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2011)


[모비딕]의 모티브가 된 건 1990년에 있었던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입니다.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 이병이 민간인 사찰 자료가 담긴 디스크를 가지고 탈영해 폭로한 사건이죠. 제목 [모비딕]도 그 사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보안사에서 대학가 정보 수집을 위해 위장 경영하던 카페 이름이 모비딕이었다고 해요.


영화는 윤 이병 사건을 그대로 다루는 대신, 영화적으로 크게 부풀립니다. 시대배경은 1994년. 발암교라는 다리에서 폭탄 테러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윤혁이라는 청년이, 간첩소행이라고 공식 발표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정보를 갖고 주인공인 명인일보의 기자 이방우를 찾아요. 지방지에서 스카우트 된 손진기, 공대출신 성효관과 팀을 이룬 이방우는 서서히 진상에 접근해 가는데, 그러는 동안 어둠 속에 숨어있는 그림자 정부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영화의 우직함은 1970년대에 유행했던 음모론 영화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신문기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할리우드 스릴러들과 닮기도 했고요. 잔재주 없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죠. 호흡도 적절하고 자극도 충분해서 관객들이 지루해하는 일은 없습니다. 연기의 질도 좋은 편이고.


몇 가지가 걸립니다. 우선 시대배경요. 1990년에 윤 이병 선언이 있었고, 1994년에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있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 영화의 시대배경이 이 시기여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허구의 비중이 너무 크죠. 다른 영화라면 그러려니하겠는데, 소재가 음모론일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선택한 시대는 구체적인 의미가 있어야 하고 현재와 연결되어야 하죠.


그림자 정부라는 소재 역시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있을 수 있겠죠. 정말 그런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의미있는 상징일 수 있고. 하지만 소재의 무게에 비해 다루는 방식이 너무 가벼워요. "우리나라에도 그림자 정부가 있다던데"라는 말 한마디로 존재를 설명해버리는 건 싱겁고, 대충 좋게 끝나는 결말도 소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음모론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공식적인 발표를 믿지 않고 그 뒤에 숨겨진 더 추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시대죠. 이런 시대에서 음모론을 다루는 영화는 조금 더 과감할 필요가 있어요. [모비딕]은 이런 세계에서 음모론 영화로 자신을 세우기엔 너무 순합니다. (11/04/16)


★★☆


기타등등

감독은 블라인드 시사회를 찾은 관객들 중 상당수가 [모비딕]의 뜻을 몰라서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감독: 박인제, 출연: 황정민, 진구, 김민희, 김상호, 이경영, 다른 제목: Moby Dick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Moby_Dick.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528

    • 모비딕이 허먼 멜빌의 소설이라는 걸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던 시절이 있었나보죠? 그것도 신기한데요.
    • 흰 고래 모비딕이라고 어린이용 전집류에도 늘 들어가 있었어요. 백경이란 옛날 영화도 주말밤이나 명절에 티비에서 자주 틀어주었던 것 같구요. 저는 멜빌의 그것 말고 모비딕에 다른 뜻이 또 있나 싶었어요.
    • 미드 자막에도 모비딕 나오면 '백경'이라고 하는데요.
    • 읽어 본 적이 없고 작가 이름은 모르더라도 '흰 고래'가 나오는 소설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는 어느 정도 보편적이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 어쩌면 과거에도 대부분 모비딕을 알고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 글을 보기 전까지
      모비딕의 뜻을 모르는 관객 수가 상당하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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