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갑자기 (2012)


고등학교 선생 경훈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지독한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인 상우에게 게이바에 간 걸 들켜버린 거죠. 그걸 사진으로 찍은 상우는 경훈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협박합니다. 경훈은 어떻게든 상우를 떨어버리려 하지만 그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일단 이 상황에서 키를 쥐고 있는 것이 상우이고, 상우에 대한 경훈의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네, [지난여름, 갑자기]는 사제간 로맨스입니다. 하지만 어제 다룬 [블루밍턴]에서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제간의 연애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똑바로 인식하고 있지요. 특히 경훈은 그 때문에 무서워 죽을 지경이라 필사적으로 '너는 제자고, 나는 선생이야' 방어막을 부지런하게 치고 있습니다. 단지 상우는 그런 위험 따위엔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하긴 이런 관계에서 다치는 건 늘 선생이죠. 얄미워.

보도자료를 잃어버려 제대로 인용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는데, 이송희일은 '동성애자 성인이 순진무구한 아이를 꼬셔서 같은 무리로 만든다'는 편견을 뒤집고 조롱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모두 시작부터 작정하고 동성애자이니 이게 정확한 공격인지는 모르겠군요. 물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력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이 상황에는 심술궂은 재미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공식과 그 밑의 감정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요. 드라이브, 한강 유람선, 경훈의 아파트로 이어지는 여정은 섬세하게 아름다우며 두 주인공 사이에는 부인할 수 없는 성적 끌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채우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공포, 불쾌함, 분노, 갑갑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입니다. 그 때문에 한 폭의 그림처럼 완벽해보이는 형식적인 '해피엔딩'도 그냥 그렇게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전 그냥 '너네들 이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12/11/20)

★★★

기타등등
개인적으로 전 이송희일의 이번 3부작 중 [지난여름, 갑자기]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단지 좋아하기는 힘들더군요. 이런 종류의 관계가 가지는 폭력성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기 때문에.

감독: 이송희일, 배우: 김영재, 한주완, 다른 제목: Suddenly Last Summer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uddenly_Last_Summer.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9894

    • 별로 안 궁금했는데 마지막 한줄에 낚이는군요
    • 이것도 또 표절 제목인가요.
    • 결말이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어요
    • 보고싶은데 제가 볼수있는 시간대에 영화를 틀어주는 개봉관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 /cksnews
      소재를 고려하면 표절 제목이 어울리는 편이지요.
    • 편견을 뒤집고 조롱이라... 감독이 얼마나 영화를 잘 만들어놨는지는 안봐서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류의 스토리는 BL세계에선 흔하디 흔해빠졌어요. 결코 신선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소재이죠.
    • 와,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여름, 갑자기>도 올려주셨네요! 감독님 인터뷰를 찾아보면 이 영화의 장편화를 기획하고 있는 것 같은데, 번개가면 확실하게 여쭤보려구요. 두 캐릭터는 그 이후에 죽어라 고생하기 때문에, 이 순간에는 해피엔딩을 보여줬다고 하더군요.
    • /stubborn
      일단 BL세계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잖아요. 대중을 상대로 만든 상업영화이고 통상적으로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런 편견이 존재한다는 점을 어필한게 아닐까 합니다만.
    • 호빵왕자 /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그래도 왠지 퀴어영화의 관객이라고 해서 BL과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월등하게 일반대중들이 많을 것 같진 않아요. 퀴어물도 그닥 대중장르는 아니지 않나요? 퀴어영화를 일부러 찾아서 보러가는 무리와 BL을 즐기는 무리 중에는 겹치는 사람들(주로 여성관객들)도 꽤 있을 것 같고요.
    • 실제로도 동인녀-_-들이 대체로 적극적으로 퀴어영화를 찾아보기때문에, 그분들이 많은 지분을 차지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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