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퍼 Looper (2012)


[루퍼]라는 정체불명의 제목은 주인공 조의 직업 이름입니다. 2042년에 사는 그는 범죄조직에 고용된 킬러예요. 다른 킬러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는 주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사람들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이보다 더 미래에 시간여행 기술이 발명되었지만 금지되었습니다. 이를 사용하는 건 오로지 범죄집단뿐이죠. 당시엔 모든 사람들에게 추적장치가 달려있어서 시체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그들은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과거로 보냅니다. 그러면 루퍼가 알아서 그들을 죽이고 시체를 처리합니다. 가끔 나이가 든 자기 자신이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그들은 그 역시 죽이고 두툼한 퇴직금을 챙겨 은퇴합니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요. 제 생각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짓 같습니다. 우선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고작 시체처리를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건 탱크로 호두를 깨는 것처럼 어이없는 낭비죠. 추적장치 제거는 타임머신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겁니다. 타임머신을 이용한다고 해도 굳이 루퍼들을 고용할 필요는 없을 거고요. 그냥 과거의 태평양 한가운데에 떨어뜨리면 되잖습니까. 아니면 활화산 화산 속에 던지거나.

그건 그렇다고 치고, 하여간 주인공 조는 난감한 상황에 빠집니다. 미래의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왔는데, 다른 희생자들과는 달리 그는 조를 잽싸게 제압하고 달아나버린 겁니다. 미래의 조가 주장하길, 미래에는 레인메이커라는 악당이 루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 악당이 조를 제거하려고 하는 동안 조의 아내까지 죽였기 때문에 복수심에 불탄 조는 과거로 돌아가 아직 어린아이인 레인메이커를 죽여 비극을 막으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설정고민을 하게 됩니다.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다룬 많은 이야기들은 자기 모순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여행을 다룬 모든 소설들이 논리적 파탄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시간여행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어요. 워드 무어의 [브링 더 주빌리] 같은 작품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인공이 과거로 갑니다. 역사가 바뀝니다. 끝입니다. 여기에 무슨 논리적 파탄이 있겠습니까.

[루퍼]는 논리에 신경을 쓰는 작품이 아닙니다. 논리보다는 장르 관습에 더 매달리고 있지요. 그 결과물이 변화된 역사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의 역사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여기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잠시 멈추어서서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하다'는 변명을 늘어놓을뿐이죠. 물론 정말 '머리가 터질 정도로 복잡한 설명'이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닙니다. 과거의 다른 시간여행 작품들이 많이들 썼기 때문에 이 영화도 그냥 쓴 것이죠. 전 이런 것들이 굉장히 신경쓰입니다. [루퍼]의 아이디어는 이런 인위적 편법 없이도 얼마든지 활용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요. 이 역시 엄청나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두 명의 조는 어린 조카를 데리고 시골에 사는 한 젊은 여자가 있는 집으로 찾아가는데, 여기서부터는 모두가 예측 가능한 일이 일어나지요. 이는 너무나 전통적이라 거의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르지만 관객들은 이미 결말까지 내용을 다 알고 있지요.

다행히도, 영화는 여기서 좋은 장면과 드라마를 많이 끄집어냅니다. 여전히 논리적 파탄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변해가는 역사 속에서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시간 여행자의 모습에는 감동적인 면이 있습니다. 역시 논리가 걸리긴 하지만 이 비극을 풀려는 주인공의 노력은 강도 높은 드라마로 이어집니다. 모 시간여행자의 종말 장면처럼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하지만 썩 신기한 구경거리로 완성되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조 이전에 과거로 돌아온 시간여행자의 종말 묘사가 그렇습니다. 네, 역시 말은 안 됩니다. 하지만 제가 왜 이걸 다 하나하나 신경 쓰는 건지 모르겠군요. 전 역시 말이 안 되는 시간여행 이야기인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도 재미있게 봤는데 말이죠. (12/10/06)

★★★

기타등등
조셉 고든 레빗은 브루스 윌리스와 닮아 보이려고 영화 내내 분장을 한 채로 나오는데 무척 신경 쓰입니다. 그래봤자 둘은 그리 닮지 않았고 두 배우가 바뀌는 부분은 여전히 어색해요.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감독: Rian Johnson, 출연: Joseph Gordon-Levitt, Bruce Willis, Emily Blunt, Paul Dano, Noah Segan, Piper Perabo, Jeff Daniels, Pierce Gagnon, Qing Xu, Tracie Thoms, Garret Dillahunt

IMDb http://www.imdb.com/title/tt12761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8331

    • 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시간여행을 다룬 부분보다 초능력을 다룬 부분이 월등 낫긴 한데, 전자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적당히 범버무리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고요. 말이 안되는 전제나 설정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바탕을 둔, 임의로 가로쳐놓은 부분에 한정해서 썰을 풀때는 비교적 논리적으로 진행하려는 노력을 보여줬다고 봅니다만.

      일종의 심리서부극의 변종장르로 봐도 흥미있는 한편이었습니다.

      참 중요한 얘기는 아닙니다만 조셉 고든 레빗이 연기하는 젊은 조가 사는 시대는 2042 (2043?) 년인 것 같습니다만. 미래의 조가 사는 연대가 30년이 경과한 2072년이구요.
    • 조셉 고든 래빗 때문에 기대되는 영화였는데, 리뷰 감사합니다.

      밑에서 두번째 문단 시작부분이 오타인 것 같네요. '이런 통해'...????
    • 인셉션급 재미라는 소문은 대체 뭘까요...
    • 인셉션급인지는 잘...물론 인셉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둘다 소소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작품이니까요. 그런데 인셉션은 말쑥하다면 (너무 말쑥해서 아이디어 자체는 소소하다는 걸 알아채기 힘들 정도) 루퍼는 좀 거친 편이에요. 서툴다는 게 아니라 큰 붓으로 툭툭 그려냈달까... 저는 오히려 서부극의 변종이라는 평에 공감이 갑니다. 다만 영화 중반에 그런 식으로 빠지는 순간 좀 허탈하기는 했어요. '뭐야 이 쪽으로 빠질 거였어? 그럼 예고편에서 말이라도 좀 해주지....' 이런 느낌. 왜냐면 듀나님 이야기대로 한번 이 쪽으로 방향 잡은 후로는 예상가능하게 죽 나가거든요.
    • Q/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반영하겠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새로운 문을 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전통적인 장르물이었어요. 잘 만든 서부극의 인상. 그것에 가깝겠더군요.
    • 어린 조카를 데리고 시골에 사는 한 젊은 여자가 있는

      : 아이의 친모라고 중간에 설명이 나오는데요. 여자가 젊어서 엇나갔던 시절에 낳았던 아이를 언니가 키워주었고, 언니가 죽은 뒤 자기가 돌아온 거라고.
    • 근데 그 사실은 조금 뒤에 밝혀지잖아요. 아이는 이모라고 부르고. 제 기억엔 그랬던거 같은데. 하여간 제 생각에 그건 스포일러의 영역이어서...
    • 빠삐용/ 그거 스포일러인데요.

      이런, 래빗이 윌리스와 닮아보이려고 분장한 것이었군요;; 에구 왜 이리 눈썹은 진하고...평소 기대했던 깔끔한 모습이 아니라서 참;;

      다른건 몰라도 꽤 잔인함에 놀랐습니다. 전혀 예상 못했거든요. 총 소리에도 깜놀...
      그런데 미래가 너무 우울하군요. 하지만 중국에 갈 것인지 프랑스에 갈 것인지 언쟁하는 장면에서는 웃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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