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0)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단순명쾌한 복수극입니다. 주인공은 러닝타임 절반 이상 부당한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의 끝에서 상황은 갑자기 역전됩니다. 그 뒤로는 복수의 향연입니다. 이런 영화들은 가정식백반처럼 아무 데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찾기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최근 한국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길을 따르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2.

이 영화에서 그 부당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인물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김복남입니다. 삼십 평생 무대가 되는 작은 섬에서 거의 나가본 적이 없는 촌부지요. 김복남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시골 마을에서 여자들에게 흔히 가해지는 종류인데, 여기에 섬이라는 조건이 추가되자 상황은 더 끔찍해집니다. 딱 [긴급출동 SOS 24]에 나올만한 상황인 것입니다. 


3.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 소개되었을 때, 많은 서구 비평가들은 평면적인 악당 캐릭터들을 단점으로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개인에게 집단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부하고 무개성적입니다. 적어도 그 폭력의 현장에서는 그렇습니다. [김복남]의 악당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악을 휘두르거나 가해자에게 동조한 채 피해자를 바라봅니다. 


4.

[김복남]의 복수극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인구가 몇 안 되는 섬이 무대가 되자 시스템 전체에 대한 복수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그리는 것은 거의 완전한 몰살입니다. 직접적인 가해자들만 당하는 게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며 동조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종말론적이며, 어느 정도 종교적이기도 합니다. 


5.

방관과 동조라는 주제는 최근 장르물에서 여러차례 다루어졌는데, [김복남]만큼 정곡을 찌르는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영화는 이를 [10억]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대충 쓰는 대신, 처음부터 주제로 삼고 나아갑니다. 이 중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가부장사회내의 여성간의 연대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연대의 필요성입니다. 시스템 내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옳고 그름을 보고 판단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줄 수 있는 용기를 내는 것. 


6.

딱하게도 김복남은 그런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김복남이 저지르는 연쇄살인은 자기도취적 폭력의 심심한 과시가 아니라 카타르시스가 터져 나오는 진짜 복수입니다. 김복남의 낫질에는 절절한 감정이 담겨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장르팬들은 보다 다양한 살인장면들이 나오길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김복남이라는 캐릭터에 맞지 않았겠죠. 김복남은 제이슨이 아닙니다. 가슴에 고통을 품은 보통 사람입니다. 이 인물을 필요 이상으로 괴물처럼 그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7.

[김복남]은 예상 외로 로맨틱한 영화입니다. 전 보면서 슬래셔 버전 [소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것도 김복남과 서울에서 찾아온 어린 시절 친구 해원과의 관계입니다. 해원은 '방관'이라는 주제를 영화에 넣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김복남에게 희망과, 애정과, 폭력의 동기 모두를 제공해주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김복남이 해원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모순된 감정들을 폭발시키는 클라이맥스는 그 때문에 더 울림이 큽니다. 


8.

[김복남]은 단순하고 우직한 영화입니다. 충분히 '예술'을 할 수 있으면서도 포기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메시지는 직설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맺을 수 있는 건 모두 맺고 있죠. 그리고 영화는 그를 통해 거의 완벽한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까? 왜들 그렇게 수줍은지 모르겠습니다. (10/08/21)



기타등등

저에게 김복남의 복수는 특별합니다. 제가 본 수많은 6,7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 여자주인공들의 상당수는 사실 모두 김복남처럼 행동했어야 이치가 맞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김복남처럼 낫을 들고 휘둘러야 했어요. 징징짜고 포기하고 혼자 용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신. 


감독: 장철수, 출연: 서영희, 지성원, 박정학, 이지은, 황민호, 조덕제, 홍승진, 제민, 다른 제목: Bedevilled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Bedevilled.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3781


    • 0 번호 붙이신거 넘 좋으네요.
    • 와우, 보고 싶어집니다.
    • 음 제목의 단어가 '진상' 인가요 아니면 '전말' 인가요?
    • 제목은 '전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서영희는 [선덕여왕]에서 유모로 나오신 분이죠? 평생 왕가에 이용만 당하다 칠숙과 어긋나버리는 결말이 참 한스럽다 생각했는데 여기서 그 분풀이까지 해버리셨나 싶습니다.
      영화 보고싶어지는 평이네요. 얼른 개봉하면 좋겠습니다.
    • 제 영어리뷰와 역시 공통항이 많아서 기쁘군요. ^ ^ 전 정말 의외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눈 안판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라는 점에서는 완전 동의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한눈을 안파니까 심지어는 김동인의 [감자] 같은, 요즘 읽으면 '소박' 하게 느껴지는 고전 문학작품들의 클래식한 플레이버와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예술'인척 하는 작품들보다 오히려 더 세련되어 보이는 구석이 여기저기 보였습니다.

      적당히 '끼' 를 과시하는 사람보다도 아무런 가식없이 아주 단순하게 자기 할 일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 더 진짜 '예술적' 으로 보이는 상황이랄까요?
    • 근데 복남씨가 선택하는 흉기 말입니다. 은근히 빨갱이스럽지 않습니까?
    • 4 를 보니 도그빌이 생각나네요. 나머지를 읽으니 도그빌보다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번호를 붙이신 리뷰가 있고 안 붙이신 리뷰가 있네요. 읽기 편해서 좋습니다.
    • 올해 납량특선은 그냥 별 작품없이 그냥 지나가는구나 하고 포기 하고있었는데 정말 궁금해집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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