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Moneyball (2011)


아마 일반적인 야구영화라면,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은 악역이었을 겁니다. 그는 예일대를 나온 뚱보 청년이 제시한 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팀을 뜯어고치려는 제너럴 매니저로, 선수들을 통계의 숫자로 취급하고,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의 경기도 보지 않습니다. 장르 영화에서 이런 인물들의 미래는 대부분 정해져 있죠.

하지만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을 각색한 [머니볼]은 일반적인 장르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 장르의 모양을 거의 완벽하게 뒤집습니다. 야구 이야기지만 경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고, 선수들은 거의 엑스트라 수준입니다. 몸짱 선수 대신 그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죠. 스포츠 영화의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나 감동 같은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도 자기만의 클라이맥스도 있고 정서적으로 고양되는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 영화의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빌리 빈이 의지하는 것은 세이버매트릭스라는 통계학적 방법입니다. 빌 제임스라는 인물이 고안한 이 방법을 이용하면 선수들의 능력과 기록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전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게 어떻게 먹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른 모든 장점들을 희생해서 지켜야 할 만큼 출루율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빌리 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가 있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은 가난하기 짝이 없어서 선수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이 눈독 들이지 않는 무명선수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위험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최대한 과학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죠.

이 때문에 영화는 스포츠 영화보다 과학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스포츠 장면이 없는 대신 도표와 숫자들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지적인 토론들이 이어지지요. 음악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용을 모르고 마이클 다나의 음악만 들으면 이게 무슨 수학자 전기영화 음악인가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간적인 면은 그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돋보이죠. 빌리 빈 자체가 그런 인물입니다.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선수로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그는 스카우터의 감에만 의지해 자신과 같은 선수를 뽑아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이버매트릭스의 수학적 해결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그런 그의 태도와 방법론은 야구에 대한 그의 애정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의 냉정한 태도도 그가 얼마나 섬세한 인물인지 역으로 보여주고요. [머니볼]은 서글픈 자기 부정의 이야기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만 그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빌리 빈의 감정이 어떻건, [머니볼]에는 심술궂게 재미있는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뚱보 청년 피터 브랜드가 바로 그 정점에 있습니다. 평생 야구 한 번 안 했을 것 같은 공부벌레 청년이 야구장에서 인생을 보낸 전문가들을 밀어내고 업계에 파란을 몰고 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완벽한 [너드의 역습]이죠.

영화는 이 흐름을 다소 모호한 위치에서 바라봅니다.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의 노력과 업적은 예찬됩니다. 하지만 위치가 살짝 어긋난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보면 영화가 그들과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 통계적 방법은 의미가 있지만 야구는 그것만으로 정복할 수 없는 게임이며,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아주 좋은 뉴스만은 아닐 거라는 거죠. (11/11/04)

★★★☆

기타등등
지금까지 이야기는 모두 영화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검색해보니, 영화가 주는 정보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많이 변형된 것 같더군요. 피터 브랜드는 가공의 인물이고(원래는 실존인물인 폴 디포데스타의 이름을 그대로 쓰려했지만 당사자의 반대 때문에 캐릭터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빌리 빈의 세이버매트릭스 실험은 그의 멘토였던 샌디 앨더슨 밑에서 훨씬 일찍,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더라고요. 소문을 들어보니, 그의 실험은 지금 정체상태인 모양입니다. 하긴 비슷한 모방자들이 나오면 소용이 없는 방법이긴 해요.


감독: Bennett Miller, 출연: Brad Pitt, Jonah Hill, Philip Seymour Hoffman, Robin Wright, Chris Pratt, Stephen Bishop

IMDb http://www.imdb.com/title/tt12101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786

    • 여섯번 째 문단에서 빌리 빈이 빌리 진이라고 오타가 났네요.
      피터 브랜드의 실제 인물은 뚱뚱하지 않아요 ^^ 너드이긴 하겠지만.
      출루율은... 말 그대로 타자가 주자가 되는 확률인데요. 빌리 빈은 사실 아주 단순하게 접근한 거죠. 어쨌든 죽지 않고(아웃되지 않고) 루에 나가는 게 최선(이고 최고)이라는 아주 단순한 접근입니다. 보통 OPS(타율+출루율)은 타율에 비해 평가 절하 되거든요. 타율은 선천적인 데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좋은 타자는 타고 나는 거에요. 그리고 아주 불안정한 요소죠. 아무리 훌륭한 타자라도 한 시즌 안에도 기복이 있으며 그 타자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면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거든요.
      근데 이 OPS라는 건, 포볼로 인해 출루하는 확률 등등을 포함하기에 결국 선구안과 관련되는 거거든요.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능력. 이게 상당히 중요하고...있는 사람한텐 있고 없는 사람한텐 없는 겁니다. 변화하는 요소가 아니죠.
      뭘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전 아직 이 영화를 안봐서... 이미 다 알고 계신 정보일 지도 모르겠어요.
      암튼 빌리 빈은 타고난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즉, 자기 자신과 비슷한 타입, 젊고 빠르고 타율이 높은)들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달리 말하면 더이상 젊지 않고, 발이 느리고, 타율이 낮은, 그러나 선구안이 뛰어나서 볼을 잘 고르는)들을 높이 샀고 이게 먹혔죠.
      금방 빌리 빈보다 더 전투적으로 이 시장을 잠식한 무리들이 생겼고 지금 빌리 빈은 그저 그런 상태에요 ㅎ
      앞으로 남은 블루오션은 부상을 컨트롤하는 거라는데. 정말이지 저도 알고 싶습니다. 가능한 거냐..
    • 고쳤습니다. :-/ 저런 실수 나올 줄 알고 한 번 훑어봤었는데...

