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2011)


강제규의 [마이웨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미군의 심문을 받는 동양인 사진 한 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 [디-데이]에 실린 이 사진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군복을 입은 이 동양인 포로는 자신이 '코리언'이라고 밝혔다죠.


연민보다는 궁금증이 폭발합니다. 저 남자는 어쩌다가 저기까지 간 걸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관심은 안토니오 코레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한국인이 한국이라는 작은 동네를 떠나서 대륙 맞은편 끝까지 갔고 소위 '세계사'의 작은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가 전쟁의 희생자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강제규의 영화는 이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여러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죠. 가장 나은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가장 거창하게 꾸린 이야기인 건 분명해요.


[마이웨이]는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라는 두 마라토너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둘은 어린 시절 친구였지만 타츠오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에 의해 살해당한 뒤로 원수지간이 됩니다. 그러다 강제징집된 준식은 노몬한에서 일본군 장교가 된 타츠오와 재회하게 됩니다.


얼핏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애증으로 얽힌 두 남자가 전쟁터에서 만나 복잡한 감정을 교류하며 우정을 쌓고 세계관을 바꾸고...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이러다보면 반전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역사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고... 여기에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를 불러오면 3개국 군복을 입혀가며 코스프레 놀이도 할 수 있는 거고...


근데 영화를 보면 잘 안 먹힙니다.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주연인 전쟁 액션 영화와 이들이 소재로 삼은 실화는 전혀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죠. 척 봐도 노르망디의 저 한국인 남자는 피해자입니다. 어쩌다보니 일본군에 징집되고, 소련군의 포로가 되고, 다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저기까지 간 거라고요. 이는 모두 운명의 장난으로, 그 스스로 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의 이야기를 장동건, 오다기리 조 주연 대작 전쟁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이야기는 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나쁜 것은 장동건이 연기한 김준식입니다. 장동건이 온갖 힘을 주어 장엄하게 연기하긴 하지만, 그는 실체가 없는 인물입니다. 성격과 동기가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지요. 감독은 간담회 때 캐릭터의 변하지 않는 가치관과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던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영화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안 흘렀죠.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가끔 소리내어 물어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넌 지금 어디로 가는 거니?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뭔가 생각은 하고 사니?


당연히 그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고 죽이고 죽고 배신하고 갈등하고 욕하는 동안 그는 방향 없이 여기저기로 움직입니다. 가끔 그는 무리 속에 섞여서 싸우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하는데, 어느 쪽에도 분명한 의욕이 안 보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존재 이유는 전쟁터 배경 속에서 멋있어 보이는 것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조금 낫습니다. 타츠오는 과장된 캐릭터지만 분명한 캐릭터 변화와 강한 내면 갈등이 있습니다. 김준식의 친구인 이종대는 오히려 장동건의 김준식보다 노르망디의 코리언에 더 잘 어울리는 인물로 역시 드라마가 상당히 강합니다. 판빙빙이 연기한 쉬라이는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단지 이 인물은 일관성 없는 각본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역도 작고.


영화가 바탕으로 삼고 있는 김준식과 타츠오의 관계는 의도만큼 잘 그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그리기엔 두 배우로 브로맨스 영화를 만들어 화보 찍으려는 의도가 너무 강해요. 최악은 노르망디 해변의 축구 경기 장면입니다. 정말 그 장면이 그들의 위치나 입장과 맞다고 생각하고 찍은 겁니까? 그런 거 찍고 싶다면 [GQ]로 가라니까.


영화의 재미 대부분은 전쟁 장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럴싸합니다. 스케일도 커 보이고.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밀덕후들은 한참 즐겁겠습니다. 다국적 배우들의 연기가 중간중간에 신경 쓰이긴 하지만,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스케일과 맞먹는 전쟁 묘사를 하겠다는 게 목표였다면 그럭저럭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쟁영화는 스펙터클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반전영화이건, 역사예찬영화이건, 중요한 건 피와 살이 튀고 폭발성 화학물질들이 터져나가는 동안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느꼈느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노몬한에서부터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노르망디에서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유일한 목표는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인데, 그 상황에서 그 목표에 매진하는 게 가능합니까?


[마이웨이]는 부인할 수 없는 대작입니다.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군데군데 인상적인 연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귀가 전혀 안 맞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 이야기는 이렇게 멋있는 척 하는 대작으로 그려서는 안 되었어요. (11/12/13)


★★☆


기타등등

김인권의 이종대는 노몬한 전투 이후 인상적인 인물로 성장하지만, 그 이전에는 좀 짜증이 나더군요. 각본이 이 인물을 일종의 추임새용 도구로만 써먹고 있더란 말입니다.

