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Ferrari (2023)


마이클 만의 [페라리]는 영어권 할리우드 배우들이 가짜 이탈리아 억양의 영어를 쓰면서 이탈리아 사람인 척하는 영화입니다. 역시 애덤 드라이버가 나왔던 실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가 그랬던 것처럼요. 여기에 대해 뭐할 생각은 없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탈리아 영화에서도 배우의 국적과 언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 사람들은 대부분 더빙으로 볼 거고.

당연히 엔초 페라리에 대한 영화입니다. 원작이 된 논픽션 책이 있고요. 하지만 영화는 엔초 페라리의 인생 전체를 다루지도 않고, 이 사람의 가장 큰 성취를 다루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1957년의 몇 달 간을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는 페라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도 아니고 가장 큰 업적을 쌓은 시기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최악의 시기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어요. 일단 혼외관계로 아들이 생겼다는 걸 사업 파트너인 아내가 알아버렸습니다. 돈은 언제나처럼 부족하고요. 드라이버들은 죽어나가고요. 아, 얼마 전에 아들이 불치병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후반에 나오는 자동차 경기는 이 스포츠 역사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저도 알 정도. 물론 전 대충만 알고 있어서 그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주기 전엔 몰랐어요.

그러니까 업적보다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리는 엔초는 그렇게까지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닙니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도취적이죠. 이런 성향이 페라리라는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위대함을 그렇게까지 공들여 보여주지는 않는 걸요. 그러니까 결점이 더 많이 보입니다. 물론 성격적 결점은 드라마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재료입니다. 단지 영화에서는 엔초보다는 아내 라우라가 더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비교적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애덤 드라이버보다 페넬로페 크루스가 더 눈에 뜨이는 연기를 보여주고요. 보다보면 라우라 입장에서 이탈리아 남자놈들을 욕하게 됩니다.

만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페라리]도 조금 독특한 영역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프로패셔널한 남자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영역은 꼭 생산적일 필요는 없지요. 예를 들어 [히트]의 은행강도질은 특별히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페라리]의 자동차 경주가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세상엔 늘 전위에 서서 위험한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냥 그런 것입니다. (25/01/18)

★★★

기타등등
1. 원래 그 날은 [하얼빈]을 보려고 극장에 갔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매한 날이 그 다음날이더군요. 상영 15분전인가에 4DX로 보았습니다.

2. 각본가인 트로이 케네디 마틴은 2009년에 사망했습니다.


감독: Michael Mann, 출연: Adam Driver, Penélope Cruz, Shailene Woodley, Sarah Gadon, Gabriel Leone, Jack O'Connell, Patrick Dempsey, 다른 제목:

IMDb https://www.imdb.com/title/tt3758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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