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애프터 Hereafter (2010)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히어애프터]에서 각기 다른 나라에 사는 전혀 다른 세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인물은 마리라는 프랑스의 방송 저널리스트로, 인도네시아 츠나미 때 임사체험을 경험한 뒤부터 사후세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인물은 마커스라는 영국인 소년으로, 사고로 쌍둥이 형제를 잃은 뒤부터 그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인물은 조지라는 미국인 영매로, 고통만 안겨주는 자신의 재능을 묻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러닝 타임 대부분 동안 따로 진행되다가 영화 후반에 합쳐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왜 갑자기 이스트우드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이 양반도 나이를 먹으니 사후세계가 궁금한가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자막이 올라갈 때 보니,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사람은 [더 퀸]과 [프로스트/닉슨]의 피터 모건이더란 말입니다. 궁금해졌습니다. 모건의 평상시 소재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검색해보니, 계기가 있기는 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모건은 [Before I Say Goodbye]라는 논픽션을 읽고 감명을 받아 이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역시 또 검색해봤는데, 그가 언급하고 있는 책은 1997년에 유방암으로 죽은 영국인 저널리스트 루스 피카디의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피카디의 사후, 남편과 언니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동생이 죽은 뒤에도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언니의 관점이 모건의 각본에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어애프터]는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을 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긴 모건 자신도 사후세계를 믿거나 하지는 않는다는군요. 영화는 우선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에요. 그렇다고 영매들을 다 믿는 것도 아니고요. 영화는 조지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무엇일까요. 진짜 영매일지도 몰라요. 아니면 초자연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잘 읽는 것일 수도 있고. 제임스 랜디를 찾아가 테스트를 받으면 조금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초능력자들은 그런 짓은 안 하죠. 아마 그 세계엔 제임스 랜디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질문 자체의 의미보다는 질문을 품은 사람들의 여정이 더 중요하지요. 어차피 이들의 질문이란 제한되어 있고 얻을 수 있는 답이란 것도 뻔하니, 정보만 챙기려 한다면 실망하게 됩니다. 중요한 건 이 질문이 그들에게 가진 개인적인 의미와 그 추구 과정의 정서적 울림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죠. 너무 타협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그냥 성숙한 이야기라고 여기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이스트우드는 스필버그가 데려 온 고용감독이지만, 그의 접근법은 영화에 잘 맞습니다. 그는 피터 모건의 각본에 불필요한 자기 생각을 쑤셔넣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후세계 묘사에 쓸데 없이 힘을 주지도 않죠. 그에게는 세 주인공이 독자적인 존재감을 가진 인간들로 완성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들 모두를 존중하고 언제나처럼 간결하지만 설득력 있는 필치로 이들을 그려냅니다. 세실 드 프랑스, 멧 데이먼, 프랭키와 조지 맥클라렌의 캐스팅도 근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논쟁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알리바이용 시니시즘에 의존하지 않는 여유가 좋아요. (11/03/19) 


★★★


기타등등

일본에서는 초반의 쓰나미 장면 때문에 이 영화가 조기종영되었죠. 이해가 됩니다.


감독: Clint Eastwood, 출연: Cécile De France, Matt Damon, Frankie McLaren, George McLaren, Thierry Neuvic, Jay Mohr, Richard Kind, Lyndsey Marshal


IMDb http://www.imdb.com/title/tt121241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180

    • 궁금했다가 평이 별로 안좋은 것 같아서 접었었는데,
      이 글 보니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 오타 신고) 두번째 단락 마지막줄, 모던의->모건의
    • 전체적으로 영화는 좋았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정서적으로 어떤 작은 울림을 주었고, 마지막 장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Matt Damon이 연기가 특별히 나쁠게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좀 겉도는 느낌이 들었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의 전작인 Identity 시리즈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랬는지... 아무튼, 최근에 본 영화 중 (그래봐야 시간을 달리는 소녀, Social network 정도지만) 가장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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