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Inception (2010)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은 소품입니다. '꿈의 탐사'라는 아이디어는 장자와 프로이트를 믹스한 20세기 후반 SF 소설들에게 빌려왔으니 특별히 도전적일 것이 없고, 이야기의 틀을 구성하는 장르는 케이퍼물이죠. 이렇게 보면 그냥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시작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고, 실제로 계획 초반에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줄거리를 보더라도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 코브는 사람들의 꿈 속으로 들어가 기밀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 전문인 '추출자'입니다. 그는 기업가 사이토로부터 경쟁 회사의 후계자의 마음을 개조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이 작업이 바로 영화 제목에도 나온 '인셉션'이죠. 코브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조직해 계획에 착수하는데, 척 봐도 여기서부터는 SF판 [오션스 일레븐]입니다. 그리고 이 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갑니다. 소재와 장르가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어떠냐고요?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셉션]은 예상 외로 큰 영화이며 그렇게 진부해보이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보면 볼수록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 인상은 계속 증폭되기만 하지요. 그럼 도대체 놀란은 이 익숙한 공식으로 무엇을 했던 걸까요?


단서는 그가 아이디어를 다루는 방법에 있습니다. 아까 전 이 장자/프로이트 아이디어가 장르 기성품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요새 쓰기엔 지나치게 정신분석 티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놀란이 이 익숙한 기본 아이디어를 다루기 위해 동원한 중간 아이디어들은 예상 외로 신선합니다. 신선할 뿐만 아니라 정교하기도 하죠. [메멘토]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는 그가 몇 가지 전제를 동원해 구축한 세계의 규칙과 논리를 끝까지 몰고 갑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꿈이 따랐던 현실은 그 논리에 의해 조금씩 파괴되고 그러는 동안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영화의 구조는 환상적입니다. 전 작은 호두껍질 안에 꼬깃꼬깃 구겨진 채 박혀 있는 거대한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층층으로 겹쳐진 [인셉션]의 세계는 늘 안이 밖보다 넓고 큽니다. 그러다 보니 이 겹쳐진 세계를 뚫고 밑으로 들어가는 단테식 여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거대해집니다. 그러다보니 여기에 심어놓은 코브의 내면 드라마도 그에 걸맞은 무대를 맞게 되고요.


[인셉션]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초자연적인 환상이 지극히 영화적이라는 것입니다. 코브 일행이 꾸고 탐사하는 꿈은 모두 영화의 은유로 치환될 수 있습니다. 환상적인 시각화도 그렇지만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은 더 그렇죠. [인셉션]은 결국 영화에 대한 꿈입니다. 꿈을 이루는 구조물 역시 영화의 조각들이라 할 수 있고요. 놀란은 결국 이를 통해 자신의 작업에 대한 고백을 늘어놓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 고백은 여전히 관객이 극장 안에서 꾸는 꿈일 수밖에 없지요. (10/07/13)



기타등등

영화 내내 들려오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들으며 마리옹 코티야르의 이전 영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감독: Christopher Nolan, 출연: Cillian Murphy, Tom Berenger, Marion Cotillard, Pete Postlethwaite, Michael Caine, Lukas Haas

IMDb http://www.imdb.com/title/tt13756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15

    • 우왓 별4. 개봉 전부터 그냥 예측하기를 토이스토리3를 별4, 인셉션을 별3반으로 생각했었는데 뒤바뀌었네요.
    • 아, 별에 너무 의존하지 마세요. 정서적 힘은 토이스토리 3이 훨씬 강해요. 인셉션은 여전히 냉정한 소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주어진 일은 기가 막히게 잘하고 있죠.
    • 2010년 여름 영화로는 이 녀석을 골라야 겠어요. ^_^ 기대되네요.
    • 이번달 쇼 cgv 공짜영화로는 인셉션 당첨!
    • 우와..리뷰가 넘 기대하게 만들었어요....
    •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주는 가히 끝이 없군요. 21세기의 히치콕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 기대되네요. 빨리 보러 가야겠어요.
    • 아, 방금 보고 왔네요.
      이상하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람개비.
      아버지의 사랑이여 위대하도다
    • 오늘 보고 왔어요. 아 x발 쿰! 어흠, 아무튼 재밌게 봤어요.
      끝나니깐 관객들이 다들 감탄하더라구요.
    • 이거 엔딩크레딧 후에 내용이 이어진다는 거 사실인가요? 열린 결말이 아니고? --; 또 봐야 되는 건가여...??
    • 투더리/ 거짓. 라비앙 로즈가 다시 나오는 걸 두고 하는 소린가봐요.
    • 오오 인셉션 좋았어요. 사실 엔딩에 중의적인 떡밥을 깔아 놔서 뒷맛이 좀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속도도 빠르고 기승전결도 간결해서 신나게 봤습니다.
    • 점점 자신의 다방면의 연출력 위엄을 보여주는 놀란..
      But 점점 텅 빈 영화를 만들어가는 놀란..

      인셉션 보면서 메멘토의 스펙터클한 버전인가 싶어 중반까진 *_*였는데
      다 보고나니 스펙터클(or 감독머리의 비상함에 대한 감탄)만 있더군요.
      이런 느낌엔 디카프리오의 얕은 연기도 한몫 했겠고..
    • 와. 별 네개222
      별에 연연하지 않으려해도 어쩔수 없네요. 토이스토리3도 꼭 보려구요.
      듀나님 감사해요.
    • 별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연연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별 한 개라도 뭐 어때 고집부리며 볼 수 있는데...별 네개면 꼭 봐야돼로 바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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