 

감독: 강제규, 출연: 장동건, Jô Odagiri, Bingbing Fan, 김인권, 김희원, 오태경, 곽정욱, 김시후, 천호진, 윤희원, 이연희, 다른 제목: My Way


IMDb http://www.imdb.com/title/tt16063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628

    • 아귀를 개연성으로 인식해도 될런지요? 듀나님 평을 보니 걱정이 됩니다. 저역시 가장 우려한부분입니다. 기술적인 밀덕후들 서비스 부분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그래서? 이러면 자신감있게 답을 못해줄 영화를 만드는건 아닐까 이런 걱정말입니다. 반밀덕이지만 솔직히 보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버리는군요. 그냥 눈요기로만 볼려니 시간낭비 같고... 저는 듀나님 생각처럼 영화가 흘러갔다면 영화속 스토리를 별도로 진행시켜서 큰 스토리는 전쟁으로 하고 두주인공들은 철저히 역사속 흘러가는 인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듀나님 글로 추정컨데 방금 이야기한 이런 맥도 표현은 되었을거라 생각은 하지만 액션 들어가면 카메라들이 죄다 두 주인공들을 중심포커스로 잡아 음악, 미술 죄다 신파로 갔을듯 합니다. 모티브는 좋은데 모티브를 개연성있게 풀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영화가 되어버린 셈이군요. 안타깝습니다. 리뷰 잘읽었습니다.
    • 역시 각본은 예상대로군요.
      각본을 만화 슈피겔만의 쥐나 영화 유로파처럼 블랙코미디로 만들고, 주인공도 화보같은 장동건이나 오다기리 조가 아닌 냉소적인 연기에 강한 反영웅적 연기자들을 선택했다면 훨씬 재미있을 이야기 소재거리일텐데요, 상당히 아깝네요. 김인권이 차라리 주인공이었다면 성경의 욥처럼 우화적인 블랙코미디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거친 운명의 물결속에 온갖 전쟁터를 헤메는 고난을 욥이나 율리시즈처럼 겪다가 천신만고끝에 고향에 돌아왔는데, 고향도 전쟁판이라는 쓴웃음이 나오는 블랙코미디처럼입니다. 애당초 스티븐 앰브로스가 노르망디의 한국인 포로를 언급한 대목도 그런 아이러니조였죠.
      주인공은 김인권이 아니면 봉태규, 혹은 신정환^^;;
    • 원래 손예진이 출현하려다 고사했다고 들었는데, 판빙빙 역이었을까요?
      [오싹한 연애] 쪽을 택한게 나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제목도 마음에 안들어요...
    • 제목도 마음에 안 들어요2. 제목 진짜 느끼하지 않나요? 으하하 ;;;;;
    • '그러다 강제징집된 준식은 노몬한에서 일본군 장교가 된 타츠오와 노몬한에서 재회하게 됩니다.' 노몬한이 두번 반복되서 하나를 빼면 좋겠어요.
    •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 [디-데이]에 실린 이 책에 따르면'
      --> '스티븐 앰브로스의 책 [디-데이]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리뷰를 읽어보고 해당 사진을 찾아 봤는데 슬프고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웃지 못할 코미디란 생각이... 근데 영화는 과하게 각을 잡았나보네요. 아쉽습니다.
    • 아.. 역시 기대는 한 수 접고....
    • 독립군에게 살해당한 자는 타츠오의 할아버지입니다.
    • 어, 정말 아버지라고 되어 있군요. 반영하겠습니다,
    • 지금보니 네이버 링크가 없네요 ^^
    •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게오르규의 '25시'가 생각나는 설정이네요. 그 정도 무게를 기대할 수 없다니 아쉽습니다.
    • 맞아요! 25시! 저도 다른 글에서 그 책을 언급했었죠. 차라리 작정하고 그렇게 나갔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죠.
    • 몇 년전에 모밀리터리 게시판에서 친일파 논쟁을 하다가 이 '노르망디의 한국인'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게오르규의 '25시' 얘길 했고, 저는 거기에 덧붙여서 '전쟁노예'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얼마 전에 본 SBS다큐 때문인지 맘이 참 쓰라립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 얘기는 참담하고 기가 막힌 일이죠. 이게 영웅 얘깃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 '구겨넣었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시간은 짧고, 돈은 빠듯하고, 보여주고 싶은 비주얼은 넘쳐 나는 데, 내러티브는 못 쫓아 가고... 오글거리고 느끼한 부분이야 제처 두고서 라도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 대충 이런 영화인거 알고 왔잖아? 적당히 알아 먹었으면 어서 주요장면으로 넘어 가자고!" 하면서 퍽퍽 스킵한 기분을 지울 수 가 없더라구요.
    • 이 소재가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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