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둑 The Babadook (2014)


제니퍼 켄트의 [바바둑]은 드물게 만나는 여성감독의 호러물입니다. 보면서 이런 작품들이 조금 더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성감독에게 이런 소재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래도 이 장르에 여성이 조금 더 많이 들어와야 관심사에 따른 소재 폭이 넓어지고 안 쓰는 근육들도 찾아낼 수 있다는 거죠. 호러 문학의 여성 진출 비중을 생각하면 호러 영화 분야는 성차가 지나치게 남성에게 치우친 구석이 있고 이는 결국 장르 소비자에게 손해입니다.

바바둑은 그림책에 나오는 괴물입니다. 일종의 부기맨이죠. 검은 외투를 입고 검은 모자를 쓴 무시무시한 악마. 섬뜩하지만 전형적이죠. 주인공 아멜리아가 처음 [미스터 바바둑]이라는 팝업북을 꺼내 아들 사무엘에게 읽어줄 때 관객들은 거의 편안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애들에게 읽어줄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미 저런 책이 어딘가에 있을 거 같아요. 이미 우리의 악몽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는 괴물인 겁니다.

[바바둑]에서 가장 무서운 건 이 괴물이 무작정 멀쩡한 사람을 공격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멜리아의 삶은 바바둑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곪아오고 있었어요. 남편이 죽은 뒤로 양로원에 다니며 간신히 외동아들 사무엘을 키워오고 있는데 아이는 괴물을 본다는 환상에 빠져 말썽만 일으키고 있죠. 전 영화 속 아이들의 짜증나는 행동엔 비교적 관대한 편인데 사무엘이 하는 짓을 보면 진짜로 끔찍합니다. 그런 아이를 키운다는 설정 자체가 공포인 거죠. 그렇다고 아이를 내칠 수도 없어요. 아멜리아야 엄마니까 당연히 못 그러고, 관객들도 그 아이가 겪는 공포와 고통을 모르지 않거든요. 이중으로 짜증나는 상황인 겁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진짜로 몸이 아플 정도로.

아이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간신히 잡은 직장도 위태위태하고 수면 부족에 악몽에 짜증에... 이렇게 잔뜩 망가진 아멜리아의 머릿속으로 바바둑이 들어옵니다. 끔찍한 책이라며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게 더 끔찍한 내용이 추가되어 현관 앞으로 돌아왔지요. 기르는 개도 죽이고, 네 아들도 죽이고, 너도 죽이겠다면서요. 물론 무서워요. 하지만 이게 아멜리아에게 하나의 해결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지 않습니까.

이 뒤에 벌어지는 공포는 전형적이면서 비전형적입니다. 부기맨 이야기에 나오는 온갖 끔찍한 레파토리가 나오는 건 전형적이에요. 하지만 그게 전개되는 방식은 묘하게 비전형적입니다. 거의 [나 홀로 집에]를 연상시키는 엇박자의 유머가 섞여 있고 리듬과 타이밍이 기존 호러 영화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요. 그 때문에 모든 것들이 표면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에 와서도 이상하고 낯선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주 불안한 것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것도 아닌 오묘하게 미완성인 상태. 하긴 우린 원래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이을 용기와 힘을 되찾아도 상처는 늘 밑에 남아있기 마련이지요. (14/07/23)

★★★☆

기타등등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봤는데 무성의한 레터박스 때문에 암부가 많이 죽더군요. 영화관의 존재 이유 자체를 스스로 목졸라 죽이고 있는 꼴을 보면 기가 찰 뿐입니다. 이것도 호러라면 호러죠. 영화 보는 데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감독: Jennifer Kent, 출연: Essie Davis, Noah Wiseman, Tim Purcell, Benjamin Winspear, Cathy Adamek, Hayley McElhinney, 다른 제목:

IMDb http://www.imdb.com/title/tt232154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9289

    • 작년 여름에 나온 일본 드라마가 떠올랐어요. 남편이 전차 사고로 죽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하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 눈이 하나에 손톱이 아주 긴 손을 한 우기쿳쿠라는 괴물이 나오죠. 병원 지하에 살면서 어린아이의 영혼을 먹어요. 주인공은 그게 정말로 너무 무서워서 입원해 있던 엄마의 병문안을 가지 않았고, 그게 엄마와의 관계에 구멍을 만들죠. 물론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여덟 살 이후로는 엄마를 못 보고 살게 되고요. 지금은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밤이며 낮이며 일만 하며 사는데, 그 현실적인 고통이 화면 밖으로 처절하게 전달돼요. 이 주인공에게 우기쿳쿠가 다시 등장하는 시기가 오는데(아이가 동화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고, 곧이어 무서운 일이 닥치죠. 호러가 아닌 현실이고 주인공의 연기뿐만 아니라 외모 덕에 더 실감이 나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더 용감해져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는 주인공이 그려져요.
      • 미츠시마 히카리가 나오는 [우먼]이군요. 저도 [그래도 살아간다] 때 부터 미츠시마 히카리의 팬이어서 봤습니다. 팬심이 없었다면 결코 못봤을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ㅜ.ㅜ
        • 네. 스포일러라고 지적받을까 봐 제목을 일부러 적지 않았지만요. 정말 보기에도 고통스럽죠. 그래도, 살아간다보다 보는 데 에너지가 더 많이 든 건 아이들이 있어서였을까요? 미츠시마 히카리의 작은 얼굴과 커다란 눈, 앙상한 몸은 사카모토 유지 작품 속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꼭 맞아서 자주 마주하기 힘겨웠어요. 1화의 유모차 장면에서 벌써, 아 이번엔 못 보겠다 했는데, 작가를 향한 팬심과 배우들에 대한 믿음으로 견뎠고 보람도 있었죠.
    • 이 영화 보면서 딱 듀나님이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호러가 시작되는 부분보다 앞부분 드라마가 진짜 보기 힘들었습니다. 가슴에 돌덩이 얹은 기분으로 쳐다봤네요. 배우들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여성 감독의 호러가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
    • 아이가 내칠 수도 없어요 --> 아이를 내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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