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럭이다 (1953)


[나는 트럭이다]는 김기영이 미공보원에서 일하던 시절에 뉴스 찍다가 남은 짜투리 필름으로 만든 19분짜리 문화영화입니다. 계속 볼 기회를 놓치다가 [하녀] 블루레이 부록으로 수록된 것을 이제야 봤죠.

제목의 '나'는 미군용 GMC 트럭입니다. 당시엔 군용트럭이 운행만료가 되면 그걸 비교적 싼 값으로 민간인에게 불하를 했는데, 영화는 군대에서 망가진 트럭이, 상이군인들이 일하는 트럭 재생 공장으로 들어가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재미있지만 평범한 소재인데, 김기영은 여기에 독특한 터치를 넣었습니다. 부서졌다가 재생되는 트럭의 1인칭을 시도한 것이죠. 미국 공장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죽을 것을 걱정하던 트럭이 재생 과정을 통해 새로 태어나 한국의 재건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이를 의도했는지, 나중에 내레이션을 넣을 때 그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자로 보기엔 일관성이 조금 없어요. 예를 들어 공장에서 일하는 상이군인들의 식사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트럭은 상이군인의 주머니 안에 들어간 자기 볼트를 통해 식당을 구경하는 무리수를 써야 합니다.

후자였다고 해도 [나는 트럭이다]는 촬영단계부터 김기영다운 기괴함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일단 주인공인 트럭부터 호러 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지옥의 괴물의 시체처럼 찍어놨으니까요. 주제만 보면 조국 재건에 이바지하는 상이군인들을 예찬하는 영화지만 일단 붙여놓으면 그 형식과 괴상하게 안 맞아요. 상이군인들의 노동보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죽은 괴물 같은 트럭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니까요. 어떻게 봐도 [프랑켄슈타인] 영화인 것이죠. 처음부터 트럭 일인칭을 생각하고 그렇게 찍었을 수도 있지만 전 후자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정상적인 내레이션이 붙었다면 더 기괴했을 작품이거든요. (14/12/30)

★★★

기타등등
이 영화를 보고 미공보원이 보내온 시놉시스들 중 하나를 골라 만든 반공 영화가 그의 첫 장편 [주검의 상자]입니다. 이 영화 역시 얼마 전에 필름이 발견되어 상영되었고 [하녀] 블루레이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운드가 소실된 상태죠. 더빙판을 만들어도 괜찮을 텐데 말입니다.


감독: 김기영, 다른 제목: I am a Truck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159

    • 헛, 이 영화를 보셨군요! 겉으로 보기엔 국가주의적인 "문화영화"이지만 참으로 괴이한 데가 있어서 기억하던 단편입니다. 그저그런 국가 재건 프로젝트 홍보용 선전 영화로 보기엔 뭔가 범상치 않은데가 있더라고요. 그냥 액면 그대로 상이군인들이 트럭을 재생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기엔 불편할 정도로 해체되어 재조립되는 기계의 모습들이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하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요.
    • 이거 보고싶네요. 하녀 블루레이를 살 이유가 또 늘었습니닿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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