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전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를 별 불만없이 본 소수입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가 정말로 괴상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 [슈퍼맨] 시리즈에서 1, 2편만 진짜로 인정하고 그 영화들의 속편, 아니, 속편스러운 영화를 만든다? 저도 이게 이치에 맞는 소리처럼 들리는 팬들이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아무리 리처드 도너의 옛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리부트를 이렇게 시키면 밋밋하고 찜찜하죠. 제대로 된 시작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다시 정식 리부트로 돌아옵니다. 옛 영화 시리즈의 세계를 적당히 고쳐서 재활용하는 대신 처음부터 이야기를 새로 쓰는 것이죠. 

영화는 당연히 크립톤에서 시작됩니다. 크립톤 행성이 파괴되고, 유일한 생존자인 남자아이 칼-엘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왔다가 켄트 집안에 입양되고, 어른이 된 칼-엘이 슈퍼맨이 되는데... 아, 여기에서 영화는 [슈퍼맨 2]로 건너 뛰어 역시 크립톤에서 온 조드 장군과 슈퍼맨의 대결을 그립니다. 렉스 루터는 아직 나오지 않아요.

각본에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런과 데이빗 고이어가 참여했으니,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다크 나이트] 시리즈 스타일의 유사 리얼리즘을 기대할 겁니다. 실제로 고이어와 놀런은 슈퍼맨의 이야기에서 만화스러운 황당함을 줄이고, 캐릭터의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 슈퍼맨의 당연한 일부였던 몇몇 설정들이 깨지기도 해요. 가장 두드러지는 건 로이스 레인과 슈퍼맨/클라크 켄트의 관계입니다. 

이 시도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광속으로 날아다니는 인간형 외계인의 활약을 다룬 이야기잖아요. 크립톤 행성의 이야기는 딱 30년대 스페이스 오페라 수준의 사실성밖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논리도 여러 가지 면에서 수상쩍고요. 외계인들의 깽판에 메트로폴리스가 박살나는 후반부에 이르면 더 이상 심각함을 물고 늘어지기도 민망할 지경입니다. [다크 나이트]와는 달라요. 다를 수밖에 없고요.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끊임없이 도너의 첫 두 영화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당연히 느릿느릿 직진해야 할 것 같은 영웅 기원담이 지나치게 빨리 달립니다. 속도가 맞을 때도 도너의 영화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보여요. 크립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클라크 켄트의 성인시절로 건너뛰고, 그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회상으로 조금씩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부터 그렇습니다. 이 역시 이치에는 맞는데, 그래도 차선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차선책은 슈퍼맨 이야기에 다른 질감과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맨의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 개성은 충분히 인간적이고요. 이는 로이스 레인과 같은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맨스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맨 오브 스틸]은 조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아직 속편이 남았으니까요. 

우직할 정도로 아날로그를 고집했던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는 달리, [맨 오브 스틸]은 처음부터 그린스크린과 디지털의 세계로 시작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슈퍼맨은 배트맨과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니까요. 후반부에 벌어지는 액션은 우리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기대하는 액션의 극한입니다. 물론 이런 과장이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유사한 공허함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액션의 주제가 훨씬 인간적이라 드라마가 완전히 날아가지는 않아요. 

[맨 오브 스틸]은 리처드 도너의 첫 두 영화나 크리스토퍼 리브의 존재감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소재와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부조화도 보이고요. 하지만 스나이더/고이어/놀런은 새로운 개성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고, 헨리 카빌 역시 리브와 다른 의미로 좋은 슈퍼맨입니다.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듬직한 프랜차이즈의 시작입니다.  (13/06/12)

★★★

기타등등
[저스티스 리그]가 어떻게 나올 건지 모르겠는데, [맨 오브 스틸] 시리즈는 여기에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떡밥만 뿌리다간 본 시리즈의 진지함이 완전히 날아가버릴 거예요.  

감독: Zack Snyder, 배우: Henry Cavill, Amy Adams, Michael Shannon, Diane Lane, Russell Crowe, Antje Traue, Harry Lennix, Richard Schiff, Christopher Meloni, Kevin Costner, Ayelet Zurer, Laurence Fishburne

IMDb http://www.imdb.com/title/tt07708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8196

    • 기타등등 부분은 진짜 저도 그러길 바래요
      하지만 이작품의 성공 이후 저스티스 리그가 맨오브스틸 제작진이 맡을 가능성이 많아지더군요
    • '저스티스 리그' 떡밥은 쿠키 정도로 처리하면 딱 좋지. 좀 여유 있게 가자꾸나.

      일단 시리즈의 시작으로는 괜찮은가 보군요. 봐야지.
    • 여섯번째 문단 마지막 문장 '...그래도 차선책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분이 좀 이상하네요.
    • 크립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클라크 켄트의 성인시절로 건너뛰고, 그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회상으로 조금씩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는 배트맨 비긴즈와 거의 방식이 비슷하지 않나요? 슈퍼맨 예전 영화들을 안 봐서 그런가 전 보면서 그냥 놀란식 구조라고 생각했어요.기억은 잘 안나지만 프레스티지도 이런 구조였던 거 같은데 뭐 여튼~ 후반부 논스톱 액션들은 그간 주도권을 뺏긴 잭 스나이더가 고이어/놀란에게 주도권을 되찾고 파티라도 하는 거 같더라구요ㅋㅋㅋㅋ
    • 그렇지 맨 오브 스틸도 괜찮았지. 특히 요 앞전 슈퍼맨보다 백배는 더 좋음. 게다가 여자도 맘에 들고 머리를 ㅋㅋ하는 장면이 좀 잔인하긴 하지만 뭐 극복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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