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 Jack Reacher (2012)


잭 리처는 영국 작가 짐 그랜트가 리 차일드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는 시리즈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군인집안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웨스트포인트를 거쳐 해외에서 헌병대 장교로 활동하다가 퇴역해서 지금은 미국을 떠도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이 설정은 미국을 무대로 한 소설을 쓰는 영국인 작가의 편의성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경력이라면 리처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잭 리처가 주인공인 소설은 지금까지 17편이 나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감독한 이번 영화 [잭 리처]는 그 중 9편인 [원 샷]을 각색한 것이고요. 톰 크루즈가 캐스팅되었을 때 팬들의 불만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하긴 소설에서 196센티미터 키의 주인공을 톰 크루즈가 연기한다면 순수주의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겠죠. 각색 과정 중 그밖의 다른 변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는 미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무차별 총기난사사건으로 시작합니다. 이라크에서 퇴역한 저격수 제임스 바가 피츠버그의 한 주차장 빌딩에서 다섯 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총으로 쏴서 죽였어요. 체포된 그는 '잭 리처를 불러라'라는 노트를 쓰고 입을 다무는데, 그 뒤에 같은 차에 있던 범죄자들의 구타로 의식을 잃습니다. 뉴스를 보고 피츠버그로 달려온 잭 리처는 바의 변호사 헬렌 로딘과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데, 이게 보기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예상 외로 추리파트가 묵직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음모가 평균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복잡하거나 배배꼬인 건 아니에요. 오히려 몇 줄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요. 군데군데 설명되지 않는 구멍이 있고 그게 영화 끝까지 가기도 하지요. 하지만 미스터리는 건실하고 이를 해결하는 잭 리처의 소거법은 명쾌합니다. 예상 외로 이 캐릭터는 '명탐정'이에요. 그 때문에 '원작소설을 먼저 읽을 걸'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스치더군요.

액션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합니다. 그 중 하나가 미스터리 해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잭 리처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반의 카 체이스 장면 같은 건 이런 식의 액션이 많이 나오던 70년대 형사물이 연상될 정도로 고풍스럽게 잘 짜여졌어요. 잭 리처와 '덤 앤 더머' 악당 콤비의 싸움 장면처럼 노골적으로 웃기는 장면도 있고요.

잭 리처는 판타지 캐릭터입니다. 그것도 염치없을 정도로 뻔뻔한 남성 판타지죠. 서부극 총잡이처럼 미국 전역을 방랑하다가 악당들을 퇴치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구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의 폭력 성향을 마음껏 폭발시키는 주인공. 전 톰 크루즈가 이런 역에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해요. 팬들의 반응은 존중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가 잭 리처를 연기한다고 특별히 불만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이런 의견은 책을 읽으면 달라질 수도 있겠죠. 그래도 크루즈를 포함한 영화의 캐스팅은 좋은 편입니다. (13/01/10)

★★★

기타등등
영화에서 가장 튀는 부분은 최종악당 역을 베르너 헤어조크가 연기한다는 것이죠. 이 캐스팅은 기믹입니다. 연기력보다는 헤어조크라는 영화감독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윙크를 던지는 농담에 가깝죠. 헤어조크에게서 전문 배우의 연기를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가 특유의 독일어 억양으로 악당 대사를 읊는 장면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를 모르는 다른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감독: Christopher McQuarrie, 배우: Tom Cruise, Rosamund Pike, Richard Jenkins, David Oyelowo, Werner Herzog, Jai Courtney, Vladimir Sizov, Joseph Sikora, Michael Raymond-James, Alexia Fast, Josh Helman, Robert Duvall

IMDb http://www.imdb.com/title/tt079072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834

    • 헤어조크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어졌어요
    • 의외의 복병이었군요.게다가 헤어조크라니 꼭 봐야겠어요.
    • 예상치 못 했던 복병이 숨어 있었군요!!
    • 리 차일드는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작시리즈를 보면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여럿 있죠.
      잭 리처는 아버지가 해병대 현역 군인이라 어린 시절 전세계의 미군기지를 전전하며 성장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자신의 조국을 교과서로만 배웠지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기에 미국 전역을 방랑하고 있죠. 이런 방랑의 이유에는 태어날 때부터 그의 기본 환경이었던 (자유의지로 가고 싶은 곳을 정할 수 없는) 군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인 배경도 있음을 작가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잭 리처역을 탐 크루즈가 맡게된 것은 잭 리처 시리즈의 팬인 저로선 아주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휴 잭맨 같은 떡대있는 배우가 더 잘 어울릴 것이라 봤거든요. 나온 결과물에 대해 원작자인 리 차일드는 상당한 만족을 보이더군요.

      저는 One shot보다는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된 시리즈의 첫번째인 Killing floor의 영화화를 더 기대했습니다. 리처의 명탐정적인 면이 좀 더 부각되고 트릭의 아이디어도 재미있습니다.
    • 어벤져스에서 블랙 위도우를 고문하던 예르지 스콜리모브스키를 보는 느낌일까요? 영화에 간만에 출연하는 감독들 보면 반갑네요. 미래소년 코난의 레프카를 닮은 얼굴로 '백야'에서 차이코 중령의 멋진 악역을 소화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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