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야심이 큰 부분은 바로 그 진부함입니다. [인터스텔라]는 우주여행을 다룬 가장 뻔한 이야기를 일부러 골라 그린 영화입니다. 용감한 미국인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머나먼 우주로 간다! 개척정신! 파이널 프론티어! 단지 조건이 있죠. 이전 영화에서는 대충 넘겼던 과학 묘사와 같은 것들을 현대 과학 지식에 맞추어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요.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근미래가 배경입니다. 병충해와 공해로 식량란이 끔찍해져 지구엔 억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지구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을 위한 식량 재배입니다. 주인공인 쿠퍼는 나사 비행사였다가 억지로 끌려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딸 머피의 방에서 일어난 신비스러운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남긴 메시지를 추적하다가 나사의 비밀 기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나사에서는 토성에서 발견된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에 있는 태양계에 우주인들을 보내고 있었고, 쿠퍼는 엉겁결에 다음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선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웜홀 저편으로 날아갑니다.

아까도 말했지 않습니까. 익숙한 이야기라고. 여기서 익숙함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우주여행을 다룬 수많은 고전 영화나 소설들에서 굵직한 원형들만을 골라 가져오고 있습니다. 클라크, 블리시, 하인라인, 홀드먼... 영향을 준 작가들의 리스트는 끝도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갔던 길을 거의 정확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크리스토퍼 놀란식으로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입니다. 모놀리스처럼 네모나게 생겼지만 HAL 9000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우주선 로봇 TARS와 CASE 같은 건 작정하고 만든 오마주죠.

골수 큐브릭 팬들은 항의하겠지만, [인터스텔라]는 한 부분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보다 월등하게 낫습니다. 큐브릭은 주인공이 모놀리스를 통과한 뒤로는 철저하게 불가지론에 기대고 있었죠. 그 뒤에 이어진 건 과학적 묘사가 아니라 그냥 사이키델릭한 불꽃놀이였습니다. 하지만 놀란은 그가 수집한 과학지식과 추론에 바탕을 둔 순수한 SF적 묘사로 우주 여행을 묘사합니다. 웜홀, 블랙홀,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운동 모두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려 하고 있죠. 적어도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는요.

작년에 나온 [그래비티]와도 비교될 수 있을 텐데, [인터스텔라]는 SF 영화로만 보았을 때 [그래비티]를 능가합니다. 사실 [그래비티]는 보통 SF 소재로 다루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SF라기보다는 우주를 무대로 한 재난 액션물에 가까웠죠.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미지의 영역을 그리는 SF로서 [인터스텔라]는 더 많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SF로서 [인터스텔라]는 엄청난 구경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잔뜩 갖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죠. 종종 쉬면서 설정을 꼼꼼하게 설명하면 어땠을까, 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반부의 무대가 되는 태양계의 묘사가 더 상세했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설명을 떠나 묘사는 압도적입니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접고 딱 하나만 이야기하죠. 여러분은 이 영화에서 역사상 가장 정확한 블랙홀 묘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이 다들 그렇다니까 믿어야죠. [인터스텔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구경 한 번 잘 했네" 영화입니다. 물론 우린 이 구경이 최적화된 70밀리 필름 아이맥스 영화는 볼 수 없습니다만.

그에 비하면 인간 묘사는 많이 덜컹거립니다. 일단 천문학과 물리학적 추론에 비해 사회학적 추론은 좀 약해보입니다. 그 정도 식량란이라면 사람들이 재난을 그렇게 평화롭게만 맞았을 거 같지는 않거든요. 전 백인남자, 흑인남자, 백인여자 등으로 대충 구색 맞춘 팀을 짜놓고 재미있는 건 다 백인남자인 주인공에게만 던져 주는 스토리 구조도 신경 쓰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주인공 쿠퍼와 주변 사람들을 그리는 멜로드라마의 결이 고르지 못하다는 것이겠죠. 너무 뻔뻔스럽고 투박해서 신파도 그런 신파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파는 그렇게까지 재미있는 신파도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인터스텔라]가 질퍽거리기만 하고 재미없는 영화냐. 그건 아닙니다. 발동이 걸리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압도적이고 거대한 영화예요. 신파도 그런 신파가 없다고 놀렸지만 그렇다고 그 신파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단 배우들이 좋고, 무시하기엔 그 감정들이 너무나도 원초적이죠. 블랙홀 때문에 상대성이론에 따른 쌍둥이 효과가 일어나는 우주에서 아버지가 딸이 늙어 죽기 전에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걸 탓할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곳곳에서 발견되는 단점들을 지적하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영화죠. [인터스텔라]는 [인셉션]처럼 완벽한 자기완결성을 갖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바로 그 불완전성 때문에 앞으로 더 활발하게 우리 주변을 맴돌 영화입니다. (14/10/30)

★★★☆

기타등등
1. 놀란의 남자 주인공들은 언제나 되어야 아내나 여자친구를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요샌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2. 유머가 없는 영화라고 소문이 도는데 정말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머가 부족한 사람들만 골라 나오는 건 맞아요. 하지만 로봇들은 농담꾼이죠. 결정적으로 상당히 굵직한 농담들이 설정에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사와 관련된 모든 설정은 농담이에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설마 그게 농담이 아닌 걸까요... 설마.


감독: Christopher Nolan, 배우: Matthew McConaughey, Anne Hathaway, Jessica Chastain, Michael Caine, John Lithgow, Topher Grace, Wes Bentley, Casey Affleck, Mackenzie Foy, Ellen Burstyn, David Gyasi, Bill Irwin

IMDb http://www.imdb.com/title/tt08166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5290

    • 리뷰 첫부분이 잘린건가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야심이 큰 부분은 바로 그 진부함입니다"로 시작하는게 먼가 어색해서요.. 아님 문단 순서가 바뀐건지..^^;;
    • 첫문단에 서술된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진부함을 이야기 앞에 배치하신 것 같네요. 그나저나 지난 작품인 닥나라는 그렇다치고 이번 작품은 진짜 별 반개가 아쉽군요.
    • 식량란 식량란 식량란...
    • 장면장면마다 기시감이 들었고 텍스트로만 접했던 웜홀과 블랙홀은 정확히 구현했다니 그런가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수학자까지 동원했다는 이것때문에 본거였는데 그냥 거대한 특수효과같더라고요.
      콘택트의 우주여행처럼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앤해서웨이의 사려깊고 과학자답지 않게 감정담아 호소하는 목소리는 우웩!!!!!!!!!!
      그래비티도 예상외였지만 인터스텔라도 비슷하게 상상밖입니다.
      점수를 준다면 긴 상영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았고 짧은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우주에의 지식을 다시 파보고 싶은 의욕이 들었다는 거죠.
      지구의 산, 바다같이 그냥 '자연'으로 취급하기에 우주는 너무나 크고 압도적이네요.

      건조한 우주영화를 찾아봐야겠어요.
    • 매튜는 콘택트에서는 사랑하는이를 그렇게 우주로 보내지 않으려 하더니....인터스텔라에서는 ㅋ
    • 기타등등 2가 정말 맘에 들어요. 나의 나사는 이러치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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