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리 장만옥 (2025)


영화를 보기 전에 전 [이반리 장만옥]이 비유적인 제목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시골 마을 이름은 진짜로 이반리입니다. 주인공 이름은 진짜로 장만옥이고요. 제목이 쓰이는 방법만으로도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하거나 그럴싸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는 영화구나.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장만옥은 퀴어바인 레인보우를 정리하고 고향인 이반리로 내려옵니다. 엄마가 죽고 유산으로 집을 남겼어요. 만옥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들여다 보면 그 집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게 맞겠죠. 20년 넘게 오픈리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사람이 그 시골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이장으로 있는 전남편의 만행에 맞서던 우리의 주인공은 어쩌다 보니 이장 선거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니까 허구화된 레즈비언 하비 밀크 이야기인 거죠. 단지 실존 인물 이야기가 아니니 영화는 막 나갈 수 있습니다. 정말 웃기는 데에 진심인 영화예요. 웃길 수 있다고 생각되면 아무 거나 마구 던지는. 이게 다 먹히지는 않아요. 종종 농담의 퓨즈가 너무 짧고 나머지를 배우의 힘으로 커버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던지는 게 정말로 많고 그 중 먹히는 것도 많아요. 그 상당수는 그렇게 고상하거나 세련된 건 아닙니다. 그런 건 영화의 목표가 아니기도 하고. 아, 그리고 무척 충청도 코미디예요. 충청도 사람들이어서 가능한 그 능글맞은 느낌이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영화는 웃기는 것만큼이나 메시지에도 진심입니다. 퀴어 인권, 퀴어 프라이드 모두 중요한 주제이고 영화는 이걸 프라이드 깃발처럼 뻔뻔스럽게 휘두릅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마을의 이반 청소년 재연입니다.

이 둘은 결합될 수 있는가? 일단 레즈비언이라는 게 만옥의 캐릭터에서 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기엔 만옥의 여자친구 금자와의 20년에 걸친 긴 로맨스도 포함되죠. 굉장히 많은 퀴어 농담들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재연의 이야기가 발전되면 영화가 좀 어두워지고 지나치게 심각해지기도 하는데, 영화는 그만큼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신나게 웃으며 극장을 나설 그런 결말이죠.

단지 이게 가상의 하비 밀크 영화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후반부는 분명 카타르시스를 주고 혐오자들과 맞서는 재연의 이야기를 해결하는데, 퀴어인 주인공이 마을 이장이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한다는 게 이 영화의 기둥이라면 이 프라이드 행진과 같은 소동은 잘 맞지 않지요. 가장 중요한 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재연의 이야기를 살리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좀 대충 넘기는 것 같아요. 심지어 전 이게 충분히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때문에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도 갖고 있는 모든 재료에 진심인 영화라 허망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장만옥을 연기한 양말복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에 이어 자기 욕망에 솔직한 중장년 여성의 모습을 정말 뻔뻔스럽게 살려내고 있어요. 게다가 만옥의 오랜 여자친구 금자를 연기한 김정영의 중년 부치 연기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럴싸해요. 이 배우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25/09/09)

★★★

기타등등
감독의 전작 단편 [굿마더]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지금은 볼 수 있는 곳이 안 보이는군요.


감독: 이유진, 출연: 양말복, 성재윤, 박완규, 김정영, 다른 제목: Manok

IMDb https://www.imdb.com/title/tt35820396/

    • 첫 문단의 '시골 마서'는 시골 '마을'의 오타일까요. 마지막 바로 전 문단의 '카타리스'는 '카타르시스'일 것 같고... 그 문장 자체가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 영화의 그 무시무시한 엄마였던 양말복씨가 레즈비언 역할에 영화는 막 나가는 코미디라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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