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월드 Westworld (1973)


[웨스트월드]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그는 원래 이 작품을 소설로 쓰려고 했다가 포기하고 영화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영화의 소재가 되는 서부극 무대나 총격전 같은 건 활자보다는 영화가 더 잘 먹히죠.

놀이공원 이야기입니다. 델로스라는 회사에서는 성인들을 위한 오락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원은 서부시대, 중세시대, 로마시대로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에 머물며 역할극을 하는 건 인간과 흡사한 외모의 로봇들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총과 칼로 로봇들을 죽이고, 밤이 되면 로봇들은 수리센터로 보내집니다.

꼼꼼하게 따지면 그렇게 말이 되는 사업은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서비스는 훈련받은 일반 스턴트맨들이 보다 싼 값으로 훨씬 더 잘 할 수 있죠.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해도 로봇이나 손님들에게 진짜 총과 칼을 주는 건 어처구니가 없고요. 그 정도 로봇 공학 기술이 있다면 놀이공원보다 다른 데에 쓰는 게 더 생산적이겠죠. 하긴 크라이튼은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디즈니랜드에서 [캐리비언의 해적] 놀이기구를 타다가 얻었다니 다른 방향으로 빠지기도 어려웠겠지만요.

영화는 시카고에서 온 두 친구들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서부시대에서 악당들을 쏴죽이고, 여자 로봇과 섹스를 하고, 술집에서 패싸움을 하는 등 서부극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공원 뒤의 전문가들은 로봇과 시스템이 점점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걸 알아 차리죠. 사고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로봇들은 손님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친숙하지 않나요. 바로 [쥬라기 공원]과 같은 설정이지요. 공룡 대신 로봇들이 난동을 부린다는 것이 다르긴 합니다만, 인간들이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혼이 난다는 줄거리는 거의 같습니다. 단지 영화는 이를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피터와 존은 과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는 평범한 관광객에 불과하니까요.

영화의 비율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러닝타임이 88분인데, 본격적인 액션이 일어나려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지요. 그러는 동안 우리는 별 관심도 가지 않는 두 남자가 서부극 놀이를 하는 것을 참고 봐야 합니다. 시스템이 망가지는 과정을 조금 더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건 없죠.

뒤에 나오는 액션 장면들은 짧지만 앞의 한 시간보다는 낫습니다. 일단 놀이공원 장난감이었다가 살인마로 변신한 서부극 악당 율 브린너의 존재감이 상당하지요. 여기서부터는 거의 호러인데, 그는 실제로 이후 영화의 악당들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존 카펜터는 [할로윈]의 마이크 마이어스를 만들 때, 이 영화의 서부극 로봇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죠. 그리고 [터미네이터]의 살인 로봇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이 영화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주말 오후에 텔레비전으로 이 영화를 보았던 추억을 고스란히 남기고 싶은 분들은 굳이 이 영화를 챙겨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많이 낡은 영화예요. 지금 보면 이전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관점이 달라지긴 하더군요. 옛날엔 율 브린너의 악당 로봇이 그냥 무서웠어요. 하지만 지금 다시 보니까 오히려 인간들에 반항하는 로봇들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하긴 매일 같이 그렇게 죽고 다치고 성추행 당하면서 보수도 받지 못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기계라도 화가 나죠. (13/04/03)

★★☆

기타등등
이 영화의 제임스 브롤린은 종종 크리스찬 베일과 비슷해보이더군요.

감독: Michael Crichton, 배우: Yul Brynner, Richard Benjamin, James Brolin, Norman Bartold, Alan Oppenheimer, Victoria Shaw, Dick Van Patten, Linda Gaye Scott, Steve Franken, Michael T. Mikler,  다른 제목: 이색지대, 율 브린너의 이색지대

IMDb http://www.imdb.com/title/tt007090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525

    • '하지만 그러는 동안 공윈 뒤의 전문가들은'-> '공원', [할로위]-> 할로윈
    • 율브린너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제대로 기억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터미네이터처럼) 율브린너도 빨리 걷지 않고 천천히 걷나요?
    • 천천히 걷죠. 빨리 갈 때는 말을 타고.
    • 으하하하 기타등등 동감이요
    • 10년전인가? 마이클크라이튼의 델로스라는 소설을 읽어본것 같은데...
      스피어,쥬라기공원,공포의제국등에 비해 존재감은 없었지만;;
    • 그래도 한번쯤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입니다.
      어릴 때는 정말 무시무시한 영화였어요. 나중에 터미네이터를 보면서 율 브린너가 생각났어요.
      그리고 저는 로봇의 얼굴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날 때 왜 그렇게 무섭던지... 600만불의 사나이에서도 최고의 적수로 나온 로봇(혹은 안드로이드) 역시 마스크가 벗겨지는 부분이 정말 무서웠거든요.
    • spy/ 익무에도 썼는데, 아마 그건 노벨라이제이션인 것 같습니다. 크라이튼의 공식 페이지에도 영화 이야기밖에 없어요.
    • 아, 꽤 옛날 티비영화였죠. 둘로 나눠서 했던 거 같군요. 전 그 당시에도 로봇을 응원했습니다. 보면서 '아, 조금만 더 가면 잡을 수 있었는데...'하고 안타까워했죠. ^^

      6백만불사나이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왜 저것들 얼굴은 몸체에 붙어있을 때는 말랑말랑한데 떨어져나오면 저렇게 딱딱해 보일까'가 좀 궁금하긴 했습니다.

      터미네이터가 달리지 못한다고 믿는사람도 꽤 있던데... 처음 디스코텍에서 사라를 쫓을 때 분명히 달려갑니다. 마지막 골격만 남았을 때 그 기능이 손상되었나 보죠.
    • 저도 어릴 적 이 영화 보면서 모골이 송연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사람들 보면서 종종 모골이 송연.. 언제쯤 인간형 로봇들이 나와 일상화 될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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