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Godzilla (2014)


[고질라]의 두 번째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나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죠. 하지만 [몬스터즈]의 가렛 에드워즈가 감독직을 맡았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궁금해졌습니다. 평범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갑자기 신데렐라 스토리가 된 것이죠. 걱정도 되었습니다. 극저예산으로 만든 전작에서 재능처럼 보이는 걸 보여 준 감독이 제대로 된 실력을 과시할 무대로 [고질라] 리메이크가 과연 어울릴까. 의외로 괜찮은 예고편들이 연달아 나오는 동안에도 그 걱정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며칠 전에 영화를 보았는데, 오묘했습니다. 심지어 과연 제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는지, 재미없게 보았는지 확신이 안 설 정도. 분명한 단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역시 마찬가지로 분명한 장점처럼 보이는 것들과 섞여 있는데, 과연 그것들이 분명하긴 한 건지도 확신이 안 설 정도였죠. 하지만 가렛 에드워즈가 이 영화에서 기가 죽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간 건 확실했습니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만든 이전 리메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는 영화입니다. 에머리히의 [고질라]는 전형적인 괴물 때려 잡는 영화였죠. 바다에서 올라온 거대한 파충류라는 기본 개념만 남겨놓고 완전히 할리우드식으로 만든 영화였고요. 하지만 에드워즈의 [고질라]는 아무리 비과학적이고 유치해보여도 에머리히가 버렸던 원작 시리즈의 개념과 디자인을 버리지 않습니다. 종종 재해석을 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원본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을 남겨놓죠. 이게 에드워즈가 들어와서 이렇게 된 것인지, 원래부터 방향이 이랬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과 고질라의 관계입니다. 보통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괴물과 인간은 따로 놉니다. 고질라와 무토라는 두 괴물 때문에 인간들이 굉장히 많이 죽고 다치긴 하는데, 정작 이 괴물들은 인간에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괴물들을 죽이는 것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바쁘고 괴물들은 밑에서 신경을 쓰거나 말거나 교미하고 번식하고 사냥을 합니다. 그래도 연관성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작가들이나 관객들은 이 두 괴물의 편을 가르고 자신의 소망을 투영하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영화는 인간들을 아주 가볍게 다룹니다. 캐스팅된 배우들은 쟁쟁하지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거의 소모품입니다. 오히려 유명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일수록 더 그렇지요. 한참 시간이 흐르다가 주인공 자리를 물려받는 아론 테일러-존슨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존재감이 약하고요. 그 때문에 관객들은 이들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스필버그의 작품들과 비교하고 감독 자신도 인정합니다. 괴물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감질나게 뜸을 들이는 테크닉은 거의 [죠스]를 교과서 삼고 있지요. 하지만 스필버그 영화들과 이 영화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스필버그는 언제나 인간을 중심에 놓고 그를 중심으로 서스펜스를 전개시키죠. 주인공이 살아남느냐, 살아남지 못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고요. 하지만 가렛 에드워즈의 영화에서 인간 캐릭터들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숨어 있던 괴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영화적 리듬이 더 중요하지요. 여기엔 꼭 괴물이 나올 필요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서서히 떨어지는 낙하산을 구경하도록 관객들을 유도하면서 그 낙하산을 떨어뜨린 전투기의 추락 장면도 같은 테크닉을 쓰고 있지요. 영화 전체가 리드미컬한 스트립티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공했는지에 대해 확신을 못합니다. 그럭저럭 확신할 수 있는 건 실패한 것처럼 보여질 수 있는 상당 부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고 오히려 관객들이 실망한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는 거죠. 말이 괴상하게 꼬이긴 하는데, 그래도 무슨 뜻인지는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처럼 그렇게 꼬지 않고 그냥 좋은 부분도 많죠. (14/05/19)

★★★

기타등등
중간에 주인공이 고래 관광 회사 보트를 타고 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회사 이름이 'Go Whales Tours'인 건 일본어를 모르는 저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말장난이죠.


감독: Gareth Edwards, 출연: Aaron Taylor-Johnson, Ken Watanabe, Bryan Cranston, Elizabeth Olsen, Sally Hawkins, Juliette Binoche, David Strathairn

IMDb http://www.imdb.com/title/tt083138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987

    •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이 좋긴 했지만 전 팬이라 그런가 좀 더 개성 있는 음악을 기대했었는데 정통으로 갔더라구요. 저도 영화 좋게 보긴 했는데 헷갈려서 한번 더 봐야 판단이 서겠어요 ㅋㅋ
    • Go Whales Tours는 뭐 말씀 하시는건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 고지라(ゴジラ)는 두 개의 낱말의 합성어이다: 고릴라를 뜻하는 일본어의 영어 낱말 고리라(ゴリラ)와, 고래를 뜻하는 일본어 낱말 쿠지라(クジラ, 鯨).
        • 감사합니다 듀나님~
    • 아...그게 말장난이구나..ㅋㅋㅋ 역시 듀나님...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구나... 근데 킹스맨은 리뷰가 없네요.. 얘기할 가치도 없으신가보다 ... 저도 영화 보는 내내 이생각뿐.. 아..킹스맨은..
      자신들을 신사의 나라라고 말해놓고.... 이젠 대놓고 그래 우린 신사야...그런데..매너가 없는 것들에겐 아주 잔인하지.. 그리고 우린 젠틀맨이지만.. 상황에따라 아주 무례하지.. ㅎㅎㅎ 하긴 이것 외에는 할말이 없겠죠? 이런 말 조차도 가치가 없는건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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