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뭐가 나빠 Jigoku de naze warui (2013)


[지옥이 뭐가 나빠]가 시작되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번갈아 등장합니다. 하나는 'F*ck Bombers'라는 고등학생 영화 동아리로, 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기네들이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찍습니다. 다른 하나는 경쟁관계인 야쿠자 무리로, 야쿠자 1번이 야쿠자 2번의 두목을 처치하기 위해 두목네 집을 막 급습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동안 혼자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식칼로 그들 네 명을 죽여버리죠. 살아남은 야쿠자가 피를 흘리면서 달아나는 동안 F*ck Bombers가 그에게 다가오고 그는 학생들이 자기를 찍는 걸 허락합니다. 온갖 일본식 똥폼을 잡으면서요.

깜빡했네. 이들이 등장하기 전에 먼저 나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쿠자 2번 두목의 딸인 미츠코요. 영화는 아역배우인 미츠코가 출연한 치약광고로 시작되는데요. 이 광고에서 미츠코가 부르는 노래는 영화 전체를 통해 거의 주제곡처럼 사용됩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부르는 노래인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감기처럼 입에 착 달라붙어 떼어내기가 힘듭니다.

오프닝이 끝나고 세월은 10년을 훌쩍 건너 뜁니다. 앞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감옥에 간 야쿠자 두목 무토의 아내가 출옥을 앞두고 있지요. 무토는 여전히 두목 노릇을 하고 있고 피를 흘리며 달아나던 야쿠자 이케가미는 새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살인범이 된 엄마 때문에 미츠코의 연예계 경력은 시들시들해졌고요. 그리고 'F*ck Bombers'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폐허가 되다시피한 낡은 극장에 모여 10년 전과 똑같이 놀고 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야쿠자 지망생이었다가 우연히 이들에게 캐스팅되어 한무리가 된 '일본의 브루스 리'인 사사키뿐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중반 이후에 만납니다. 어떻게 만나는지를 설명하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져요. 그래도 억지로 글로 쓸 수는 있는데, 그럼 여러분은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물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불신은 잠시 접어두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F*ck Bombers' 패거리들은 미츠코를 주인공으로 35밀리 야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걸 진짜 무토 패거리와 이케가미 패거리의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찍게 된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출옥하는 아내에게 딸이 주연한 영화를 선물로 주려는 무토와 10년 전 피투성이 살인현장에서 미츠코를 처음 만난 뒤로 열성팬이 된 이케가미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의 각본은 소노 시온이 아직 인디 영화계에 몸을 담고 있던 젊은 시절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카메라만 쥐고 있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의 소노 시온과 국제적인 영화감독이 된 중년의 소노 시온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키를 쥐고 있는 건 중년의 영화감독이겠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젊은 각본가 소노 시온의 천진난만한 광기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세상에 남길만한 명작 영화를 단 한 편만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악마에 영혼을 팔아도 좋은 영화광들의 미치광이 열정이 가득합니다.

피투성이 살육과 악취미 농담으로 푹 절어있는 영화지만, [지옥이 뭐가 나빠]는 괴상할 정도로 로맨틱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열렬한 사랑에 빠져 있어요. 그게 영화이건, 연예인이건, 배우자이건요. 영화는 그 사랑을 아무런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단도직입적인 감정이 너무 절실하고 날 것이라 전혀 어색하거나 유치해보이지 않습니다.

[지옥이 뭐가 나빠]는 정신나갈 정도로 웃기고 신나는 영화입니다. 리듬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의 농담과 살육으로 일관하는 영화지요. 그 때문에 중반에 가면 조금 지치긴 합니다. 살짝 템포가 느려져도 조바심이 나고 마약 중독자처럼 계속 더 강한 자극을 기대하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용하게 계속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자극을 제공해줍니다.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영화제용으로 이처럼 신나는 영화도 찾기 힘들 거예요. (13/10/16)

★★★☆

기타등등
35밀리 필름에 대한 러브레터와 같은 작품이지만 디지털이죠. 아아...


감독: Shion Sono, 배우: Hiroki Hasegawa, Gen Hoshino, Akihiro Kitamura, Jun Kunimura, Fumi Nikaidô, Tak Sakaguchi, Tomochika, 다른 제목: Why Don't You Play in Hell?

IMDb http://www.imdb.com/title/tt240930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0097

    • 간만에 부산에서 웃고 즐긴 영화였어요,
    • 드라마 한 편 봤을 뿐이지만, 등장하자마자 단박에 저 배우가 궁금하다 모드로 돌입했죠. 내일이 가장 궁금한 배우예요. 필모그래피도 재미있게 이어왔더라고요. 연기를 어마어마하게 잘하는 건 아닐지 몰라도, 누구랑 마주하는 연기라도 상대방 캐릭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기 색깔이 또렷한 게 시선을 끌었고요. 반대로 경험 많은 좋은 배우들이 받쳐 준 덕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아, 니카이도 후미 얘기예요.
    • "요리를 하고 있던 아내가 식칼로 그들을 네 명이 죽여버리죠" ?_? ?_? 영화가 영화라선지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이렇게 짐작이 안 가는 오탈자는 처음이네요 궁금해요~
    • /orie 네명을 죽인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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