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가까이 (2010)


[조금만 더 가까이]는 김종관의 첫 장편영화로 홍보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독립된 단편들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다섯 단편들은 모두 장편영화의 러닝타임 안에 하나의 틀 안에 묶이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으니 전에 개봉되었던 단편모음집 [연인들]과는 성격이 다르죠. 그의 진짜 장편과 단편 시절 사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김종관이 단편을 포기할 거라는 건 아니고... 아, 쓸데없이 말이 길어지는군요.

영화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두 번째와 네 번째는 같은 주인공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2부로 이어진 하나의 이야기로 봐도 됩니다. 대부분 인물 클로즈업과 대사 중심의 이야기가 단일 시퀀스 안에 압축된 작품들입니다. 형식적으로[폴라로이드 작동법]과 같은 영화들이 계속 연달아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내용까지 비슷하다는 건 아니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는 로테르담에 사는 폴란드 청년이 갑자기 한국에 있는 카페에 전화를 건다는 내용입니다. 폴란드 청년에게는 한국과 관련된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분명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영화에 잠시 나오는 로테르담 장면은 김종관이 여행 도중 캠코더로 찍은 것이라고 하고요. 과거 여행에 대한 기억이 이유도 모른 채 외국 청년의 전화를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이국적 분위기를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드 피스가 되는 거죠.

본격적인 첫 번째 이야기인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지만 갑자기 여자 후배의 구애를 받는 만화가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처음에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같은 예쁘장한 연애 이야기처럼 시작하다 딱 하는 순간 갑자기 에로틱한 19금 영화로 전환합니다. 이 구성은 재미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외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김종관이 언제나 예쁘고 말랑말랑한 영화만 만들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의 이와이 슈운지'라는 홍보문구가 사실을 흐려서 그렇지.

세 번째 에피소드는 스모키 화장을 한 정유미가 옛날 남자친구인 윤계상을 스토킹한다는 호러물입니다. 장르 호러는 아니지만 적어도 윤계상 캐릭터에겐 호러겠죠. 이번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작정하고 엉뚱한 카리스마를 날리는 정유미가 어설픈 희생자로 찍힌 윤계상을 가차없이 고문하는 걸 구경하는 건 그냥 재미있습니다. 완벽한 기승전결의 구조와 적절한 반전 때문에 가장 독립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만화가 청년은 집에 돌아온 남자친구에게 결별 선언을 하고, 관객들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이별을 실시간으로 봐야 합니다. 여기서 성적 지향성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흠, 제 의견을 말하자면, 만화가 청년은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닙니다. 그냥 줏대가 없고 남에게 잘 말려드는 거죠. 상대방이 잘 구슬린다면 이 친구는 고질라나 전봇대와도 잘 거예요.

다섯 번째 에피소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밝습니다. 아직은 애인 사이가 아닌 두 음악가가 남산 부근을 산책하며 사랑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죠.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위태롭게 흔들리며 새로운 단계로 갈 수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 그렇게 될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에피소드는 이들의 거리 공연으로 끝나는데, 공연 도중 앞의 주인공들의 후일담이나 숨겨진 관계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의 단편들은 모두 독립적인 가치를 가진 작품들이고 그 중 몇 개는 아주 좋습니다. 단지 전 구성이 조금 불만이에요. 특히 두 번째와 네 번째 에피소드는 독립적으로 상영된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옴니버스의 형식에서는 지나치게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작품이 분위기를 유도하는 프롤로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의 절반을 먹고 있는 거죠. 균형이 맞으려면 교향곡의 스케르초 악장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들어가거나, 가지치기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10/10/28)

★★★

기타등등
폴란드 청년의 여자친구 이름은 자막에 안나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아냐가 아니던가요. 제 귀에는 그렇게 들렸는데.


감독: 김종관, 출연: 정유미, 윤계상, 오창석, 장서원, 김효서, 요조, 윤희서, 다른 제목: Come. Closer

IMDb http://www.imdb.com/title/tt215532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054

    • 포스터보고 안 보려고했는데 리뷰 읽어보니 재밌겠네요 봐야겠어요
    • 전 달달한 아와이 슈운지로 착각하고 친구를 꼬득였다가 호탕하게 웃으며 나왔어요. 정유미 씨 보러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여배우들 모두 옆모습이 기가 막히게 예쁘던데요. 안야(제귀에는 이렇게 들렸어요) Anna 폴란드어로 읽을 때는 '안야'인가보군. 이렇게 생각했어요.
    • 이와이 슈운지도 그렇게 달달한 영화만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영화'가 '진짜' '장편영화'와 구분된다고,
      또는 구분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진짜' 장편이 아닌 단편과 장편의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하기 어렵고요.

      '조금만 더 가까이'는 단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위해
      옴니버스 '형식'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봅니다.
      이번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을 선택한 것이고
      장편의 전체흐름에 그 형식이 철저히 복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홍상수, 프랑소와 오종, 에릭 로메르의 몇몇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 아뇨, 원래 김종관은 따로 장편용 시나리오를 계속 다듬고 있었거든요. 그 영화가 아니었어요.
    • '원래 김종관은 따로 장편용 시나리오를 계속 다듬고 있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과
      '조금만 더 가까이' 가 '진짜 장편과 단편 시절 사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적인 작품' 이라는 듀나님의 의견이 어떻게 '아뇨'라는 말씀으로 연결이 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 말은 '조금만 더 가까이' 는 과도기적 작품이 아니라 이것 또한 (옴니버스 형식을 사용한) 그냥 '진짜 장편' 이라는 이야기였는데요.
    • 김종관은 지금까지 장편을 시도해왔고 장편과 단편의 언어는 전혀 다르죠.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인데, 조금만 더 가까이는 여전히 단편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작품이죠. 각각의 스토리 전개나 구성도 그렇고. 나쁘다, 좋다는 건 아니에요. 전과는 많이 다른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지금 낸 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 이 영화 보면서 나중에 누군가가 '정유미 플레이어' 같은 걸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집착에 쩐 은희가 내뱉는 말들이 재미있었네요. 사실적이기도 하고. 그리고 네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그 만화가가 꿈틀한 지렁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상처받았을 상대방 쪽을 생각하니 기분이 복잡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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