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민란의 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는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이 만든 첫 번째 사극입니다.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요. 19세기 말 조선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지리산 추설이라는 도둑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당시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에서 몇 가지 관심이 가는 세부묘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예를 들어 도둑들의 브레인 중 한 명인 승려 땡추를 통해 불교와의 연관성을 암시한 것이라든지. 하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는 철종 때로 잡고 있는 구체적인 시대 배경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도둑들이라고 해도 통해요. 심지어 꼭 조선일 필요도 없죠.

익숙한 [로빈 후드]식 의적 이야기의 전통을 따르는 영화입니다. 대부호의 서자인 조윤은 양민들을 수탈하는 악당입니다. 쌍칼 도치는 그런 조윤에게 자객으로 고용되었다가 오히려 원수가 된 백정 출신이고요. 영화 절반 정도는 이들의 악연을 다루고, 나머지 절반은 추설의 일원이 된 도치가 조윤에게 복수를 하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지 처음엔 사사로운 복수였던 것이 의적질과 결합되다보니 나중엔 조금 더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 정도면 꽤 진지하게 들리는데, 그렇게까지 단도직입적인 사극은 아닙니다. 인물들은 특별히 농담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성우 정유미가 읊는 내레이션은 척 봐도 당시가 아니라 21세기에 속해있지요. 농담의 강도를 낮춘 고우영 만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영화 자체도 스파게티 웨스턴을 패러디하는 타란티노 정도의 겹을 통해 전달됩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장르는 무협보다는 서부극에 가까워요. 막판에는 오로지 스파게티 웨스턴의 우주에서만 가능한 일도 일어납니다. 당연히 고증은 무시하고 있고.

앞의 줄거리 요약만 읽어도 짐작하시겠지만 영화의 구성은 위태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당연히 두 번째 파트가 더 길어야죠. 감독 자신도 인정했지만 [군도: 민란의 시대]의 이야기는 137분의 극장용 영화보다는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가 더 어울립니다. 나오는 캐릭터와 사건들, 시대 묘사, 주제를 다 담으려면 두 시간 정도론 한참 모자라요. 그 때문에 영화는 종종 미니 시리즈의 다이제스트처럼 보입니다.

캐릭터들은 아쉽습니다. 모두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배우들도 능구렁이 같아서 이들에게 조금 시간을 더 주면 온갖 이야기들이 알아서 만들어질 것 같죠. 도치의 경우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비중이 의외로 작다는 느낌인데, 저런 구조라면 배우와 캐릭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그런 인상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가장 확신이 안 서는 캐릭터와 배우는 조윤과 그를 연기한 강동원입니다. 둘 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조윤은 계급사회의 서자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낸 악당입니다. 사연도 많고요. 강동원도 '스타 강동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백 퍼센트 활용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강동원의 존재가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에 그렇게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특히 후반에 나오는 '엘라스틴' 장면에선 '흩어지면 도둑, 뭉치면 백성'이라는 주제 따윈 그냥 날아가버리죠. 그냥 '강동원 엘라스틴'인 겁니다. 배우나 팬은 손해보는 게 전혀 없지만, 그래도 전 보다 현실적인 배우가 보다 현실적인 악당으로 조윤을 연기하는 게 영화에 더 도움이 되었을 거 같습니다.

재미있는 영화이고 배우 보는 재미도 많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암만 봐도 내용과 길이가 서로를 돕질 않습니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단점 대부분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요. (14/07/16)

★★★

기타등등
추설에 대해 언급하는 책 중 가장 유명한 건 [백범일지]. 이 영화도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습니다만.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정만식, 김성균, 김재영, 이경영, 송영창, 김해숙, 한예리, 박명신, 강현중, 주영호, 우정국. 다른 제목: KUNDO : Age of the Rampant

IMDb http://www.imdb.com/title/tt297248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752

    • 별 셋! 그래도 선방한것 같아 다행이네요. 시사회하고 평이 그리 좋지 않은것같아 약간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에요. 배우들 보는 재미가 있다니 무척 기대됩니다.
    • "감독 자신도 인정했지만 [군도: 민간의 시대]의 이야기는" → 민란의 시대를 민간의 시대로 쓰셨네요.
    • 윤종빈 영화였군요.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 타란티노의 영향을 많이 받은거 같단 평을 몇 군데서 듣고 보러 갔는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아쉽지는 않겠더군요.
    • 강동원은 늘 좋은 역에서도 좋은 영화에서도 살짝 떠서 가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더라구요. 100% 싱크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 아마 힘이 너무 들어갔거나 힘이 덜 들어간 게 아닐까(저는 전자에 한 표)하는 멋대로 상상을 함 해봅니다. 그리고 전 이 영화가 그닥 매력이 없었습니다. 하정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이제까지 하정우 영화들은 영화와는 별개로 늘 하정우때문에 매력이 덕지 덕지였거든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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