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2015)


한글로 사도라고 쓰면 그 뜻은 使徒일 수도 있고 私道일 수도 있고 四道일 수도 있겠지만, 이준익의 신작 [사도]에서 사도는 생각할 사, 슬퍼할 도, 思悼입니다. 우리가 아는 사도세자 이야기죠. 영조가 뒤주 안에 가두어 죽인 정조 아빠. 수없이 극화된 사건이지만 우린 원래 같은 사건을 끊임없이 반복해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기억하죠.

영화는 굵직하고 빠르게 시작됩니다. 영화가 10분 정도 지났을까? 벌써 뒤주가 등장합니다. 사도세자가 뒤주 안에 들어가면서 첫 번째 회상이 시작되고 그 뒤로 영화는 사도세자의 시체가 뒤주 안에 들어가 있던 여드레 동안의 현재를 그리면서 그 안에 과거의 사건들을 끼워넣습니다. 이런 형식은 이야기에 추리물로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압축률이 상당히 높아서 여러 모로 효과적입니다.

영화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퓨전 사극'에서 벗어나 '정통사극'이 되려는 영화죠. 전 '정통사극'의 절대적 가치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정통 사극인 [리처드 2세]가 퓨전 사극인 [맥베스]보다 더 우월한 작품인가요? 하지만 영화가 이 정통성에 큰 의미를 두고 진지하게 추구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무리 정통사극이라고 해도 각자 자기만의 해석이 있기 마련입니다. 영화는 정치적인 해석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고 가족 드라마에 집중합니다. 여기에 약간의 현대적 터치가 들어가기도 해요. 이 영화의 영조는 마치 자식에게 지나친 기대를 품고 있는 강남 학부모처럼 보입니다. 둘 사이엔 실제로 문화적 연결성이 있으니 이 해석은 무리한 게 아니죠. 하여간 이 정련된 세계에서 보여지는 부자간의 갈등은 현대 관객들이 공감할 구석이 충분합니다. 이 묘사에 동원되는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단지 이 정통사극이 소재가 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올바르게 다루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이건 이야기가 사실과 일치하느냐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시죠. 사도세자 이야기는 너무 자주 반복되었기 때문에 종종 우린 그 사건이 얼마나 잔인무도했는지 잊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상자 안에 가두어 말려죽였어요. 아들과 아버지를 죽이는 아버지와 아들은 흔해빠졌습니다. 절대권력을 쥔 사람들은 상상을 넘어선 일들을 하기 마련이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이 잔혹행위는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대충 셋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아버지가 비정상적인 아들의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행위에 열받아 아들을 죽였다. 비정상적인 아버지가 정상적인 아들을 부당한 이유로 죽였다. 비정상적인 아버지가 그만큼이나 비정상적인 아들과 싸우다 죽였다. 다들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아버지가 정상적인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죠. 그것도 화가 나 칼로 찔러 죽인 것도 아니고 상자 속에 가두고 여드레 동안 아들이 죽어가는 걸 구경했습니다. 물론 한 나흘 정도 고생하다 죽었겠지만.

그런데 영화는 영조와 사도세자 모두를 정상화합니다. 다들 이해가 가는 사람들이에요. 아들에 지나치게 기대가 큰 아버지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러운 아들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만들어지죠.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뒤주까지는 안 갑니다. 그 사이에 뭔가가 빠진 거예요. 그 뭔가는 여러분의 역사 해석과 취향에 따라 뭐든지 될 수 있습니다. 당쟁이라거나, 정신병이라거나, 이 영화에 수상쩍을 정도로 조금 등장하는 시체들이라거나.

[사도]에서는 그 자리가 그냥 비어있습니다. 그냥 보편성에 호소하며 이해해달라고 하죠. 하지만 전 그게 안 됩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려는 사람들을 정상성의 기준에 맞추어 이해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설명되지 않는 빈 공간에서 끝나고 말죠. 그들의 행동과 동기는 그 설명 밖에 있는 비정상의 영역에 있는 게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설명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이는 역사와 맞지 않는 거짓말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적 논리와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의미로서의 거짓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도]가 영화에 넣은 온갖 설명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전 이 영화가 그냥 미완성작이라고 생각합니다. (15/09/05)

★★★

기타등등
1. 이번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한국 후보로 내보냈다는데, 글쎄요. 우리나라 관객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를 해석할 수 있는 코드북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 관객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나요? 물론 이건 우리의 기계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이 참혹한 이야기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먼저 생겨야 하겠지만.

2. 박소담이 노숙원으로 나옵니다. 얼마 전에 방영한 사도세자 소재 단막극 [붉은 달]에선 화완옹주였죠.

3. [한중록]이 이 이야기를 다룬 가장 인기있는 소스인 건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혜경궁 홍씨는 영조나 사도세자와는 달리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주인공이고 화자니까요.

4. 에필로그는 없는 게 나았습니다. 그리고 노역 분장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좋았을 거예요. 에필로그 파트에 나오는 환갑 분장한 문근영의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사실 임오화변 때 영조의 노역 분장도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쉬운 작업이 아니긴 하죠.

5. 여담인데 기자시사회 끝에 한 간담회에서 어떤 기자가 자긴 이 이야기를 어렸을 때 마가렛 드래블이 쓴 [붉은 왕세자비]를 통해 처음 접했다고 하더군요!


