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Adamkosh (2010)


레자 카리미의 [킬러]는 이란에서 온 추리 서스펜스물입니다. 이란에 이런 장르 영화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몇 십년 동안 제가 본 이란 영화들은 모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스타일의 예술영화들이니까요. 대부분 좋은 영화들이었고, 그 중 몇 편은 걸작이었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들만 한 나라의 영화계를 대표하는 상황은 그리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이란 영화감독이라면, 키아로스타미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영화는 8,90년대에 유행했던 할리우드 사이코 스릴러처럼 시작됩니다. 순진무구한 얼굴의 범죄 심리학자 남자 주인공에게 옛 친구가 찾아옵니다.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죽은 남편의 동생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으니 도와달라고 해요. 주인공은 여자가 기억하는 살인사건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뒤로 불탄 시체가 발견되고, 여자는 추가 자백을 하고, 사방에서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 등 사건은 심상치 않게 전개됩니다.


영화의 첫 인상은 무척 서구적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가리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할리우드에 놓아도 그대로 통할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장르적이라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이란 배우들은 이런 연기를 안 할 것 같잖아요.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 이 사건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큰 것도 지적해야겠군요. 주인공의 보스도 여자이고, 조수도 여자이고 그렇답니다. 모두 만만한 성격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장 온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가 남편을 포함해 세 명을 죽였고 또 한 명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용의자이니 할말 다 했죠.


한계가 있습니다. 영화엔 섹스가 제거되어 있고, 폭력 묘사도 거의 없습니다. 사건의 진행과정도 무난하고요. 인간 마음 속 지옥을 보여줄 것 같았던 도입부와는 달리 영화의 결말은 그냥 평범한 편입니다. 이런 거 가지고 이렇게 유난을 떨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추리 과정도 조금 어설프고 몇 군데 이치가 맞지 않아보이는 부분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언어갭과 문화갭을 거치는 동안 제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주인공이 좋은 탐정이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보면 그냥 갑갑하더라고요.


소재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비해 영화의 스타일은 거의 단아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아는 이란의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죠. 가끔 이 무덤덤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작정하고 발악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음악도 깔고 화면 효과도 내고 편집으로 장난도 치죠. 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대부분 어색하더군요. 아직 장르물을 위한 온전한 도구를 갖추지 못한 거죠. [킬러]가 이란의 장르 영화의 평균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이들이 다음 단계에 오를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겠습니다. (11/07/16)


★★


기타등등

이 영화의 가장 좋은 점. 나오는 여자배우들이 다들 예쁩니다. 남자 주인공의 상사, 조수, 용의자들 모두 눈에 확 뜨이는 서글서글한 페르시아 미인들이에요. 이 친구, 아주 꽃밭에서 놀더라고요.

 

감독: Reza Karimi, 출연: Bahram Radan, Mahtab Keramati, Hamed Behdad, Leila Otadi, 다른 제목: The Killer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6209

    • 장르 영화는 아니지만 얼마전 '씨민 나데르 별거'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위 "이란 예술영화"와는 방향이전혀 다르면서도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은가보더라구요.

      아마 어딘가에서는 우리나라 영화도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겠죠? "코리아엔 박찬욱 영화만 있는 거 아니었어?"라거나 "꼬레 드 쉬르 영화는 다 김기'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봄같은 스타일 아니었어?"라는 식으로 말이죠.
    • 저기 '영화는 섹스는 제거되어 있고'에서 '영화는 섹스가'가 맞는것 같은데...아닐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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