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 La piel que habito (2011)


저명한 성형외과 의사인 로베르트는 아내가 죽은 뒤로 아내의 이름을 딴 '갈'이라는 인공피부 개발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그의 저택에는 오직 세 사람만이 삽니다. 그와 충실한 하녀 마릴리아 그리고 전신 스타킹을 입고 홀로 감금되어 있는 베라라는 젊은 여성. 어느 날 마릴리아의 아들이라는 호랑이 복장의 남자가 저택을 찾아오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된 평화는 깨어집니다.


[내가 사는 피부]는 알모도바르 최초의 각색물입니다. 티에르 종케의 [독거미]가 원작이지요. 영화를 보기 몇 시간 전에 전철에서 읽었는데, 논리나 심리묘사보다는 과장된 반전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추리소설이더군요. 그러면서도 예상 외로 알모도바르적이죠. 읽는 동안 "나를 영화로 만들어줘요, 알모도바르!"라는 환청이 들렸어요.


알모도바르의 각색은 산만합니다. 복수의 과정에만 집중하고 있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소재와 주제를 불필요할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간결한 추리소설 원작에 SF와 알모도바르식 막장 멜로드라마가 삽입되고 온갖 종류의 고전영화 테마들이 시치미를 떼고 들어옵니다. 그 중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얼굴 없는 눈], [현기증]과 같은 작품들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 SF 파트는 감독이 힘겨워하는 게 보여요. 아무 것도 모르는 영역에 대해 훈수를 두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 과정 중 행동의 선명성도 떨어집니다. 일단 영화는 복수의 동기가 되는 범죄사건에서 가해자의 책임을 많이 덜어냈어요. 이렇게 해놓고 보니 복수는 중간에 얼렁뚱땅 사라지고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이야기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긴 알모도바르가 진짜 관심을 두었던 것도 이쪽이겠죠. 복수의 대상을 실험용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핑계일 뿐.


그래도 [내가 사는 피부]가 알모도바르식으로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군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알모도바르식 페티시가 폭발하는 영화입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오래간만에 돌아왔고요. 뭔가 아귀가 잘 안 맞고 종종 삼천포로 흐르긴 하지만, 종케의 소설에서 빌어온 이야기의 재미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알모도바르의 최대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감독의 맛을 잔뜩 지닌 디저트 정도로 감상될 수 있겠습니다. (11/12/20)


★★★


기타등등

설정상 베라는 잡티 하나 없이 완벽한 피부의 소유자이고 영화 속에서도 정말 그렇게 보여지는데... 전 그런 피부를 보면 바늘에 쿡쿡 찔리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네.

 

감독: Pedro Almodóvar, 출연: Antonio Banderas, Elena Anaya, Marisa Paredes, Jan Cornet, Roberto Álamo, Eduard Fernández, José Luis Gómez, Blanca Suárez, Susi Sánchez, Bárbara Lennie, Fernando Cayo, 다른 제목: The Skin I Live In


IMDb http://www.imdb.com/title/tt118907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7535

    • 이해해요. 너무 투명하고 약하고 차가운 느낌, 인공의 느낌 아닐까요.
    • 마지막 문단에 있고 → 잊고 인거 같아요..
    • - 마지막 단락 [내가 사는 피부가]가 -> '가' 중복이지요?
      - 대상을 멋대로 실험 대상으로 -> 상대를 멋대로 실험 대상으로?
      잘 읽었습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약간 회색 머리인 것 같은데 더 멋있네요. "알모도바르식으로" 재미있는 영화라니, 궁금힙니다. 보고 싶어요.
    • 알모도바르식 페티시가 폭발하는 영화라니 안볼수가 없겠네요.
    • 하기사 나쁜교육이후부터는 그 축축한 패티시가 좀 줄어든 기분이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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