감독: 이준익, 배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진지희, 박소담, 서예지, 다른 제목: The Throne

IMDb http://www.imdb.com/title/tt401091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1922

    • 영화는 안 봤지만 듀나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뭔지는 알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까지는 이해(?)되는데 왜 하필 뒤주에 넣어서 말려죽이느냐... 이 잔혹성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거.
      개인적으로 조선왕조 잔혹사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만큼 참혹한 죽음이 사도세자와 영창대군이거든요.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동기는 알겠지만, 그 살인방법의 잔혹함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안 가요. 그들을 죽일 때 구태여 뒤주와 찜질방(;)까지 동원했어야 한 이유를 후련하게 풀어줄 이야기꾼의 출현을 기다려봅니다(...)
      •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서 죽인 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자신의 손자인 정조와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 등을 얽혀들게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정치적인 계산이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가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며 숱한 인명을 살상했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또한 주변의 대신이나 궁인들이 사도세자가 자신의 후계자라는 점을 두려워하여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은 것에도 분노하였습니다. 영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 수십년 재위 끝에 일구어 놓은 탕평정치로 대표되는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만한 유능한 후계자였는데, 일단 사도세자가 세자의 신분으로는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른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사도세자는 그럴만한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고, 이미 그때부터 자신의 아들 대신 손자를 후계자로 삼기로 결정한 듯 싶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조의 나이는 이미 70여세였으므로, 언제 죽을지 모를 고령이었습니다. 사도세자를 어설프게 벌을 줘서 살려둔다면 설사 세손이 자신의 뒤를 이어 즉위하더라도 사도세자가 정계에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세자를 죽이고자 생각한 것인데, 그렇다고 사도세자를 국법에 의거하여 처형하게 되면,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 또한 졸지에 죄인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니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지은 세손을 위해서라도 세도세자를 확실히 제거하되 그를 공식적인 죄인의 신분으로는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국법에 의거하지 않고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국법에는 사람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법이 없었으므로, 사도세자를 죽이되 국법에 없는 방식으로 죽여서 그를 공식적인 죄인으로 만들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영화를 집적 보지는 못했지만, 듀나님의 평을 보건데 영조의 이런 치밀하고 냉혹한 정치적 계산이 영화 속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듯 하군요.
        • 이 댓글이 임오화변에 대한 현재 역사학계의 정론을 잘 말해주고 있군요.

          지나치게 냉혹했던 왕, 지나치게 막장이었던 세자, 지나치게 영특했던 세손... 이들이 삼박자를 이루어 이 참극을 낳았던 것 같습니다.
    • 이해가 안 되는 처형방식이긴 하죠. 다만 이런 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층 이상은 대역죄인 아닌 이상 신체에 흠집을 내는 처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리는 게 사약인데, 사도세자가 사약 내린다고 얌전히 받아먹을 위인이 아니었단 얘기가 있습니다.
      사도세자 사이코패스설이야 익히 알려진대로고요...
      • 이 영화에도 이론적 기반은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도 사도세자의 살인 장면이 하나 정도는 나오는데,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죠.
    • [오타신고]
      영조가 뒤주 안에 가두어 정조 아빠. : 가두어 죽인

      각자의 자기만의 해석 : 각자 자기만의

      비정상적인 아버지가 정상적인 아들을 부당한 이유로 죽였다, : .

      간담회에서 어떤 기자가. 자긴 이 이야기를 : ,
    • 박소담이라니... 봐야겠군요.
    • 넘겨짚은 것이긴 하지만 추석용 영화라면 정신나간 아버지나 정신나간 아들이 나오는 것보다 둘다 정신줄 붙들고 있는 게 관객 상대하기는 좋겠지요.
    • 더 보고싶네요.
      비정상적인 이야기를 어떻게든 정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리려고 했다니 갑자기 기대가 되네요.
    • 사도세자 이야기가 음험한 음모론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최근에 가장 기여한 작품이 소설 영원한 제국이죠. 미치광이 왕세자에서 보수세력에 저항해 왕권을 강화하려하다 정쟁에 의해 살해당한 왕세자라는 타이틀로 되살아 나더니 온갖 퓨전사극에서 이 코드가 거의 안 빠지고 나오죠. 항상 악역은 노론이어야 하고요. 최근에는 뱀파이어하고도 싸우는 사도세자까지 나왔으니... 웹툰 베끼기만 하고 진짜 사극작가는 다 어디로.

      그 내부적 이데올로기는 어떤 음모속에서도 정권과 실세는 보수파가 잡아야 한다가 되어버리죠. 이런 정권내부의 권력투쟁에서는 혁명을 꿈꾸는 민초는 사라져 버렸어요.
    • 듀나님 평을 읽고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았어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건 정상에서 많이 벗어난 일이지만, 왕이 세손에게 왕위를 넘기려면 기대를 저버린 세자를 죽이는 선택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듀나 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빠져도 뭔가 왕창 빠진 느낌. 짜장면에 짜장을 반도 안 준 느낌이랄까요? ( 12세 관람가로 만들어서 그런가요?) 부자 갈등 과정이 비약으로 느껴지고 사도세자가 왜 저리 비뚤어지고 타락 하게 되는지 감정 이입이 전혀 안되더군요..
    • 박소담은 노숙원이 아니고 문소원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옹주 둘 낳고 숙원까지 올라가지만 성은 문씨가 맞아요.
    • 익히 아는 사건인데 새삼 흥미롭네요. 사도세자의 정신적 문제도 미처 생각 못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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