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2010)


[아저씨]의 본격적인 홍보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풀린 것이 '원빈 복근' 사진이었죠. 전 그 때 원빈 복근보다는 그 사진에 담긴 스토리가 더 신경 쓰였습니다. 납치된 어린아이를 구하겠다는 남자주인공이 본격적인 전투 모드로 가기 직전에 스스로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있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요. 이건 단순한 정신무장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남자의 모든 행동이 나르시시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증거죠.


그리 놀라운 발견은 아닙니다. 원래 [아저씨]와 같은 영화들의 기반이 되는 것은 자기도취죠. 이 영화가 기반을 두고 있는 [레옹] 판타지만 해도 기본은 자기도취입니다. [레옹]이 아니라 [레옹] 판타지라고 말했습니다. 둘은 달라요. 레옹은 마틸다를 진짜로 사랑했지만, [레옹] 판타지에 빠진 관객들은 그 과정의 폼을 사랑하니까요. 그게 진짜 드라마와 그 드라마가 만들어낸 판타지의 차이입니다. 


[아저씨]가 추구하는 판타지는 무엇일까요? [테이큰]과 비슷합니다.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던 주인공이, 어린 소녀가 마약상 일당에게 납치되자 살인기계로 변신합니다. 놀란 악당들이 "넌 정체가 뭐냐!"라고 물으면 주인공은 "옆집 아저씨"라고 대답하는 거죠. 여러분은 원빈이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항의하실 수도 있겠지만, 보도자료에 따르면 원래 각본에서 주인공은 그냥 보통 아저씨였습니다. 이미지가 바뀐 건 원빈 캐스팅 이후라죠. 원빈 캐스팅으로 얻는 이점도 있겠지만, 전 그냥 그대로 갔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원빈이 연기하는 아저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사람은 특수부대 소속 살인전문가인데, 아픈 과거를 묻고 허름한 동네에서 전당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능력은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화려한 무술을 구사하면서 일당백의 액션을 펼치지만 어떨 때는 그냥 어리바리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여요. 납치란 다루기 힘든 범죄이고 지능적인 해결책이 필수적인데, 그는 오로지 악당들을 때려잡기만 합니다. 악당들이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면 지칠 때까지 따라가는 게 습관이고요.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에 가면 납치된 소녀에게 과연 그가 필요하기는 했었나,라는 생각까지 들지요.


그와 영화 속 세계의 상호작용도 그렇게 유기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는 어린 소녀 소미에게 분명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만, 영화 속에서는 그게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원빈이 포커페이스로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속 관계 묘사가 무디기 때문이지요. 멜로드라마로서 [아저씨]는 최악입니다. 내용은 노골적인 신파인데, 정작 감정선이 살아있지 않아요. 종종 "쟤는 지금 왜 저렇게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액션 역시 멜로드라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개별 장면들은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액션의 동력이 부족해요. 이건 좀 이상할 정도입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끔찍하고 시급한 해결책이 필수거든요. 주인공 친구인 어린 소녀 말고도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목숨이 날아갈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면 그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아요. 오히려 이들의 위기가 오로지 원빈 아저씨의 액션에 돗자리를 깔아주기 위해 조작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전 아이들의 위험이 이런 식으로 이용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배우들은 준수한 편입니다. 원빈, 송영창, 김새론을 제외하면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거의 나오지 않는 영화인데, 그래도 개별 배우들은 대부분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배려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원빈은 최악의 대사들만 골라 하고 있고, 김새론의 대사도 별로 낫지 않아요. 감독은 이들이 어떻게 그 대사를 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큰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스타 캐스팅을 제외한 것은 의외로 괜찮은 효과를 내고 있지만 폭력적인 클라이맥스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폭력의 방점이 찍혀야 할 지점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모델이 되는 [레옹]에 자꾸 돌아가게 됩니다. [레옹]이 관객들을 자극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영화의 바탕이 되는 멜로드라마가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촌스럽고 신파여도 진짜였죠. [아저씨]엔 그 진실성이 빠져 있습니다. 전 아직도 원빈 캐릭터가 포커페이스 뒤에 숨길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10/07/28)



기타등등

대부분 한국 장르 영화들이 그렇지만, 이 영화도 음악의 3분의 1을 쳐내면 질이 대폭 개선될 수 있습니다. 


감독: 이정범, 출연: 원빈, 김새론, 김태훈, 황민호, 김효서, 다른 제목: The Man from Nowhere

IMDb http://www.imdb.com/title/tt152778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1509




    • 오타 신고: 이건 단순한 정신무장 이상의 의미가 있스니다
    • 우.. 저는 영화 우리동네에서 클라이막스 부분마다 튀어 나오는 신파 오케스트라가 정말로 거슬렸습니다. 그 영화에서 음악만 좀 줄였으면 작품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아저씨도.. 음악이 종종 몰입을 방해 하더군요. 정말이지 주요장면 앞뒤에 거창한 음악을 떡칠 하지 않으면 햄볶칼 수 없는 것 일까요..
    • 아....진짜....그 음악좀!!! 음악좀!!!!
      왜 한국 감독들은 마지막에 꼭 서로 부둥켜안고 울어야, 그때 웅장한 음악이 흘러야 '감동'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럭저럭 재밌게 보다가 마지막에는 실소를... -_-
      꼬맹이와 킬러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설명은 정말 구구절절 다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 친구는 꼬마가 연기를 못한다고 나무랐지만 제가 볼 때는 꼬맹이의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라...정말...정말 안이하다못해 둘 사이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자체가 없었던 각본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 레옹이 아저씨보단 진짜배기라는데 한 표 던지긴 하지만, 저처럼 원 빈 복근 때문에 이 영화 본 아줌마들도 무지 많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자들의 심리가 원래 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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