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이번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의 복병입니다. 기획만 보면 전혀 안 당기죠? 아마 제목 기억하기도 어려울 걸요. 지금까지 [혹성탈출]이라는 제목에 단어 몇 개를 붙여 만든 영화가 몇 편입니까. 게다가 리부트에 끝이 훤히 보이는 '프리퀄'이라. 하. 그런데 만들어진 영화를 봤더니, 올해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뽑혀도 이상할 게 없더란 말입니다.


프리퀄이라고 했지만 이전 영화들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오리지널 [혹성탈출] 설정과도 안 맞고 팀 버튼이 만든 [혹성탈출]과도 맞지 않아요. 그러니 이건 프리퀄도 아닙니다. 그냥 새로 만들어진 시리즈의 1편인 거죠. 다행이죠. 이 영화는 스토리 전개의 발목을 잡을 '본편'이 없습니다. 우리가 본편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2편의 암시가 군데군데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가볍게 넘길 수 있어요.


이 시리즈에서 유인원들이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갖게 된 것은 윌 로드먼이라는 과학자 때문입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던 그는 치료제 실험 대상이었던 침팬지의 아들을 몰래 집으로 데려옵니다. 시저라는 이름을 붙인 그 침팬지는 놀라운 천재성을 발휘하고, 일련의 불운한 사건 끝에 동물원 유인원들의 우두머리가 된 그는 인류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원작 시리즈의 타임머신 같은 거 안 나옵니다. 괜히 찾지 마시길.


SF로서 영화는 그냥 무난한 편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도깨비 방망이에 가깝죠. 지나치게 편리해요. 존 리스고, 제임스 프랑코, 프리다 핀토, 브라이언 콕스 같은 배우들이 프로페셔널한 연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인간 캐릭터들에게 큰 기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 역시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도구이고 소모품이에요. 이들이 고뇌하며 주인공인 척 하는 장면이 나오면 남의 영화에서 왜 저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관객들이 집중하게 되는 건 주인공 침팬지 시저와 유인원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이모션 캡쳐를 이용한 CG로 만들었어요. 이전 같으면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관객들은 컴퓨터가 만든 환영 대신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명연기를 펼치는 유인원 배우들을 보게 됩니다. CG 캐릭터와 관객들 사이를 가로 막는 장벽이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각자 개성이 얼마나 뚜렷한지. 잠시 나와도 시선을 확 빼앗는 단역들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시저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전통적이고 원형적이죠. 그는 부당하게 학대 받지만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영웅이며 리더입니다. 그는 침팬지 버전 스파르타쿠스이고 모세입니다. 영화는 별다른 잔재주 없이 시저의 이야기를 우직하고 단순하게 전개하는데, 그 결과물에는 상당한 힘과 무게가 느껴집니다. CG 유인원들이 인간 흉내를 내고 돌아다니는 이야기인데도, 관객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공감한 상태에서 몰입해 보게 됩니다. 그들은 냉소따위는 버리고 진심으로 유인원들의 편을 듭니다.


제리 골드스미스와 레너드 로젠만이 남긴 자리를 정당하게 차지한 패트릭 도일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 웨타 전문가들의 프로페셔널리즘, 이제는 모션 캡쳐의 전설이 된 앤디 서키스의 '유인원'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와 액션에 거의 완벽한 균형을 잡아 준 루퍼트 와이어트의 연출 덕택에,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CG 범벅 블록버스터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드는 영화 본연의 역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따위를 보며 멀미에 시달리느라 우린  영화의 진짜 존재 이유를 잠시 잊어버렸죠. (11/08/06)


★★★☆


기타등등

찰턴 헤스턴과 오리지널 영화의 언급이 군데군데 등장합니다. 오리지널을 더빙으로 보신 분들은 놓치실 수도 있겠습니다.

 

감독: Rupert Wyatt, 배우: Andy Serkis, James Franco, Freida Pinto, John Lithgow, Brian Cox, Tom Felton, David Oyelowo


IMDb http://www.imdb.com/title/tt131851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0629

    • 굉장히 좋은 평이네요. 꼭 읽어야겠어요.
    • 본문 마지막 줄에 "우린 이 영화의 진짜 존재 이유를 잠시 잊어버렸죠"가 아니라 "우린 영화의 진짜 존재 이유를 잠시 잊어 버렸죠"를 의도하신 건 아닌지요? : ) 그나저나 어마무시한 호평이군요. 두근두근.
    • 별점이 의외로 높네요 급기대
    • 루이와 오귀스트/ 고쳤습니다.
    • 링크가 연결이 안되는군요
    • 스킵 리스트에서 필견 리스트로 바뀐 영화.
    • 영화 못 봤지만, 설명 들어보니 이건 좀 반칙 같아요.
      인류는 지네끼리 치고박다가 멸망하고 아주 먼 훗 날 유인원들이 자연스럽게(?) 진화하여 최고 지성체 자리를 꿰차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하긴... 인류가 스스로 멸망하지 않는다면 유인원이 제아무리 머리가 좋아진다 해도 현재의 세계를 뒤집어 엎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겠군요. ^^
    • 3번째 문단:일련의 불운한 사건 끝에 동물원 유인원들의 우두머리가 된 `그들`은 인류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앤디 서키스의 이름이 제일 앞에 있군요.맞아요.대접받아 마땅합니다.
    • 호레이쇼 / 원작에서도 자연스럽게 진화하지는 않죠. 그럼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인류와 맞서 싸운다고해서 유인원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건 아닙니다. 이 단계에서 그건 그냥 불가능하죠.
    • 유인원들이 머리가 좋아진 계기를 설명한 영화는 혹성탈출 시리즈 중에서도 한참 나중에 나온지라 원작이라는 말이 좀 애매하군요...
    • 혹성탈출 시리즈 중에 오리지널 영화와 팀 버튼 것, 그리고 요번 영화 외에 또 볼만한 작품이 있나요?
    • 원작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더군요ㅎ
      중간에 경비원이 보던 TV 영화, 그리고 'bright eyes'.
      더빙으로 봤을때 놓쳤을법한 건 'bright eyes'일까요?
    • 아뇨. 제가 언급했던 건 몇몇 유명한 대사들이었어요.
    • 위에다 썼는데 못보셨나봐요 네이버랑 imdb링크가 안되요
    • 보고 확인했는데, 둘 다 돼요.
    • 그래요 왜 난 안되지......... 죄송합니다
    • 저도 안됩니다. 혹시나해서 확인하니 다른글은 다되는데 이번글의 링크만 안되네요.
    • 지저분한 말포이와 투덜이 로드니가 반가웠습니다. ㅎㅎㅎ
    • 말포이였네요. ㅎㅎ 어디서 봤는데 기억이 안나 이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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