거죠. 하지만 정말 그 때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보다가 진상을 모르고 그냥 나간다고요? 어차리 캐슬 영화는 자기가
주장하는 것만큼 무섭지도 않잖아요. 당시 관객들은 더 무섭게 봤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허풍에 넘어갈 쫄보들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미리엄이 본 것은? 헬가의 시체입니다. 영화는 몸에 얹혀 있다가 굴러 떨어지는
헬가의 머리를 그림자로 보여주죠. 하지만 캐슬이 자신 있어한 무서운 장면은
반전입니다. 알고 봤더니 에밀리와 워렌은 동일인물이었어요. 눈치 빠른
관객들이라면 알아차렸을지도 몰라요. 특히 에밀리와 워렌이 같이 있을 때
워렌의 목소리만 들리는 부분에서는요. 하지만 두 캐릭터를 나누는 변장이
상당히 효과적이고, 캐슬은 워렌의 대사를 남자 성우를 고용해 녹음시켰습니다.
반칙이지만 그 때문에 두 캐릭터의 분리가 더 선명해졌어요.
맞아요. 여기서 그 두 사람은 '여성'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가 아들을 원했기 때문에 워렌의 어머니는 아까 살해당한 치안판사와
헬가의 도움을 빌어 태어난 딸을 아들로 위장했던 거죠. 그렇게 자란 워렌은
에밀리로 변장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거고.
유언장에 '아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거든요. 워렌과 헬가는
한동안 덴마크에 머물렀고 당시 덴마크는 성별정정수술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캐슬이라고 알았을까요.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대충입니다.
세련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에요. 종종 '찍어 놓은 푸티지가 부족해서
대충 편집했구나'라는 장면들이 보이고. 하지만 1시간 27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이 없고 무엇보다 영화의 기둥이 되는 주연배우의 연기가
좋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진 알리스라는 이름으로 크레딧에 오른
그 배우 이름은 조운 마샬입니다. 주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이 영화 이후엔 특별한 대표작은 없는 것 같아요. 캐슬은
원래 에밀리와 워렌 역 배우를 따로 캐스팅할 계획이었는데,
비서가 변장한 마샬을 남자라고 생각하자 확신이 섰다고 합니다.
(25/09/09)
★★★
기타등등
위에서 제가 언급한 엘러리 퀸 단편은 [수염 난 여자의 모험]입니다.
감독: William Castle
출연:
Glenn Corbett, Patricia Breslin, Eugenie Leontovich, Alan Bunce, Jean Arless.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4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