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밀실 The Small Back Room (1949)

이번 영상자료원의 '파웰 & 프레스버거 X 스콜세지' 프로그램에서 제가 처음 본 영화가 세 편이었지요.
[좁은 밀실], [여호]. [세상의 끝]. (다큐멘터리인 [메이드 인 잉글랜드: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영화 세계]는
뼀습니다.) 하여간 이들 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좁은 밀실]이었습니다. 흥행에서 망했다고 해서 재미면에서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분홍신]이나 [삶과 죽음의 문제]와 같은 대표작들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재미를 갖고 있는 영화였어요.
[분홍신]과 [호프만의 이야기]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러니까 파웰 & 프레스버거의 팀이 내외적 이유로 조금씩
와해되던 시절의 작품이지요. 화려한 테크닉컬러로 유명한 두 작품과는 달리, [좁은 밀실]은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조촐한 흑백영화입니다. 원작이 있어요. 나이젤 발친이라는 작가가 1943년에 쓴 동명소설입니다.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내부자가 쓴 자서전적 이야기입니다. 1943년이라면 전쟁이 한창일 때였는데 이런 책을 내도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영화의 주인공은 새미 심스라는 민간인 엔지니어입니다. 같은 직장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수잔이라는 여자와
동거 중이고 둘이 같이 스노우볼이라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어요. 이 정도면 나름 안락하게 들리는데, 새미는
고민이 많습니다. 일단 이 사람은 발 하나가 없어요. 폭탄 전문가니까 아마 사고를 당했나 보죠. 임무에 따른
압박감도 심하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 모든 건 수잔과의 관계에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관객들은 "그냥 여자 말을 들어라"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오는 걸 느끼게 되지요.
영화는 새미의 내면과 이 사람의 직장 생활을 오가며 진행됩니다. 일단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차
임무가 있고 얼마 전부터 독일군이 떨어트리는 부비트랩에 대해 연구하는 이차 임무가 있지요. 그리고 이 모든
연구는 영국 관료 체제와 얽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풍자가 영화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 덜컹거리는 장애물 사이에서도 자기 일을 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예찬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큰 재미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이 콤비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영화와 이야기의
재미를 찾아냅니다. 폭탄 해체 작업의 정교한 서스펜스, 수잔과의 관계를 묘사할 때 투여되는 멜로드라마,
관료 체제를 쿡쿡 찌르는 코미디 모두 재미가 극대화되어있어요. 새미의 알코올 의존증을 묘사하는 장면에
사용되는 초현실적인 묘사처럼 콤비의 이름을 들으면 떠올릴 법한 것들도 있습니다. 단지 1949년 영국 관객들이
그들이 간신히 빠져 나온 전쟁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았던 건 이해가 가요.
(25/04/01)
★★★★
기타등등
[검은 수선화]에 이어 연달아 보았는데, 이 영화에도 데이비드 패러와 캐슬린 바이런이 나옵니다.
저번 영화에서는 바이런의 캐릭터가 패러의 캐릭터를 스토킹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커플이죠.
감독: Michael Powell,
Emeric Pressburger,
출연:
David Farrar,
Kathleen Byron,
Jack Hawkins,
Leslie Banks,
Michael Gough,
Cyril Cusack,
Milton Rosmer,
Emrys Jones,
Walter Fitzgerald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41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