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넷 Hamnet (2025)

[햄넷]을 보았습니다. 클로에 자오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북아일랜드 작가 매기 오패럴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각색에는 원작자가 참여했습니다.
햄넷은 셰익스피어의 아들 이름입니다. 이 사람과 아내 앤 해서웨이 사이엔 아이가 셋 있었습니다.
수재나, 햄넷, 주디스. 뒤의 두 아이는 쌍둥이였습니다. 딸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햄넷은 11살 때 죽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자기 사생활 이야기를 거의 안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 개인적
비극이 이 사람의 이후 작품들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가장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건 [십이야]입니다. 일단 이란성 쌍둥이가 주인공입니다. 둘은 폭풍우로 헤어졌고 서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연극 후반에 재회합니다. 시기도 맞습니다. 햄넷이 죽고 그 직후에 나왔으니까요. 셰익스피어가 비교적
융통성있게 이야기를 손 볼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쌍둥이 남매를 이용한 코미디 설정은 셰익스피어 이전에도
있었지만 아들의 죽음 때문에 그 기성품 소재에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것은 몇 년 뒤에 나온 [햄릿]입니다. 일단 아들의 이름과 어원이 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아들의 죽음이 그 때까지 코미디를 주로 썼던 작가에게 위대한 비극의 시기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면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단지 [십이야]와는 달리 [햄릿]은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지 않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전기적 사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동시에 그 빈 공간을 융통성 있게
이용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아내 아녜스(앤이 이 이름으로 기록된
문서가 존재합니다)입니다. 영화는 이 사람을 약초전문가로 설정합니다. 아녜스는 동네
라틴어 교사였던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지고 아녜스가 첫 딸 수재나를 임신하자 결혼합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나이가
꽤 많았다는 설정은 무시됩니다. 원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건 런던으로
가 배우와 극작가로 활동했던 남편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우던 아녜스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햄넷은 영화 중반 이후에 죽습니다. 당연하죠. 영화의 중후반은 아이를 잃은 부부의 고통과 애도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그 애도의 행위는 [햄릿]의 공연으로 완성됩니다. 작가이기도 한 남편은 햄릿 선왕으로 무대에 서고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아내는 관객석에 있습니다.
[햄릿]과 햄넷을 엮는 건 가능할까요? 앞에서 말했지만 아귀가 아주 잘 맞지 않습니다. 일단 이 연극엔 아들의 죽음 자체가
나오지 않습니다. 햄릿은 연극 끝에 죽지만 거트루드가 이미 죽은 뒤니까요. 애도는 등장하지만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햄릿의 유명한 '죽느냐 사느냐' 독백과 아들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고 작가 자신의 자살 욕구를 반영했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좀 애매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일단 그 둘을 엮습니다. 완벽한 게임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래도 일단 엮은 거죠.
그리고 그 게임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보다는 말이 됩니다. 셰익스피어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재조립해 [햄릿]을 만들려는 곡예는 부리지 않으니까요. 대신 영화는 그 느슨한 연결성을 보여주느라
좀 설명이 많습니다. "저 연극이 내 아들과 무슨 상관이야!"를 외치던 아녜스가 선왕으로 분장한
남편을 보고 "아들과 자리를 바꾼 것이다"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요. 시체관극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연뮤덕은 아녜스에 질색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시절 관객들은 시체관극
따위는 몰랐습니다.
전 초반엔 이 덜컹거림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보다보니 그냥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시 버클리가 그냥 받아들이라고 하니까요.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그 덜컹거림을
벗어나자 영화는 연극이라는 예술이 관객들에게 끼치는 힘을 강렬하고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여전히 아귀는 아주 맞지 않는데, 끝날 무렵엔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악의를 담아 평가한다면 '쥐어짠다'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설정은
쥐어짠 것 같고 영화에 흐르는 감정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린 멜로드라마를 보러 극장에
온 것이 아니었나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와 연기가 흘러갈 거라는 걸 모르고 온 관객들이
있었나요. 그리고 그 멜로드라마를 지탱하는 감정이 가짜였나요.
(26/02/28)
★★★☆
기타등등
햄넷을 연기한 제이코비 주프는 무대에서 햄릿을 연기한 노아 주프의 동생입니다. 두 사람의 가족유사성은 강렬한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제이코비는 좀 오슨 웰스와 닮지 않았나요.
2. 전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사랑받고 있었을 거예요.
감독: Chloé Zhao, 출연:
Jessie Buckley,
Paul Mescal,
Emily Watson,
Joe Alwyn,
IMDb https://www.imdb.com/title/tt14905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