      네, 저도 영화보자마자 디포데스타를 검색했는데, 뚱보가 아니라 실망했어요.
    • 요즘 할리우드에는 너드의 역습이 대세로군요.
    • 잡스 전기 영화가 나오면 서클이 완성될 듯.
    • 이 영화의 장르는 ootp,fm,모굴.ㅎ
    • [예를 들어서 다른 모든 장점들을 희생해서 지켜야 할 만큼 출루율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이 만화를 보시면 조금 이해에 도움이 되시려나요?

      http://djuna.cine21.com/xe/3056474


      이 글도.

      http://angelhalowiki.com/r1/wiki.php/%EC%84%B8%EC%9D%B4%EB%B2%84%EB%A9%94%ED%8A%B8%EB%A6%AD%EC%8A%A4?action=show&redirect=%EC%84%B8%EC%9D%B4%EB%B2%84%EB%A7%A4%ED%8A%B8%EB%A6%AD%EC%8A%A4
    • 여섯번째 문단 : 총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 촉망
    • OPS는 [출루율+장타율]이죠. 화양적님이 오타를 내신 거 같네요. 빌리 빈의 머니볼 이론을 아주 거칠게 정리해 보자면, 빌리 빈 이전에 스카우터 포함 MLB 야구 관계자들이 높게 평가한 타입의 선수들은 고전적인 타입들, 즉, 발 빠르고 타격 좋은(타율이 높은) 선수 or 발이 느리고 타율이 떨어지더라도 홈런을 펑펑 잘 치는 선수 이 두 타입이었고 나머지 타입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었죠. 근데 빌리 빈은 "안타건 사구건 루에 나가는 건 마찬가지고 홈런이나 2 루타나 멀티 점수를 뽑아내는 데 별 차이 없지 않나" 라는 발상으로 그 당시에는 생소했던 출루율과 OPS 라는 스탯에 집중하게 됩니다. 즉, 타율이 낮아도 출루율이 높은 타자는 어찌되었건 그 출루율만큼 출루해서 득점할 확률을 높여주는 거고 홈런 갯수는 작아도 OPS가 높은 타자는 그만큼 출루할 주자를 홈에 불러들여 득점을 올릴 확률이 클거다라고 기대한 거죠. 그래서 그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출루율과 OPS가 높은 타자들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거기서 오클랜드 에이스와 빌리 빈의 신화가 시작된 거죠.
    • 참고로 ops와 타자들의 시장가치 그러니까 자유계약선수가 되었을때 그 선수가 받을 수있는 금액은 대체로 연동하고 있습니다. 이미 꽤 됐죠. ops가 높은 선수들은 원래부터 비싼선수들이었어요.
    • 장타율은 원래부터 타자들의 가치를 매기는데 중요한 통계였고 장타율 높은 타자는 무지 비쌌습니다. 그런데 2000년도 초반 세이버메트리션 중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일부 사람들은 출루율이 장타율보다 득점을 생산하는데 세배정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수용한 이가 빌리빈이었습니다. 야구계에서 그당시 출루율에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죠. 빌리빈은 타율이 낮더라도 심지어 장타율이 낮더라도 출루율이 높은 선수들을 사모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출루율이 100%인 9명의 선수로 구성된 팀은 점수를 무한대로 낼수있습니다. 심지어 안타하나 치지 않고도 나쁜볼만 골라 나가면 밀어내기로 계속 점수를 낼 수 있죠. 출루율 높은 선수들의 또다른 장점은 상대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한다는 것이죠. 야구는 어떻게 보면 투수들의 팔을 누가 더 빨리 지치게 많드느냐의 게임이기도 하죠.
    • 빌리빈의 실험은 성공했을까요? 단기적으로 성공했을지 몰라도 결론은 실패입니다. 이젠 야구계의 모든 사람들이 빌리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젠 출루율은 예전에 비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구요 빌리빈의 운신의 폭은 좁아졌죠. 빌리빈은 야구에서 불확실성과 운을 최대한 제거하고자 노력했지만 여전히 야구는 운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운을 제거하는 가장 큰 도구는 여전히 비싼선수들을 사모을수 있는 돈입니다.
    • 빌리빈이 경기를 되도록 직접 보지 않는 이유는 특정 경기에서의 임팩트 있는 장면을 자신이 눈으로 봄으로 해서, 다른 보지 못한 많은 경기의 결과가 나타나 있는 기록과 통계가 말해주는 바를 왜곡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책에 되어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찬스에 강한 타자 = 해결사"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강렬한 순간을 우리가 눈으로 보았을때의 해악에 해당하며 세이버매트리션은 대개 이러한 개념을 부정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타점의 가치도 낮게 보고, 득점권 타율 따위도 별로 신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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